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고등학생이 된 것을 축하한다.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1.날마다 네가 얼마나 새로운지 자문하자.

홍아야. 고등학교 입학을 축하한다. 이제부터는 고등학생이 되어야지. 내 사랑, 홍아야. 너는 무조건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하버지가 이 세상에서 제일 궁금한 게 뭔지 아니? 네가 자라서 어떤 모습을 갖추어 갈 것인지 바로 그거라는 걸 너도 알지? 만약에 네가 진정으로 네 자신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며 그래서 너만 행복하다면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 무엇을 하며 살든지 나는 무조건 네 편이 되어 너를 지지하고 축하하며 기뻐할 거다. 그건 네가 너의 가능성을 찾아 네 길을 가면서 진선미로 너를 채워 네 모습을 만들어 가기 때문이지.

홍아야, 그러나 만약에 너 자신에 대한 만족이 남들과 비교하여 얻은 것이라면 너를 지지하고 축하하는 것이 주저되는구나. 그 만족은 남들의 열등감과 불행을 바탕에 깔고 생긴 것이 거든. 나는 네가 남들과 비교하면서 쉽게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져 불행과 행복 사이를 오락가락하기를 것을 바라지 않는단다. 비교되는 상대가 바뀔 때마다 냉탕과 열탕을 넘나들 듯이 네 자신에 대한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야. 너의 길은 남들과 다른 길일 텐데 비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비교할 수 없는 데도 비교하기 위해 남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직 네가 네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야.

네 길을 찾고 싶다면 너 자신을 살펴보렴. 그리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기에 너를 기쁘게 할 것 가운데 네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네게서 찾아보렴. 그리고 그것이 네 삶에 가치나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서면 그걸 찾으러 너의 길을 떠나렴. 그걸 찾을 수 있는 너만의 길을 말이다.

네 길을 가다가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동행하던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다른 이들을 만나기도 하겠지. 학교에 다니는 그 동안도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했어. 그러나 학교를 졸업한 뒤에 사업을 하든, 학문을 하든, 예술을 하든, 진선미를 추구하는 어느 분야나 영역에서 더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지게 되지. 진선미를 추구하는 어느 길이든지 갈수록 길은 좁고 가팔라서 오가는 이가 드물지만 너는 앞서 가는 사람들을 열심히 따라갈 거다.

가다가 끝내는 네가 스승이라고 부를 오로지 한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나 예술의 대가를 직접 대면하며 배울 수도 있겠지만 학문세계에서는 책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단다. 팬클럽이 됐든 문하생이 됐든 그 누구에게 열광하면서 그의 진선미 경험을 전수 받아 너를 채우게 된단다. 네가 복이 있어 너를 열광시키는 그 한 사람을, 너를 보다 높은 수준의 진선미로 채워 성숙시켜줄 그 한사람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열광하는 연예인만이 마지막 스승은 아니라는 것은 너도 알 거다.

네가 스승과 동행하던 길은 끊어지고 네가 스승이라고 믿었던 그 사람도 거기서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가 온단다. 네가 지적인 호기심에 이끌려 진선미에 대한 더 많은 경험을 원한다면, 즉 자기완성에 대한 성취동기가 크다면, 너는 거기서 스승과도 헤어지고 이제부터 진정한 개척자나 탐험가가 되어, 너 혼자 길을 내며 나아가겠지. 수풀과 넝쿨들이 어우러져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거야. 그러나 네가 길을 내어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내디딜 수 있다면, 진선미의 어느 한 분야가 열려서,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진이나 선 또는 미를 직접 경험하고, 네 길을 따라온 사람에게 네 경험을 나눠줄 수 있게 된단다.

그 새로운 경험에 비추어 본 우주나 자연, 사회. 인간, 또는 예술의 한 분야나 사업의 한 영역은 이전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란다. 그것은 그 경험 맞추어 이전의 수많은 경험들을 재배치하고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지. 이 새로운 경험은 너를 통해서 네가 경험했던 진선미를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게 만드는 경험이란다. 이렇게 되는 것, 즉 진선미를 경험하여 너의 경험 가능성을 실현하고 그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키는 것은 너의 권리이자 의무이지.

이를테면 사업을 잘 해서 네 사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나 소비자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거나 자연과학으로 새로운 진리를 찾아 우주나 자연을 보다 분명하게 밝혀주거니, 사회과학으로 보다나은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든지. 인문과학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진선미의 발견하여 인간의 가치를 드러내거나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감동시켜 많은 영혼에 기쁨을 주는 것 등으로 진선미에 대한 너의 경험 가능성을 실현하는 길들은 많단다. 하는 일은 다 다를 수 있지만 진선미의 어느 하나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일들이지.

그러나 하버지에게는 진선미에 대한 경험의 그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보물이 아니고 진선미 자체도 보물이 아니고 진선미로 가득 차있는 네가 보물이란다. 너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여 보다 높은 수준의 진선미를 경험할 수 있는 바로 너, 진선미로 가득 차있는 너, 그래서 얼마든지 그 진선미를 퍼내어 나누어 줄 수 있는 네가 보물이란다.

그러나 홍아야, 엄마나 아빠도 그렇고 하버지도 네가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되어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단다. 물론 네가 지적 호기심과 성취동기에 이끌려 너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즐거움을 따라가다가 보니 어느덧 위대해져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 그러나 네가 하는 일이 남들에게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여도 그 일의 가치를 알기에 네 일이 자랑스럽고 그래서 그 일을 하는 네가 사랑스럽기를 바란단다. 너를 사랑하는 아빠나 엄마나 하버지도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바라고 즐겁지도 않은 일에 매달리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단다. 아니 싫어하지. 평범하더라도 아니, 돈이나 지위나 명예가 없어 남들 보기에 보잘것없어 보여도 네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고 네 스스로가 사랑스럽기만 바란단다. 우리가 너를 대견스럽게 여길 만큼 너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기를 바란단다. 자부심·자긍심을 가져다오.

위대해지길 바라지 않는대서 네 가능성을 실현하는데 게을러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훨씬 못한 가능성을 가진 다른 생명들도 진선미에 대한 자신의 경험 가능성을 실현하여 더 잘 살려고 애쓰는 걸 너도 보고 있잖니. 하물며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받은 네가, 게을러서 네 가능성 실현을 포기하고 되는 대로 살 수는 없잖니. 우주의 진화를 이끌어 왔고, 생명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원천적 힘과 가치는 진선미이며, 인간은 그 진선미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을 지닌 존재란다. 네가 진선미 중에 어떤 하나의 가치를 믿고 네 가능성으로 그 가치를 경험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너를 믿고 사랑하는 하버지는 만족할 것이다. 만약에 그 때까지 하버지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진선미를 보다 많이 경험하고 실현하는 것이 진화이고 성숙이며 발달이며, 너도 잘 살고 남도 잘 살게 하는 유일한 길이란다. 그러니 우리가 너에게 시대하는 것은 네 능력껏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네 가능성만큼의 노력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지도 않고 기대할 수도 없잖니. 네가 네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비교 대상을 찾는다면 그건 남이 아니라 너란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무엇이 얼마나 새로워졌나(日新又日新)를 날마다 너 자신에게 물어가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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