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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시너지 효과 – 오다기리 죠와 미키 사토시

- AA

설 연휴가 다가오지만 TV 편성표의 특집 방송들은 어느 하나 눈에 가는 게 없고, 그렇다고 어딜 나가기도 귀찮다. 이불 속에 파묻혀 내내 키득거릴 수 있는 설 연휴를 꿈꾸는 분들에게 어떤 작품이 좋을까 했을 때 떠오른 후보작들 중, 공통점을 발견하여 이번 호에 소개하기로 결심했다. 드라마 <시효경찰>과 영화 <텐텐>, 두 작품의 주연 배우는 오다기리 죠, 각본과 연출은 미키 사토시가 맡았다.

먼저 오다기리 죠에 대해 설명하자면 훤칠한 키, 잘 생긴 얼굴, 울림이 있는 저음의 목소리 등 메이저의 자질을 모두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의 느낌이 강한 배우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비몽>의 주연이었고 최근 영화 <마이 웨이>에 장동건과 함께 출연하여 매스컴에 다량 노출되기도 했지만 매니아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얼굴이다.

메이저가 될 수 있음에도 마이너를 고집하는 듯 하는 그의 성향은 모든 방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간단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패션이지만 (작정하고 잘 생긴 얼굴을 가리려는 듯 공식석상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아방가르드라는 표현조차 모자랄 정도로 심하게 엉뚱하다.) 무엇보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첫 데뷔작이 묘하게 거슬릴 정도로 10년 동안 그는 여러 장르에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작품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오다기리 죠가 출연했다고 하면 거장 감독의 작품이거나 인디 계열의 영화일 것 같은 선입견을 먼저 가지게 되며 장면 속에서 아무 내용 없는 대사임에도 그가 말하면 뭔가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좀처럼 가지기 힘든 캐릭터를 유유자적 지니고 있던 오다기리 죠는 미키 사토시 감독을 만나면서 반전의 시너지 효과까지 겸비하게 된다.

미키 사토시는 1990년 대 방송과 연극계의 작가로 활동을 해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며 자신이 연출까지 맡으면서 감독이 된 인물이다. 일본은 코미디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대접받는 장르이기 때문에 다양한 코미디를 구사하는 감독이 많은데 그 중 미키 사토시는 일상의 소소함에서 끌어내는 엉뚱한 웃음으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그가 오다기리 죠와 처음 작업을 한 것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자신의 스타일로 각색한 첫 영화 데뷔작 <인 더 풀 (2004)>에서였다. 이 영화에서 서로 간을 본 두 사람은 TV에서 재결합을 하게 된다.

2006년 TV 아사히에서 ‘금요 나이트 드라마’로 방송된 <시효 경찰>은 시효가 끝난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키리야마 슈이치로가 주인공이다.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키리야마는 소부 경찰서의 시효관리과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이 시효관리과는 시효가 된 사건의 문서 처분, 유류품의 유족에게 반환하는 일 등의 절차를 맡는 한가한 부서다. 제대로 된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동료들의 말에 고민을 하던 키리야마는 시효가 된 사건을 조사해서 그 진상을 파헤치는 것을 자신의 취미로 삼기로 결심한다. 시효관리과로 오는 수많은 시효만료 사건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당시 용의자를 만나보기도 하고 범행 현장을 가보기도 하지만 15년이나 지났으니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건 자체에 대한 열기로 가려져 있던 작은 점들이 시간이 지난 현재에 그 윤곽을 드러내며 추리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람이 가득 찬 풍선에서는 풍선 본래의 크기를 알 수 없듯 미궁 속의 사건은 서서히 그 바람이 빠지면서 본질을 드러낸다. 여느 수사물과 달리 15년이나 지난 사건을, 그것도 취미로 다루는 것이라 긴박함이나 스릴은 전혀 없지만 대신 그 자리를 확실히 채우고 있는 것은 미키 사토시의 강한 디테일과 코미디다. 소소한 일상에서 엉뚱한 재미를 끌어내는 것이 장점인 그는 풀리지 않았던 사건의 해결을 아주 작은 물건, 몹시 평범한 사람의 심리에서 유추하도록 유도한다. 일반적이라면 1+1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답을 생각하지만 미키 사토시의 개그는 1과 +에 엉뚱한 반문을 하는 식이다.

시효가 지난 사건의 범인을 알았다면?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키리야마가 추리를 통해 15년 동안 밝히지 못했던 사건들의 진범을 찾게 된 후에 사법적인 처벌을 하거나 개인적인 단죄를 할까? 매회 진범을 알아낸 키리야마는 진범에게 찾아가 공손하게 말한다. 이미 시효가 끝났고, 더군다나 자신은 취미로 사건을 조사한 것뿐이므로 자신에게는 범인을 어떻게 할 자격이 없다고. 다만 자신의 추리로 채울 수 없는 공백을 채워달라며 자백을 부탁한다. 그리고 범인이 15년 전의 범행에 대해 자백하여 사건이 완벽하게 일단락되면 키리야마는 모처럼 선의를 베풀어 자백을 한 범인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며 범인에게 한 장의 카드를 내민다. 정성스럽게 도장까지 찍은 그 카드에는 범인의 이름과 키리야마의 이름, 그리고 한 문장이 적혀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추리물을 코미디로 바꾸는 기본적인 극의 구성도 엉뚱하지만 등장인물들이 주는 기발함 또한 잔잔하게 ‘우습다’. 취미가 없으니 취미를 만들어야겠다고 고민하는 키리야마의 캐릭터에서부터 그와 함께 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독특하다. 분명히 주변에 저런 사람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밋밋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엉뚱함을 지녔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사 또한 누구나 할 것 같은 평범함과, 대체 누가 저런 생각을 하나 싶은 난해함이 뒤섞여 보는 사람을 웃게 만든다. “일요일에 안경을 쓰는 건 영국인뿐이야.” 라는 밑도 끝도 없는 대사에서 근거가 무엇이냐고 정색을 해도 우습고, 그 말을 인정해도 우습다. 오다기리 죠가 저런 역할을 하는 데에는 분명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에 대한 부정을 또 다시 부정하면서 반전의 캐릭터를 주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앞 뒤 옆 모두 날카롭게 둥근 이 웃음이 미키 사토시와 오다기리 죠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시너지임을 널리 알린 이 드라마는 나름 인기를 얻어 다음 해 <돌아온 시효경찰> 이라는 제목으로 시즌 2까지 만들어졌다.

두 사람의 합작은 <시효경찰>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 중 하나 더 소개할 작품은 영화 <텐텐>이다. (국내에서는 2008년에 개봉했다.) 후지타 요시나가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면서 생략된 부분이 많긴 하지만 오다기리 죠와 미키 사토시가 엉뚱하고 황당한 웃음 코드를 잃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끌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8년째 법대를 다니고 있는 타케무라 후미야는 삼색 치약이라도 쓰면 뭔가 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할 만큼 인생이 암울하다. 그런 후미야에게 빚쟁이 후쿠하라가 들이닥쳐 84만엔을 변제하라고 한다. 돈을 마련할 방법을 생각할 여력조차 없는 무기력한 후미야에게 후쿠하라는 갑자기 이상한 제안을 한다. 현금 100만엔을 줄 테니 자신과 도쿄를 산책하자는 것이다. 황당하긴 하지만 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던 후미야는 후쿠하라와 산책을 시작한다. 이상한 차림의 두 남자는 슬렁슬렁 도쿄의 골목을 걷는다.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경찰청이 있는 카스미가세키. 이유는, 후쿠하라가 홧김에 아내를 살해했음을 자수하기 위해서다. 후쿠하라가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장소를 찾아다니는 기묘한 여행에 동행하게 된 후미야는 그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추억도 하나 둘 꺼내기 시작한다. 가족과의 추억을 따라 걷는 후쿠하라와 가족과의 추억이 없었던 후미야의 도쿄 산책은 점점 둘만의 추억을 쌓는 여정이 된다.

후미야와 후쿠하라가 주고받는 대화나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미키 사토시 특유의 코미디와 오다기리 죠만의 독특한 색채를 기반으로 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소소한 디테일은 그동안에는 둘의 작품에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공감대라는 큰 장점을 탄생시킨다. 주인공 후미야는 읊조린다. 행복은 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다가오지만 불행은 터무니없이 빨리 찾아온다고. 영화는 그렇게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지나갔던 모든 것들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음을 보여주려는 듯 잊고 있던 기억들을 그들이 걸어가는 길 위에 하나 둘 늘어놓는다. 초등학교 때 멋도 모르고 했던 뽀뽀의 상대, 처음 동물원에 갔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 어릴 적 살았던 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대도시의 쓸쓸함 같은 감성과 두 남자의 느린 발걸음 소리가 어느 샌가 보는 사람의 기억마저 되살린다. 그리고 끄덕이게 된다. ‘동네 시계방은 뭘로 먹고 사나’, ‘왜 점심시간에 나온 직장여성들은 같은 자세로 지갑을 들고 있을까’ ‘만약 마지막 식사를 하게 된다면 메뉴는 뭘로 할까’ 같은 의문을 언젠가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어떻게 되든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리가 없으므로 굳이 답을 찾지 않고 스치듯 흘려보냈던 질문들은 마치 아무 생각 없이 늘 걸었던 익숙한 동네길과 같다. 영화제목처럼 여기 저기 전전(轉轉)하는 두 남자들은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 갔던 무수한 존재들을 세심하게 되살린다. 그래서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담겨 있다. “걷다보면 알아. 상냥해질 수 있어.”

두 사람은 2010년 다시 한 번 드라마 <아타미의 수사관> 에서 만났다. <시효경찰>과 같은 수사물이지만 훨씬 더 난해해져서 쉽게 추천하기는 힘들다. 배우 오다기리 죠에게 관심이 생기셨다면 영화 <박치기>, <유레루>, <메종 드 히미코>를 추천한다. 극장에서 보고 싶다면 서두르시라. 몇 안 되는 개봉관에서 상영 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기적, 일어날지도 몰라>에 조연으로 나온다. 미키 사토시 감독의 작품으로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를 추천한다. 위에 소개한 두 편과 이 영화까지 하면 설연휴를 즐겁게 보내실 것이라 확신한다.

덧붙여 <시효경찰>은 금요일 밤 11시대에 방송된 ‘심야드라마’였다. 일본은 (일본 뿐 아니라 사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우리와 달리 매주 1회의 드라마를 방송한다. 그래서 편성되는 드라마의 수가 훨씬 많고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가 방송될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일선의 스탭들에게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노동의 착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물리적 여유가 주어진다. 많은 방송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의 드라마 제작 현실을 개선하려면 먼저 주1회 방송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청자와 방송사, 어느 쪽도 바꾸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선 스탭들만 탓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변함없이 올해도, 공중파 3사의 화려한 연말 시상식에 드라마를 ‘만드는’ 스탭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응답 2개

  1. 말하길

    걷다 보면 알아. 상냥해질 수 있어. 라니..!
    텐텐이 궁금해지네요.좋은 정보 감사해요

  2. […] 두 남자의 시너지 효과 – 오다기리 죠와 미키 사토시 _ A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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