편집실에서

끝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

- 백납(수유너머R)

1.

제가 〈위클리 수유너머〉의 편집진으로 합류한지도 몇 달이 지났습니다. 8월 중순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의 저는 군대를 제대하던 그날, 바로 서울로 올라왔던 차였습니다. ‘수유너머’라는 연구소를 알게 된지는 꽤 된 것 같은데, 다니던 학교도 지방이고 고향도 지방이었던 터라, 활발하게 참여하지는 못했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좋은 선배와 스승들이 있었던 탓에 어쭙잖은 질문들을 갖게 되었고, 밥벌이와는 무관하게 그래도 계속 책을 읽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 금방 다녀온다는 군대를 나이가 차서 더는 미룰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다녀오게 되었고, 제대 이후의 삶도 대책 없는 상황 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수유너머 R’의 일반회원으로 있던 학교 선배의 권유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나이가 가득 차서 군대에 갈 정도면, 얼마만큼 군대가 가기 싫었을지 짐작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국가적 힘으로부터 ‘자유롭게’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 힘이나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널리 자주 쓰이는 자유라는 말이 얼마나 자유롭지 않은지에 대해서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이 다 차서 군대 가는 것이 차라리 어떤 패배로 느껴졌었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민망스러워, 주변의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가족의 배웅도 없이 홀로 훈련소로 입소했었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고, 저는 명령만 따르면 되는 노예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 노예상태에서 저의 정신은 오히려 평온했었습니다. 어떤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먹는 것은 물론, 자는 것까지 스스로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갑작스레 놓이고 보니 대책이 없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삶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기에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R의 공부방에서 책속으로 도피하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연구실을 통해 알게 된 ‘빈집’이라는 곳에서 장기투숙을 시작했고, 소개받은 ‘노들 장애인 자립생활 센터’에서 장애인활동보조를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관계의 새로운 사람들은 별다른 질문 없이 따뜻하게 대해 주었고, 그런 와중에 〈위클리 수유너머〉의 편집진도 같이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저는 〈위클리 수유너머〉를 간간히 눈으로 훑어보는 정도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함께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2.

이제 〈위클리 수유너머〉가 100호를 앞두고 있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는 애초에 100호까지 발행하기로 작심하고 시작한 웹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이 공간이 저에게 그렇게 가볍게 그만둘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는 별로 특출한 것 없는 저에게 어떤 참여 가능한 틈 같은 것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있어 관계는 그저 관계 자체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매개하는 일이나 사건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에게 있어 수유너머와의 관계를 매개하는 일은 어쩌면 〈위클리 수유너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미련이 저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100호가 임박한 몇 주 전부터 〈위클리 수유너머〉를 “굿 빠이~.” 할지 여부에 관하여 말들이 오갔습니다. 여러 개인적인 사정에 힘들어 그만두고 싶어 하면서도 아쉬워했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가 끝내버리기엔 내용이 너무 괜찮았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를 어떤 방식으로 이어 나갈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결국 몇몇 편집진은 나가고 몇몇 편집진은 새로 들어오고 하면서, 기존의 방식으로 지속해 보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100호라는 끝을 기약했던 〈위클리 수유너머〉에게 끝이라는 것은 더 이상 기약할 수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는 더이상 결정된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끝을 기약할 수 없음’이 ‘영원한 동일성’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위클리 수유너머〉를 만들어 가는 구성원들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자연스럽게 이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각도 변해 가면서 〈위클리 수유너머〉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각자의 이유들로 〈위클리 수유너머〉에 참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변화에 대해서도 다뤄 볼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면서 이 매체 자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99호의 주제는 위클리 수유너머의 편집진입니다.

응답 4개

  1. 고추장말하길

    은숙님/^^님/
    모두 고맙습니다. 격려 댓글을 받으니 산삼 한 뿌리씩 먹은 듯 큰 힘이 납니다 ^^ 앞으로 더 열심히 잘 만들게요. 그리고 더 이상 독자가 아니라, 웹코뮨의 공동성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볼게요. 많이 참여해주세요.

  2. […] [편집자의말] 끝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 […]

  3. 은숙말하길

    늘 감사하게 보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수유너머 위클리를 볼 수 있다니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4. ^^말하길

    편집진들은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
    수유너머 위클리 애독자인 저로서는 정말 기쁜 결정입니다.
    정말 만세! 임
    백납님에게 학교다닐때 어쭙잖은 의문을 품게 도와준 그들이
    저에게는 편집진들의 글,글 속의 사건, 사건 속의 다른 이들이었지 않을까 합니다.
    소심하게 숨겨둔 뜨거운 고백을 마지막 인사로 하지 않게 해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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