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학교에 보내면서 걱정도 되는구나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홍아야.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구나. 네가 세 살 때 어린이 집에 가는 것을 무서워하다가 결국 그만 둔 일이 떠오르기 때문이야. 어린이집 갈 때마다 ‘엄마 나 어린이집 무서워’ 하던 말이나, 어린이 집에 가서 선생님에게 ‘나는 엄마 올 때까지 잘 거야’ 했다는 말을 아빠 엄마도 그리고 나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네가 유독 낯을 가리고 고집이 세므로 다루거나 달래기가 어려워서 선생님이 보이지 않게 너를 따돌렸더구나. 그 일로 사회생활 첫 걸음마에 헛발을 딛뎌 넘어진 것 같은 네 모습을 네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네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갈 때마다 네 아빠와 엄마는 그 일이 떠올라 긴장했을 거다. 나도 그랬고.

  네 때는 어떨는지 모르나, 지금 대개의 한국 학교에서는 자아실현이라는 본래의 교육 목표가 뒷전에 밀리고 부모나 교사, 학생 모두가 점수나 등수만 따지는 경쟁 논리에 빠져 있단다. 남보다 앞서는 것만 유일한 가치이고 의미이므로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얼마나 자랐는지는 묻지도 않는단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하거나 못하거나 쫓고 쫓기는 처지는 마찬가지지. 네 때도 이렇다면 네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단다.

왜 고등학생에게 대학 진학과 취업과 결혼과 출세(특히 돈이나 권세, 명예를 독차지하기)라는 단 하나의 삶의 줄거리에 줄 세우기를 강요하는가. 가정과 학교와 사회의 이러한 강요가 과연 정당한 건가. 그 강요의 결과로 고등학생들에게 어떤 괴로움이 생기고 결국은 어떤 인간을 만들어지는가. 이런 억압적인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해야 하고, 학교에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고등학교 생활을 즐겁고 또 의미와 가치 있게 보낼 수는 진정 없을까. 이제 이 모든 문제가 네 앞에 놓여 있으니 출발점에 서서 하버지와 함께 먼저 풀어 보자꾸나.

먼저 학교가 왜 이 모양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 따져보려면 학교의 기원과 발달사 그리고 교육 목표와 교육 정책, 교육과정 등을 차례로 살펴보아야 한단다. 홍아야, 그러나 그 작업을 아주 작게 줄여서 학교의 기원과 변천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실질적인 교육 목적을 찾아내자. 그러면 누가 누구를 어떤 인간으로 만들려 했는지 교육의 실질적인 목적이 보일 테니까. 오늘날 억압적인 학교 교육의 원인을 거기서 찾아낼 수 있지 않겠니.

생활이 단조로웠던 원시 시대에는 학교라는 독립기관이 필요가 없었겠지. 부모와 마을 어른들의 경험만 제대로 전수받아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가정에서 씨족, 부족, 국가로 공동체의 단위가 점점 커지면서 통치자에게 통치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지. 그래서 마치 벌통에서 후계자를 특별하게 양육하기 위한 집인 여왕벌대와 같은 후계자 교육 전담 기관을 만드는데 그게 학교의 출발이야. 그 공동체에서 가장 지혜와 지식이 많은 자를 불러다 거기에서 통치에 필요한 지식과 지혜로 특별한 후계 수업을 시킨 거야.

그러나 통치자 혼자 똑똑한 것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느니만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측근들의 보좌(도움)가 필요해졌어. 그래서 귀족들의 자식을 나라에서 맡아 가르치게 되는데 고구려의 태학이나 신라 시대의 국학이 바로 그런 곳이야. 고려의 국자감이나 조선의 성균관도 그런 곳인데 그 학교 이름에 나라 국(國)자가 들어가 있듯이 모두 귀족의 자식들 교육을 위해 국비로 운영되던 학교들이지. 일반 서민을 위한 학교는 없었고 지방에서 힘께나 쓰는 토호(지방 귀족)들도 자식들을 가르치려고 고구려 시대의 경당이나 조선 시대의 향교, 따위를 만들었지만 그곳에서는 아무래도 축적된 지식과 시설과 지원과 교사의 능력이 국가 단위의 학교에는 미치지 못했겠지.

일반국민을 위한 학교의 시작은 그리스의 schol이라더라. 영어의 school, 독일어의 Schule, 프랑스어의 cole 어원인 라틴어의 schola는 거기서 온 말이래. 그리스어 schol은 한가(閑暇)를 뜻하기도 해서, 고대 유럽의 학교가 유한(有閑)계급의 교양습득 장소로서 출발하였음을 말해주고 있지. 고대 그리스의 정치제도는 공화제로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서,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가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위하여 통치했단다. 그들은 동방의 전제 군주와 투쟁하여 승리하고 자국의 군주제마저 없애버리고 자유인이 되었어. 그러나 그들은 정복전쟁으로 정복지의 생산물을 빼앗고 정복지의 주민을 잡아다 노예로 부렸기에 놀고먹을 수 있었지. 그 대신 그들은 학문과 교양과 예술과 체육에 전념하여 수준 높은 문명을 건설했는데 그걸 이어가려고 공부했다기보다는 똑똑해야 공직을 얻어 지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교육에도 전념했어.

그렇다면 일반 국민을 위한 초등교육은 언제 시작했을까.

초등 수준의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보면 고려·조선시대의 서당(書堂)이 그 기원이라 할 수 있어. 그러나 서양식의 근대 초등학교는 갑오개혁 이후 세웠단다. 1895년 8월 1일 「소학교령」이 시행되면서 한성(서울)에는 수하동소학교를 비롯한 8개의 관립소학교가 그리고 이어서 각 도(道)에 약 100여 개의 공립 소학교를 세웠어.

교육이 순종하는 국민을 만들어 내는 지배자의 통치 수단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은 일제 강점기였단다. 일제 강점기에는 초등학교를 면단위에 하나씩 세웠어. 일제 강점기의 교육목적은 내선일체(內鮮一體 : 안에 일본과 밖에 조선이 하나가 됨)로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와 백성이 되는 것)가 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전인격적인 교양인이 아니라, 한국인을 부려먹는 데 손발이 될 하급 관리를 양성하려는 지식과 기능이었단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했어. 게다가 일본 황제에게 충선을 맹서하는 황국 신민 서사라는 것을 소리 내어 외웠어야 했단다. 일제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전시체제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전쟁터에서 총알받이로 쓰려고 학생들에게 공부보다는 고된 군사 훈련 (일명 교련)을 더 많이 시켰단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바꾸는 창씨개명이 시행하고 이를 거부하는 학생들을 모두 퇴학시키고.

광복 이후에는 미국식 학제를 본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6년, 대학교 4년을 이수 연한으로 한 단선형으로 바꾼 다음, 중학교 6년은 다시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으로 나누어 미국을 본딴 6.3.3.4의 학제를 마련해서 지금까지 이어왔단다. 일제의 찌꺼기를 버리고 민주주의 시대에 발맞춘다하여 1982년에는 중고등학교에서 1주일에 1번 사복을 입을 수 있게 하고, 1983년에는 아예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도록 자율화했단다. 1996년에는 인간이 먼저 생겨났지 나라가 먼저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뜻, 즉 나라를 위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나라라는 뜻에서 국민학교(國民學校)의 이름을 초등학교(初等學校)로 고치게 되었다.

이제 유럽 쪽을 잠깐 보자. 유럽의 중세 때는 종교·문학을 위주로 한 인문교육 중심의 교육기관이 수도원이었지. 그 후 첫째, 상공업의 발달로 시민계급이 등장하면서, 이들 유한계급의 자식에게 인문학(오늘날 인문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속적인 중등학교를 많이 세웠어. 산업혁명 이후에는 전통적인 도제제도(徒弟制度- 유능한 장인에게 현장에서 실습 노동을 하면서 배우는 제도)보다는 직업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실업학교가 발달했고. 근대국가가 성립되면서 백성들을 한 사람씩 말로 상대하기보다는 글로 다스리기 위해 문자를 해독시키려고 초등교육 중심의 보편적인 국민교육제도를 마련하게 돼.

홍아야, 앞에서 살펴본 학교의 기원과 발달로 이제 현재 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억압과 갈등의 원인이 무엇이지를 함께 찾아보자. 먼저 누가 학교를 지어 누구에게 어떤 교육을 시켰는지 교육의 주체와 객체와 교육내용을 찾아보자. 우리는 지배자나 지배집단 또는 국가가 학교를 지어 위로는 자신의 지위를 이어갈 자식을 가르쳤고 아래로는 근대의 초등학교에서 백성을 부려먹기 쉽도록 애국심과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음을 살펴보았어.

여기서 말하는 애국심은 지배자에 대한 충성심이며. 피지배자에게는 억압에 복종하여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게 만드는 마음가짐이지. 학교를 세워 교육비를 대고, 교육 목적과 내용을 정하고, 교사를 선발한 교육의 주체가 국가인데, 그 국가를 누가 지배하겠니. 왕이나 귀족들이, 시민혁명 이후 공화정에서는 돈 많은 시민 계급이 지배했어. 말로는 민주주의지만 오늘날에도 정치 자금으로 정치인을 부릴 수 있는 부자들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단다. 역사 발전에 따라 지배자나 지배 계급은 바뀌지만, 그들의 교육 목적은 한결같이 순종하는 국민이나 노동자를 만드는 데는 변함이 없었어. 그러니 당연히 교육과 학교는 사회를 개혁하는 수단이 아니라, 지배질서를 고착시키려는 수단 즉 지배와 통치를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잖니. 군대나 교도소가 중요한 통치 수단이고 매우 억압적인 곳이듯이 학교도 중요한 통치 수단인 그만큼 억압적인 곳이야.

이번에는 학교에서 누구를 데려다 가르쳤는지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왕세자 즉 지배자의 후대 한 사람이었다가 귀족의 자식들로, 그리스 시대에는 자유민으로, 근대는 시민으로 교육 대상의 범위가 넓혀짐을 살펴보았어.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 의식을 가지고 교육의 기회균등을 요구하게 되자 초등학교가 국민 보통교육 기관이 되어 누구나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거야. 그러나 여기서 시민이란 일반 국민을 가리키는 오늘날의 개념과는 달리 상공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었어. 교육의 기회균등이라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시민에 들지 못했던 여자나, 빈민, 인종과 종교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은 시민 즉 오늘날 국민이 아니어서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어. 20세기 전반기만 해도 미국의 남부 주들은 백인 학교에 흑인을 받지 않는 흑백 차별이 엄격해단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교육 평등에 도달하기가 어려웠을까. 아니 지금 한국의 교육은 평등한가. 사회적인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당연히 그 거울인 하교 교육도 평등해질 리가 없지. 특히 한국의 교육은 불평등한 사회를 교정하는 기회이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단다. 사회적인 대립과 갈등이 학교에서 더 비뚤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한국의 학생들의 삶이 갈수록 고달지고 있어. 철저한 좌절감을 심어주어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만드는 과정과 철저한 우월감을 심어주어 독점과 독재와 독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소수의 지배자들을 만드는 과정이 하나의 줄 세우기 경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그 경쟁적인 삶으로 얼마나 고달파지겠니. 경쟁 대상끼리 서로 시달리게 하다보니까 인간관계가 다 끊어져 욕설과 왕따와 괴롭힘과 학교 폭력이 일상화된 것이 오늘날의 학교 현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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