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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삶의 활력소요 방편인, 나에게 100호의 의미…

- 김융희

2010년 1월 16일에 “위클리 수유너머”가 첫 호를 내어, 벌써 두 돌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두 돌 맞이의 지내온 감회나 꺼리를 짚어보려니 특별히 떠오른 생각은 없습니다. 궁금하여 일 년전 돌맞이로 썼던 “한 해를 회고한다”(52호)의 원고를 읽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조목 조목 짚으면서 제법 심회를 적당히 표현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회고와 다짐의 소회는 여전입니다. 그동안 ‘위클리 수유너머’는 내 삶의 일상성으로 줄곧 평상의 생활화였습니다.

내 젊은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아니 지금도 젊음이 그냥 머물러 있는 것 같은 착각으로 내 삶을 되돌아 헤아려보니, 그동안 2년의 몇 십 배를 흘려 보낸 세월이고 보면, 두 해가 결코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란 생각입니다. 그러나 결코 짧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오직 ‘수유너머’만으로 꽉찬 생활이요, 마음이었습니다. 어떻든 ‘수유너머’란 존재가 내게는 그렜습니다. 백 호를 즈음하여 다시 해아려 봐도 그렀습니다.

그동안 때마다 줄곧 밝혔듯, 나는 조그만 장포와 더불어 외딴 곳 산골에서 단조롭게 살고 있는 초부요 올챙이농사꾼이 올시다. 이 곳은 하루 종일을 보내도 지나는 차량이 거의 없습니다. 집지킴이 개들도 저희들끼리 하늘을 향해 짖으면서 정적의 무료를 달래는 한적한 오지입니다. 가끔씩 산새, 산 노루, 산꿩, 산비들기의 반가운 소리뿐입니다. 가끔 서울등의 나들이가 있긴 합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횟수도 줄어만 갑니다. 오직 그리웠던 지난 생각들이 밀려올 뿐, 누군가 마땅히 전화 할 이도, 거둘 일도 뜸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일거리가 없는 건 아닙니다. 작은 장포지만, 종일 메달릴 만큼 일거리는 있습니다. 또 젊어서 못했던 일로 지금은 할 수 있는 일거리도 많습니다. 우선 읽고 싶은 많은 책읽기, 신간은 충분히 못 보지만, 비록 구간으로도 다시 읽고 싶은, 미처 읽지 못했던 책들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래 남들이 늘 관심을 배풀며 염려해 준 ‘외딴 곳 삶에 대한 위로’는 결코 아니올시다. 오히려 꽉 찬 일상으로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체력이나 시력의 한계가 아쉽고, 추운 겨울에는 실내의 냉기가 불편합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과 장애가 겹쳐지면서 어쩔 수 없는 생활의 단조로움은, 마음을 약하게 합니다. 약한 마음은 삶을 허무하게 하며, 허무감이 지나치면 좌절과 절망감을 갖기도 합니다. 할 일이 없어 무료해하는 노년의 많은 이들도 봅니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황혼의 감정과 삶은 모두가 비슷합니다. 허무, 불안, 무료, 갈등, 좌절 등, 그런 생각들로부터의 자유로움. 나의 해도 또 해도 늘 아쉬운 많은 일거리들, 할 일이 없어 무료한 이들을 보면, 나는 그들이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는 결단코 나의 아니라는 잘난 체가 아닙니다.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흔히 친구들은 고생하며 불편하게 사는 나의 시골생활을 여간 안쓰러워 합니다. 나도 그런 내 생활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동정의 대상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편한 아파트에서 편리를 즐기며 사는 삶, 잘 갖춰진 도시의 생활은 분명 모든 이들의 바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 생활이 좋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며 고달프고 바쁘게 사는 삶에 어떤 불평 불만도 없습니다. 오히려 진미의 밥맛처럼 삶에 진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일상이 늘 흥겹습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한 자기만의 생활은 보람이 없는 일이거나, 자기 위주의 이기적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보람된 진정한 삶이란 우선 자기의 삶에 충실해야 겠지만, 또한 자기의 삶이 또다른 무엇을 이루면서 더불어 사는 삶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 짖는 소리, 산새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무럭 무럭 자라는 야채를 보면서, 땀 흘리려 일하며, 때로는 독서도 하면서 보내는 일상은 단조롭습니다. 그러나 자란 채소를 함께 나누며, 보고 듣고 느낌을 전하는 생활은 나를 풍요롭게 합니다. 그런 일들이 나를 바쁘게 합니다.

그런 삶의 중심에서 모두를 아우르며 신바람으로 나를 이끄는 것이, 두 해를 쉬임없이 함께 달려오며 드디어 100호를 내게 되는 “위클리 수유너머”입니다.
개줄을 목에 걸고 두 끼의 밥을 들며, 집을 지키는 건우, 분이, 살살이, 재동이들이 서로의 무료를 달래는 메아리가 허공을 맴돕니다. 그러나 맞짱이 없는 메아리는 오히려 공허합니다. 저들도 맞짱이 있으면 신이 나지만, 응답이 없으면 그만 맥없어 실망합니다. 야채들도 이웃이 무성해야 함께 무성히 자랍니다. 이같은 자연의 시사를 통해 내 삶을 읽습니다.

야채와 더불어 함께 하는 서툰 농사꾼으로의 나의 일상, 그리고 삶을 공유하는 나의 이웃이요, 생활인 무한공간의 ‘위클리 수유너머’가 있음에 나는 삶이 든든합니다. 명예와 부를 누리며, 편리한 도시의 화려한 생활과, 여러 취미와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쉬이 이해가 안되거나 모를 것입니다. 지식도 능력도 부족하면서 서툴지만 현장에서의 경험을 전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내 이웃이 있음은 하늘의 선물이란 생각으로 나의 일상은 늘 감사의 생활입니다. 남들께는 미숙의 유치한 짖일지라도, 이는 저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응답 2개

  1. 고추장말하길

    저희야말로 선생님 덕에 든든하죠. 선생님이 위클리 수유너머에 함께 참여해주셔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멀리서 새해 인사 전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2. […] 삶의 활력소요 방편인, 나에게 100호의 의미… _ 김융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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