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황진미가 뽑은 2011

- 황진미

황진미가 뽑은 2011 한국 영화 베스트 5

1위 : <애니멀타운>

선정 근거 : 영화는 아동성범죄자라는 가장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 아동성범죄자의 특징을 매우 정확하게 짚는다. 그들은 (남성)사회질서의 약자들이지만, 아동과의 성관계를 통해 그 억압을 보상받으려한다. 이것이 아동성애 판타지의 핵심이다. 영화는 아동성범죄자가 자기 몸을 불결하게 여기면서도 욕망을 어찌하지 못하는 모습을 불쌍하게 그리면서도, 여전히 그가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애니멀타운>은 전규환 감독 특유의 인류학적 시선으로 도시라는 생태계를 하나의 군집으로 바라본다. 거대한 폭력의 잠재성이 도시 밑바닥을 흐르며, 서로가 서로에게 멧돼지로 출몰할 ‘사건의 순간’들이 매초마다 지나간다. 관리되지 않은 위험은 도시 속에서 무수한 선들로 연결되며, 누구도 위험과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우연과 책임을 자신의 것으로 짊어지는 행위, 즉 ‘멧돼지’를 끌어안는 것이 ‘인간의 윤리’이자, 유일한 구원의 해법임을 제시한다.

2위 : <숨>

선정 근거 : <숨>은 뒤틀린 장애인의 몸과 시선을 일치시키며, 남루하지만 열정적인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납득케 하고, 그녀가 일상적으로 겪는 소외를 경험케 함으로써 시설이나 쉼터나 동일한 폭력성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장애여성의 성폭행 문제를 고발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발의 시선이 놓치는 지점에 주목한다. 장애여성의 성폭행을 알리고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러한 피해자담론이 놓치는 것이 바로 장애여성을 성적 주체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수희는 스스로 원하여 성관계를 주도하여 임신하였다. 그녀는 섹슈얼리티의 주체였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 하는 모성의 주체이지만, 상담사를 비롯한 사회적 시선은 그녀를 무성적 존재이거나 보살핌을 받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영화는 관객이 수희의 시선을 통해 세상의 시선을 경험하도록 하며, 그녀의 답답함을 함께 느끼도록 한다. <숨>을 보는 것은 ‘장애인-되기’를 통해 장애인의 주체성을 사고할 있는 흔치않은 기회이다.

3위 : <돼지의 왕>

선정 근거 :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폭력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다. 학교라는 생태계에서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며, 이를 추인하는 동력이 바로 피지배자의 욕망임을 그린다.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섬세한 심리묘사로 담아낸 것도 놀랍지만, 국내에서 아동물로만 인식되었던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도 무척 의미 있다. <돼지의 왕>은 애니메이션의 형식을 통해 인물의 몽환적 심리상태를 자유자재로 드러낸다. 애니메이션이 기억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형식임을 알 수 있다.

4위 : <황해>

선정 근거 : 짐승, 개, 고기. 벌거벗은 삶, 고기가 되는 삶, 착취당하는 삶. 구남은 황해를 사이에 둔 두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물이 되어, 탁류 속으로 던져진다. 그는 악인이라기보다 노동자이다.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업무에 더 낮은 임금과 더 나쁜 노동조건으로 투입된 (불법)이주노동자이다. 자본과 폭력의 결합체인 청부살인 노동의 수요는 남한사회 내부에 있었고, 자본을 쫓는 개장수가 구남을 팔아넘겼다. 영화는 총상을 입고 탈주하는 구남을 서러운 산짐승마냥 그린다. 그는 죄를 뉘우치지도 않는 범죄자이지만, 영화는 그를 자본의 먹이사슬 가장 밑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박박 기는 노동자로 그린다. <황해>에서 연변은 민족적, 역사적, 정치적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로서 급격한 계급분화를 겪고 있으며, 더 자본주의가 발달된 남한에 청부살인을 포함해 3D업종에 노동력을 파견하는 인력시장이다. 남한과 연변, 두 시장 사이에 국경이 있다. 이는 자본가인 면가에겐 비행기로 가볍게 넘을 수 있는 선이지만, 노동자들에겐 목숨 걸고 넘어야 하는 죽음의 바다이다. <황해>는 조선족의 허망한 죽음과 함께, 폭력과 탐욕으로 미처 날뛰다 수척하게 죽어가는 ‘개병’의 전설을 쓸쓸히 전한다. 미친 자본의 병이 돌고 있다.

5위 : <고지전>

선정 근거 :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끝을 다룬다. 영화는 전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곳에서는 이념이나 승패가 아닌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존기계로서의 명령이 그들을 지배한다는 점에 주력한다. 에록(earok: Korea의 철자를 뒤집은 것) )고지와 ‘휴전협정 후 12시간’은 한반도와 휴전이후의 무의미한 대치를 환유하는 장치이다. 휴전협정 중의 교전도 그러하지만, 협정 후 모든 것이 끝났다며 서로 목례까지 나눈 이후의 12시간은 견딜 수 없는 무의미를 선사한다. 영화는 대놓고 그 무의미를 관객에게 체험시킨다. 그런데 협정 이후의 지독하게 무의미한 전투가 지난 60년 간 남북이 꾸준히 해왔던 일들이다. 도끼만행사건, 서해교전, 연평도사건 등이 아무런 승패도 명분도 없고, 그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인 소모적인 전투들이다. 전투뿐이 아니라 남북 대치 상황에서 군비를 늘리고 긴장을 강화한 모든 짓들이 이 ‘휴전협정 후의 12시간’과 같다. 영화는 마지막에 전투의 반복 속에 전쟁초기의 확신은 잊히고 관성만 남은 인민군 장교의 입을 빌어 이 지독한 무의미를 확인 사살한다. 반전(反戰)의 메시지가 확실한 전쟁영화이다.

가장 과대평가 받은 한국영화는 <써니>

<써니>는 여성들이 추억을 통해 개인사를 복원하고, 우정의 연대를 확인하는 영화인양 소개되었다. 그러나 <써니>가 말하는 건 퇴행적 운명론과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게다가 거대사와 미시사를 괴상하게 접합시켜, 여성을 탈역사적 존재로 고정하고 거대사를 조롱한다. <써니>는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 말한다. 그러나 ‘역사’란 단순한 사연이 아니라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 영화는 이들이 어떤 주체적 투쟁으로 개인의 역사를 발전시켰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춘화는 어떤 투쟁으로 자본가가 되었는지 역사가 괄호쳐져있다. 나미가 중산층 아줌마가 된 것 또한 남편의 운빨(“김서방이 이리 잘될 줄 알았니?”)덕분이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결국 <써니>가 말하는 건 “여자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퇴행적 운명론이다. <써니>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우정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친구를 찾고 친구의 마음을 여는 모든 순간, 돈이 활약한다. 궁극적 피날레 역시 유산잔치이다. 결국 <써니>가 말하는 건 “돈이면 옛 친구도 살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이념이다. 7공주가 새로 뭉쳐 무엇을 할까? 나미, 춘화, 장미가 뭉쳐 처음 한 일이 나미의 딸을 괴롭히는 일진들에게 명품 백을 휘두르는 드잡이 질이었단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7공주 파’자체가 지극히 배타적인 교내기득권모임이었음을 상기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써니>의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돈으로 자식의 성적을 관리해오던 강남엄마가 자식이 ‘일진에게 까이는’ 문제까지도 과거 자신이 잘 놀았다는 추억을 복원하여 손수지배하려는 욕망이다. <돼지의 왕>과 함께 보면, 반동성에 치가 떨릴 것이다.

가장 과소평가 받은 한국영화는 <숨>

선정근거 : <숨>은 <도가니>가 지시하는 문제, 그 너머를 가리킨다. 장애인 시설의 악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악으로 치부하는 세력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장애인을 타자화하고 있으며, 이것은 전선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장애여성은 성문제에서 오로지 성폭행의 피해자로만 사유될 뿐, 성적 욕망과 행위의 주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이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사고할 때 흔히 빠지는 오류이자, <도가니> 등의 영화가 장애여성의 성폭력 피해문제를 이슈화할 때 놓치는 지점이다. 피해자성이 강조될수록,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핵심적 화두는 멀어진다. 장애여성은 모성의 권리 역시 무시된다. 장애여성은 보살핌의 대상이지 보살핌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성이 배제된다. <숨>은 장애여성을 피해자이자 구출해야 할 순결한 대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욕망을 지닌 존재이자 스스로 싸워서 성적 자기결정권과 모성을 쟁취해야 할 주체로 그린다.

황진미가 꼽은2011년 외국영화 베스트 5

1위 : <안티 크라이스트>

선정 근거 : 남성(교회)은 공동체의 비탄, 고통, 절망이 발생하였을 때, 자신들의 죄의식을 ‘마녀’들에게 투사하여 처형했다. 여성은 남성에게 성욕을 일으키는 존재라서 악하다는 논리에서, 욕망의 주체인 남성은 빠지고, 나(남성)를 죄짓게 한 여성이 나쁘다는 논리가 창세기부터 마녀사냥까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룬다. 영화는 인간의 악마성과 죄의식이 광기로 돌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는 쾌락을 나누었던 남편과 자신의 음핵에 죄의식을 투사해 처형한다. 남편은 아내를 죽여 불태우고 숲을 내려온다. 이때 온 숲에 누워있던 ‘마녀’들이 여성으로 되살아나 우르르 걸어온다. <도그빌>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파헤치며 신약의 구원론을 구약의 심판론으로 받아쳤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안티크라이스트>를 통해 죄의식과 희생제의의 원리를 보여주며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그리스도의 의미를 반문한다.

2위 : <그을린 사랑>

선정 근거 :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굴곡진 삶과 죽음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전쟁과 국가폭력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끔찍한 파괴를 자행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그을린 사랑>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개인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어떠한 폭력 앞에서도 굳건한 인간의 의지와 숭고함을 말하는 영화이다. 그녀가 팔레스타인 청년과 사랑을 나눌 때도 그녀는 승리하고 있었고, 이슬람 테러범이 되어 권총을 쏠 때도 승리하고 있었고, 감옥에서도 ‘노래하는 여인’으로 끝끝내 승리하였다. 그가 쌍둥이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가 엄마노릇을 하고 있을 때도, 어느 날 자신의 기막힌 운명을 알고서 용서의 유서를 쓸 때에도 인간 정신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주었다. 전쟁도, 역사도, 신의 폭력인 운명도 그녀를 꺾어놓지 못했다.

3위 : <세상의 모든 계절>

선정 근거 : 노년의 평화와 가정의 행복, 사람들은 이를 소박한 꿈 인양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지복의 삶이다. 경제적인 불평등만이 문제가 아니다. 누구는 안정된 인간관계와 인격이 있고, 누군가는 불안과 우울과 외로움뿐이다. 영화는 이러한 간극을 잔잔하면서도 신랄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원만한 일상을 영위하는 톰과 제리 부부를 중심으로 4계절의 서사를 배열되지만, 카메라는 그들 부부의 곁에 있는 결핍된 사람들의 모습을 지그시 응시한다. 집이 없는 자들, 정이 고파 헤매는 자들이 ‘따뜻한 집 밥’이 먹고 싶어 남의 집을 기웃거릴 때, 집주인은 그들에게 쪽문은 열어주지만, 집을 통째로 내어주지는 않는다. 영화는 불균등한 행복과 교양 있는 이웃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윤리에 대해 반문한다. 자신의 집을 갖지 못한 가련한 여인네의 민폐를 어디까지 관용할 것인가. 거기까지가 행복한 자의 윤리인가?

4위 :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선정 근거 : 영화는 대단히 치밀하고 사실적인 법정스릴러이자 계속 미묘한 상황 속에 캐릭터를 몰아넣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윤리극이다. 영화의 교훈은 분명하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것과 갈등의 한 축인 나로서는 총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재빨리 인정하고, 역지사지의 태도로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생생하고 지긋지긋한 분쟁의 한 토막을 통해 체험시킨다.

5위 : <블랙스완>

선정 근거 : 백조와 흑조를 같이 연기해야 하는 발레리나를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강박과 자기 몸과 혹독하게 대결하는 이의 분열된 자의식을 보여준다. 여기에 여성들 사이의 살인적인 경쟁, 지긋지긋하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엄마와 우월적 지위에서 유혹하는 남근적 섹슈얼리티, 그리고 레즈비언적 욕망 등이 더해진다. 자기한계에 직면한 이의 자아분열이나, 이의 대립을 통한 자기 파괴의 충동 등은 어쩌면 이미 많은 영화들에서 다루어져 익숙해진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블랙스완>의 탁월한 점은 그러한 주제를 얼마나 관객의 오감에 완벽하게 구현시켜 내었느냐에 있다. 마치 발레극의 줄거리가 특별하지 않아도, 발레극만의 감동이 특별하듯이. <블랙 스완>은 영화라는 장르가 지닌 모든 장점과 표현력을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응답 2개

  1. 사비말하길

    위클리에서 진미 쌤이 추천해 주신 영화는 부지런떨지 않으면 금방 내리는 영화가 많아서 아쉬워요ㅠㅠ
    올해에는 좀더 부지런떨어서 꼭꼭 챙겨봐야겠어요.
    그럼 올해도 기대하겠습니다~ ^_^

  2. cman말하길

    꼭 챙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외국에 있어서 대부분 보지 못하고 지면으로만 접했는데 황선생님 글을 보니 꼭 챙겨서 봐야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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