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수유너머 Weekly’ 100호에 부쳐

- 김정선(전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웹진 ‘수유너머 Weekly’ 100호 원고를 부탁받고 2년 전 창간 무렵이 떠올랐습니다.

웹진 편집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산 연구실에서 만난 몇몇 지인들과 2010년 1월 웹진의 출발을 축하했습니다. 연구실을 자주 방문하기 어려운 처지였던 우리는 연구실의 활동, 연구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는 데 환호했습니다. 웹진 디자인을 맡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응원 메시지를 전했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연구실 밖에 있는 우리는 때때로 Weekly의 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수유너머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간, 그로부터 2년이란 시간이 흘렀군요.

# 잔잔한 일상에 이는 파문

매주 화요일 아침 배달되는 웹진을 무심코 클릭해 읽었다가 마음에 한바탕의 회오리를 경험한 때가 있었습니다. 무심하게 살아가는 일상에 누가 돌멩이 하나 툭 던졌다는 느낌이랄까요. 주목받지 못한, 잊혀져가는,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들이 웹진에 있었습니다.

전태일 40주기에 고병권 선생님이 쓴 41호의 편집장 편지와 ‘전태일, 그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을 읽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오전을 그냥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근 10여 년 만에 책장에 꽂힌 ‘전태일 평전’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가슴이 요동쳤습니다.

홍익대학교 미화원 농성 문제가 한창이던 때 청년유니온 김민수씨가 쓴 ‘신선한 커피’를 읽다가, 글 말미 ‘커피숍 누나’의 하지 정맥 소식에 맥이 탁 풀리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홍대 미화원 후원 계좌 번호를 찾아 돈을 입금했습니다. 98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정영신씨는 서서히 기억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던 3년 용산의 기억을 불러왔습니다.

대개는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부조리를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습니다. 마음속에 이는 회오리는 부끄러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 내 이웃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글을 읽으며 격한 감정에 휩싸였던 것은 특별히 감성적인 성격 탓도 있겠지만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서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은 ‘전선인터뷰’ 등을 통해 소개되는 인터뷰 기사들입니다. 각자의 지점에서 사회의 부조리와 대면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들의 삶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홍대 청소노동자였던 노문희 할머니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내 할머니를 떠올렸고, 잡년 행진을 벌였던 도괭이의 인터뷰 기사에선 일상에서 이뤄졌던 성추행·성희롱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그냥 견디었는데, 이들은 투쟁을 하는구나.’

세상에 맞서는 용기는 거대 담론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삶의 절실함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영장찢고 하이킥’의 현민씨가 어떤 이유로 병역 거부를 선택했는지는 몰라도 그의 절박함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됐고, 뉴욕에서 거처하는 고병권 선생님의 ‘#occupy wallstreet’ 덕에 물리적 공간, 인종적 차이를 뛰어넘어 뉴욕 사람들의 저항을 어렴풋하게 이해하게 됐습니다.

# 다른 사회에 대한 가능성

웹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고발하고,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삶을 살아보는 다양한 실험들에 대한 소개도 의미 있었습니다. 도심 속 공동주거를 실험하는 ‘빈집’ 프로젝트는 다른 상상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생면부지의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통해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알았고, 어려움만큼 얻어지는 가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수퍼마켓(SSM) 때문에 동네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즈음 소개되었던 맹찬형 연합뉴스 특파원의 ‘윤리적이며 전략적인 유럽의 소비’는 대형 할인점과 동네 가게들이 공존할 수 있는 대안을 소개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사회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듯 했습니다.

# 통일성 있는 기획과 친절함으로 승부를

지난 99차례 웹진은 매주 설레임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매 호마다 편차가 크다는 느낌을 받아서 어떤 때는 기대 이상의 자극에 황망해 질 때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기획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웹진 ‘커버스토리’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가 한 두 개의 기사로 마무리되어버리고 말아 맥이 빠졌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체 필진이 함께 기획하고 취재하고 집필하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Weekly 수유너머’가 대중 독자들을 상대로 한 웹진이기보다 수유너머 구성원들의 생각을 담고 정리하는 그릇으로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100호를 넘었고 열혈 독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습니다.

‘Weekly 수유너머’의 팬으로서 매 호가 독자의 가슴을 울리고, 다른 삶이 가능하다고 일깨워주는 웹진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취재진, 편집진, 필진 여러분들에게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응답 3개

  1. […] | 동시대반시대 | ‘수유너머 Weekly’ 100호에 부쳐 […]

  2. 고추장말하길

    잘 지내죠? 이렇게 정감있고, 또 꼼꼼하게 위클리를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사당쪽에서 하는 세미나 멤버들은 모두 잘 지내나요? 모두 보고 싶네요. ㅎㅎ 저는 한달쯤 후에 들어갑니다.

    • 김정선말하길

      오~ 한달쯤 후에 오신다니, 팬클럽 멤버 또 모여야겠네요. ^^;
      사당의 허술 세미나 멤버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들 고샘 보고싶어하고, 얘기하고 싶어 합니다. ^^;
      돌아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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