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100 자루 소금의 힘

- 엄현옥(수필가)

나와 ‘수유 너머’와의 인연은 그리 길지 않았다. 3 년 전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수유너머’가 제 발로 다가왔다. 덩굴째 굴러온 호박이었다. 당시는 그 기쁨을 표현할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했다. 넓지 않았던 거실을 강의실 삼아 ‘임꺽정’과 ‘사기’를 만났다. 시대와 무관하게 분명한 캐릭터로 나를 사로잡았던 홍명희와 사마천은 물신 숭배에 허우적대던 내 등에 죽비를 내리쳤다. 강의가 끝나고 외등에 의지해 내리막을 ‘통통’ 걸어올 때의 뿌듯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발 아래 깜박이던 현란한 불빛들을 보며 신선한 힘이 충전됨을 느끼곤 했다.

아쉽게도 ‘수유너머’ 의 구로 시절은 짧았다. 그는 떠났지만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기에, 제 곡조를 못 이기던 짝사랑의 노래는 메아리 없는 허공에 분사되었다. 그 후, 서툰 농사일기를 시작으로 한 ‘여강만필’을 통해 ‘수유너머’와 재회하였으니 바로 ‘위크리 수유너머’였다. 일상의 번잡함에 얼마쯤의 자신을 내어주고 ‘내가 싫어지는 나’로 지낼 쯤이면 ‘위크리 수유너머’는 어김없이 배달되곤 했다.

그것은 주 1회 복용하던 알약이었다. 그것은 사용자도 모르게 잠식한 컴퓨터의 바이러스를 체크하고 치료해 주었다. 백신은 속도를 망각한 채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질주하다가, 원심력에 의해 멈출 수 없게 된 나를 추스르게 했다. 가정과 직장과 글쓰기라는 트라이앵글의 각을 적절히 유지하며, 관성에 의해 이어가는 내게 투여된 백신이었다. 때론 갈등을 피해 밝은 곳만을 보고자 했던 안이함에서 벗어나라고 일깨웠다. 나아가 네 이웃이 이 풍진 세상의 바다를 일엽편주에 몸을 맡긴 채 건너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백신은 짭짤한 소금 맛이었다. 물신 숭배자가 되어 저자거리를 헤매는 도회인들에게 더 이상 정신이 곪지 않도록 가차없이 뿌려지는 소금이었다. 소금은 골리앗을 향한 수많은 조약돌의 외침을 대변했다. 사회의 사각지대를 집요하게 파헤쳤던 청년노동의 현실은 물론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삼켜야 했던 희망버스의 생생한 중계, 구제역 파문으로 생매장된 동물들의 아우성, 간과할 수 없는 한미 FTA의 부당성…. 그간 ‘위크리 수유너머’가 도덕 불감의 세상을 행해 투척한 혼이 담긴 메세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또한 문화와 역사, 일상으로 나뉜 다양한 꼭지에서 맛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컸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짭짤하게 읽힌다는 점이다. 대부분 왕소금이었으나 때로는 고운 소금처럼 온 몸을 슬며시 녹여 영혼의 부패를 늦추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만난 집어등(集魚燈)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그것의 그물에 걸려 자신만의 가치를 잃고 표류한다. 마치 그 기준이 절대가치인양 평준화된 의식으로 세상의 일률적인 눈금으로 자신을 측정한다.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한다. 위도가 3도 다르면 모든 법률이 무너진다.’는 파스칼의 역설과는 달리, 유일신인 물질만능으로 모든 것이 귀결되는 세상의 속도는 버겁기만 하다. 그런 세태의 물길 속에서 더러는 방향을 잃곤 한다. 그러나 ‘위크리 수유너머’는 사회 곳곳에 고통과 아픔이 창궐하듯 소외된 자들의 희망을 응원하는 어디선가 묵묵히 번식 중임을 믿게 했다.

깨어있는 공동체의 결과물 ‘위크리 수유너머’ 의 귀한 소금이 어느덧 100자루가 쌓였다. 편히 앉은 자리에서 필진들의 피땀과 눈물을 편히 들이켰던 독자는 마땅히 헹가래로 100호 발간을 축하할 일이다. 필진들의 도저한 내공과 깨어있는 의식으로 쌓인 100자루의 소금, 그 옆에 바람에도 사위어지지 않을 촛불 몇 개 밝혀두고 싶다. 더불어200호 발간을 기대하는 것이 막연한 바람은 아니리라.

응답 1개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