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코뮨과 민족지의 가능성

- 하지메

* 본 논문은 원래 2012년1월14일,15일에 교토에서 오사카 대학의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 교수가 이끈 대중문화연구 프로젝트팀과 교토 대학의 이토 키미오(伊藤公雄) 교수가 이끈 공공권을 둘러싼 연구프로젝트팀 그리고 오사카 지역의 재야 협동조합/카페/연구 기관인 커먼즈 대학이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를 초대해서 연 국제연구 워크샵 <공간과 거버넌스>에서 발표되었던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의 맥락 등을 고려해 약간 수정을 했다.

1. 공간 오큐파이, 그리고 거버넌스

생각해보니 지난해는 이번 워크숍 주제인 “공간”과 “지배”의 양면에서 사건으로 가득한 해였다. 3 월 11 일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는 일본 도호쿠 지방의 해안 지역을 광범위하게 파괴하였고,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는 핵 물질을 대량으로 분출하였으며, 일본 정부는 통치 능력의 한계를 노출하고 민중의 자치와 (때로 강요되었던) 노동자의 헌신과 “tomodachi(친구)”의 ‘작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1.

한편, 바다 건너로 눈을 돌려 보면,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게 된 민중 봉기의 파동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정치 질서를 크게 바꾸어,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의 거리 행동과 교차하면서 월가 점거 그리고 미국 각지와 전세계의 99% 대 1%의 점거 (occupy) 운동으로 이어져 갔다. 이는 몇 개월 동안 경찰 등 통치 기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어 성장한 후 지난해 11 월 주코티 공원을 비롯한 근거지를 빼앗겼다. 하지만 아직 그 불씨는 피어 오르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 새로운 행동이 되어 나타날지 모르는 상태이다.

점거운동처럼 권력과 직접 대치하든, 수유너머와 같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든 자치 공간적 점거임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거버넌스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집단성과 공동성을 가진 점거로서의 코뮨은 힘을 가진 한쪽이 다른 쪽을 쫓아내거나 지배하기 위해 조직된 것은 아닐 것이다2. 물론 이것은 자치적인 공간 속에서 일방적인 힘의 행사, 불평등적인 분업,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지배의 양상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미시 정치적 배치의 문제가 넓은 의미에서의 공동체/코뮨 활동 (혹은 사회 운동 일반)의 역사 속에서 존재해왔기 때문에 이번 워크숍에서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코뮨으로서의 “공간”과 함께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한다. 그러나 거버넌스라는 개념 자체에도 통치와 연결된 의미가 있으며 충분히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워크숍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 수유너머N에서 대화를 가겼을 때 “거버넌스 … 우리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이라는 발언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3. 어쨌든 우리에게 중요한 물음은 셀프-거버넌스 셀프-오큐페이션으로의 코뮨, 즉 참가자를 위해 참가자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과 거버넌스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2. 코뮨, 그리고 민족지(ethnography)라는 이론에 대해

그런 코뮨 / 공동체를 어떻게 이론화하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여기서 기존의 현대 사상에 근거한 존재론적인 성격이 강한 코뮨/공동체 이론에 덧붙여, 대안적인 또 하나의 집단 이론 관점으로 민족지(ethnography)의 실천4을 제안하고 싶다. 물론 이 제안은 전자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자의 존재론적인 논의 속에도 민족지 연구의 성과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지를 봐도 일반적으로는 명시적이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떤 형태에서든 그 기반에는 존재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5. 확인을 위해 말을 하자면 어떤 사회에 몸담고 그 사회 전체 혹은 그 사회 속의 현상을 기술하는 행위인 민족지는 일반적으로 인류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 사용되는 품질 정보 수집의 방법론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현지조사”와 “글쓰기”의 위상에 대해 반성적인 고찰을 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의 소위 포스트모던 인류학(또는 포스트콜로니얼 인류학)은 (객관적인 사회과학의 생산물로 생각되어 왔던) 민족지가 사실은 인류 학자와 연구대상인 커뮤니티 사이에 만들어지는 구축물이라는 것을 밝혀냈다6.즉, 민족지는 반성적인 이론의 대상이 되는 것과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 실천 자체가 이론적인 행위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지는 수행적 이론이라고 할 수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론은 서술적으로 전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위상은 인류학에서도 여전히 하위이론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다.

타사키 히데아키(田崎英明)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입문서의 탈을 쓴 뛰어난 철학적 저작에서 이론 (테오리아theoria)이라는 말 자체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에서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자가 아니라 순수한 관찰자로 파견된 파견단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지적하고있다. 이론이라는 개념은 그 어원에서 타자의 사건을 관찰하고 그 사건을 말을 통해 반복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론이야말로 한때 민족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7

3. 코뮨의 민족지의 실천

코뮨의 이론으로서의 민족지는 일반적인 민족지, 즉 현대화된 주류사회에 입각하면서, 그 이외의 비주류 혹은 비서구 사회를 대상화하고, 그 사회 간을 왕복하는 민족지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첫째, 만약 후자가 근대사회에 기반을 두면서, 궁극적으로는 근대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 또는 변혁의 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면, 전자는 그것을 코뮨에 입각한 것으로 보고, 코뮨들 사이에서 행해진다. 기존의 민족지는 유럽과 미국을 앎과 정보수집 그리고 그 생산가공의 중심지로 삼은 오리엔탈리즘적이고 파놉티콘적인 시선을 비판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정보망을 따라 생산, 유통,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코뮨에서의 민족지 또는 코뮨 간의 민족지는 전혀 다른 회로들을 갖게된다. 이는 오리엔탈리즘 비판과 같은 지정학적이고 다분히 추상적인 의미를 갖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지적 산물로서의 민족지가 갖게 되는 시야나 문체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존의 민족지가 알게 모르게 탈마술화된 근대세계를 사는 자유롭고 합리적인 독자를 상정해 왔다면, 코뮨의 민족지는 각각 다른 삶이나 운동의 터전에서 사는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한다8. 관찰 → 기술 →독해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민족지의 회로는 코뮨에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코뮨 간에서도 물론 가능할 것이다9.

둘째, 일반적인 민족지가 대상이 되는 사회에 대한 진실을 구축하는 데 여전히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비해, 코뮨의 민족지는 기술에 의한 진실로서의 지식 또는 실증에 주안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식은 코뮨과 그 구성원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는 한 요구되는 것이다. 즉, 코뮨 민족지는 기술적(descriptive)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어떻게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라는 처방적(prescriptive)이고 개입적인 특성을 가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응용인류학적이며 어떨 때는 치유적인 기법과 이어져 실천되는 것도 그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실천일 것이다. 이렇게, 코뮨의 민족지는 “지금, 여기”에서의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코뮨이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한, 코뮨의 민족지는 “지금,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할 수 있는 것이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라는 것이다. 예시적 정치란 현실 속에서 마치 혁명 이후의 유토피아가 실현된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혁명을 “지금, 여기”서 수행적으로 쟁취하는 것과 동시에, 아직 존재하는 문제의 근원을 밝혀내고 해결의 길을 만들려고 하는 직접행동과 아나키즘의 전통에서 태어난 개념이다. 그런 월가점거의 (비)지도자로 구미 언론에서 지목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예시적 정치의 구축과 분석을 위해 인류학적/ 민족학적 앎의 아카이브로 민족지를 이용한다10. 이것은 레비-스트로스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인류학/민족학자들이 잃어버린 사회 혹은 문화에 대한 슬픔에 추동되었던 것(마치 벤야민의 천사가 과거의 잔해를 바라보면서 미래로 날려 갔듯이)과 대조적으로, 이러한 멜랑꼴리를 넘어 희망으로 향하려고 하는 자세를 갖는다. 이러한 민족지의 이용에 의해 코뮨의 예시적 정치의 시간은 인류사적이고 역사적인 시간뿐만 아니라 유토피아적인 시간을 혼재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코뮨에 있어서의 민족지의 실천은 미래의 유토피아와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진행 되온 세계화의 과정에서 인류가 잃어버린 혹은 잃어 가고 있는 야생의 사고에 동등한 가치를 갖게(coeval) 할 것이다11.

4. 맺음말

코뮨에서의 민족지 실천는 “말하기-듣기” “쓰기-읽기”라는 각각 타자와의 공동작업을 수반한 창조 활동이며 미디어 활동이다. 따라서 그것 자체가 코뮨을 형성하는 실천적인 활동일 수 있다. 또 여기서 민족학자(민족지 실천자)는 듣는 사람과 필자에 한정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학자”의 존재 의식이 의거하고 잇는 “서구”나 “학회”등의 보편성의 환유가 작동하지 않는 이상적인 지식인 코뮨(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않았지만)에서는 (민족학자에 대답해) 말하는 사람도 (민족지를 읽는) 독자도 쉽게 민족지 실천자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12. 또 이러한 실천은 코뮨 활동으로의 다양한 방식으로의 참여, 즉 다양한 포지션을 취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도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일상성 속에 발을 붙인 신체적인 지성이 코뮨에 깃든다. 그것은 이전에 서울에서의 워크숍에서 등장한 몇 가지 인상적인 신체성의 표상/형상화, 즉 상냥함의 시선 (호리카와), 예감의 시선 (도미야마) 등을 갖추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13. 그것은 또 보기-보이기, 말하기 – 듣기의 주체성이 반전을 거듭하여 상호 승인에 이르는 사회관계로 특징지어지는 제3섹터적인 공간(사카이)이기도하다14.

본 논문은 공간에 있어서의 거버넌스를 비계층적적인 것으로 하기위한 이론적 관점로서의 민족지의 가능성에 대한 제안이다. 그러나 필자의 만성적인 공부 부족과 매우 단기간에 준비되었다는 이유로, 부족한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여러분의 기탄없는 의견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다.

후기:
발표에 이어져 열린 토론에서 받은 질문은 어떤 면에서는 타당했으나 예상 밖의 것이었다. 필자의 해석을 가미해 각색한다면 그 질문의 요지는 이랬다: 도대체 이 코뮨의 민족지라는 게 뭐냐? 정확한 그림이 보이지 않고 너무 이상주의적인 것이 아니냐? 지극히 타당한 질문들이었다. 부산-오사카 항로에서 쓰여진 몇 페이지에서는 명료한 그림은 전혀 안 나오고 실제로 이는 시론에 불과하다. 특히 민족지의 이론적인 설명과 그 목적론적인 효능이 섞여 서술되어 버린 바람에 비약과 불분명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핑계처럼 들릴지라도 필자의 문제의식을 설명한다면 수유너머에서 겪은 경험을 스스로 이해하고 타자에게 이해시키려고 한다면 이 논문에서 말한 ‘이론적’인 작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지극히 실천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란한 세계화를 이룬 자본주의는 엄청난 소리를 내며 균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구를 중심으로 한 대학의 지식은 이미 우리가 분쇄하려고 하지 않아도 몰락하고 있다(하지만 아마도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현대 주류 문화는 이를 마치 주나라의 가르침처럼 끝까지 지켜나가겠지만). 어떻게 희망버스를 이어가게 만드는가 어떻게 오큐파이 운동 등을 단지 이름만 갖다 붙여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우리 것으로 만드는가? 어떻게 그것이 우리 생계에(특히 육아의 세계) 도움이 되는가? 이런 망상들이 머리 속을 날라 다녔지만 지금 여기서 나에게 답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앞으로 이번 교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해답을 찾아갈 수 있으면 한다.

  1. 미군은 지진 후 피해지역에서 Operation Tomodachi를 펼쳤다. 일본 미디어와 그 스폰서들은 무능한 일본 정부를 도와주는 그들이 자신들을 친구 대접해준 고마음을 감격스럽게 전해주면서 이들이 옛날에 문제가 된 원자로를 강매했던 사실과 현재도 진행중인 오키나와 미군 기지문제를 일본 국민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잘 꾸몄다. []
  2. 나쓰메 소세키는 「단편(斷片)」이라는 글에서 “두 개가 same space 즉 occupy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사실 선악의 피안에서 강자가 약자를 필연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라고 하고있다. 또한 점거운동 occupy / occupation이라는 말은 사실 이스라엘 같은 식민지 제국주의자 것은 아닐까라고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를 오랫동안 문제로 삼아 온 연극사상가/활동가 이케우치 분페이(池内文平) 씨와 사쿠라이 다이조(桜井大造) 씨는 지적해 주셨다. 이들은 occupy / occupation이 가지는 악몽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의미를 비추고 있다. 물론 이것이 점거운동의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
  3. 한국어로 거버넌스는 협치로 번역된다고 소개했는데 이에 대해 일본에서 온 참가자는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 이 번역어가 시민운동의 문맥에서 쓰인다는 것을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 같다. []
  4. (역주) 민족지의 실천(관찰 및 기술 행위)은 현지 조사(fieldwork)라고 한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결과물을 총칭해 민족지(ethnography)라고 불기도 한다. []
  5. 전자의 예로는 이진경 “코뮨주의 : 공동 성과 평등 성의 존재론” 그린비, 2010, 장 – 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니시타니 오사무 외 역, 以文社, 2001 등이 있다. 후자의 예로는 Michael D. Jackson, At Home in the World, Duke University Press, 1995 등이 있다. []
  6. 이것은 기본적으로 미국 문화인류학의 맥락에서의 이야기다. 프랑스, 영국 인류학의 전통에서는 반드시 동일한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과 한국의 인류학은 이러한 여러 전통들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둘 다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을 정리하는 작업은 필자의 능력과 본논문의 주된 영역 너머에 있다. []
  7. 타자키 히데아키 “젠더/섹슈얼리티,” 이와나미 서점, 2000, 제 1 장. 아마 타자키의 이론에 대한 논술(특히 그 마조키스트적인 측면에 대한 고찰)은 민족지에 대해서도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복잡하고 존재론적인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
  8. 비서구(구미)에서 비서구(구미)로 이어지는 민족지의 회로는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비서구에서 발전해온 인류학에 전통에서도 볼 수 있는 것 같아. 물론 이는 비서구에서의 이류학이 서구의 인류학에 비해서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여기에서의 서술은 주로 아프리카 연구를 한 인류학자 마츠다 모토지의 생활에 대한 관점에 힌트를 얻었다. 松田素二『日常人類学宣言!:生活世界の深層へ/から』、京都:世界思想社、2009年 (마츠다 모토지, 일상 인류학 선언! : 생활 세계의 심층에 /에서, 교토: 세계사상사, 2009 년). []
  9.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실천은 현재 코뮨을 상정한 민족지 사용의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좋은 사례일 것이다.그는 자신의 연구과 실천을 아나키스트 인류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David Graeber, Fragments of an Anarchist Anthrpology Chicago : Prickly Paradigm Press 2004 デヴィッド・グレーバー『アナーキスト人類学のための断章』高祖岩三郎訳、以文社、2006年. Possibiliteies : Essays on Hierarchy, Rebellion, and Desire. Oakland, CA and Edinburgh, UK : AK Press 2007. 이들 출판되었던 저서 외에도 인터넷에 많은 코뮨적/아나키스트적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쓴 논문이 다수 있다. 그런데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기술은 주로 미국이나 유럽의 독자를 상정한 면이 큰 거 같아. 물론 그의 이론은 오히려 일본이나 한국에서 일찍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의 민족지/글쓰기는 이 지역의 언어나 문화로 번역되었을 때 그 실천적인 효과를 갖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다른 번역/회로을 도모(圖謀)해야 한다. []
  10. 위책. []
  11. 요하네스 파비안은 인류학자들(특히 구조주의)이 어떻게 대상이 되는 집단에서 현재성이라는 시간적 존재성을 박탈하고 비서양에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Johannes Fabian, Time and the Other : How Anthropology Makes Its Objects. New York :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그레이버의 인류학은 아주 고전적인 민족학에 기대는 바가 많고, 포스트모던 인류학 이후의 상식을 거의 완전히 무시하고있는 것이다. 파비안이 현재성 속에 서구와 비서구의 동시성과 동등성을 주장했던 반면 그레이버는 이론형성과 실천에서 과거, 현재, 미래 인류의 모습을 교차 공존시킴으로 인류학의 자기 – 타자(연구자-대상) 문제를 획기적인 형태로 변화시켜 그 한계를 극복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잃어버린 것, 얻을 수 있는 것, 둘 다 모두에게 주목해야 될 것이다. []
  12. 청자에 의한 창조에 대해서는 하나다 키요테루가 1959 년에 낸 평론 “야나기타 쿠니오에 대해”속에서 민속학자 야나기타 쿠니오가 1939 년에 이런 부분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있다. 花田清輝『花田清輝評論集』粉川哲夫編、岩波書店、1993年 (이 이해는 코가와의 『花田清輝とメディア』에서 얻었다. www3.gimig.co.jp/hanada/kogawa.html). 또한 이것은 서울에서의 국제 워크샵에서 나가오카 다카시(永崗崇)가 협동 표상에 대해 말했던 것과도 연관이 있다. 또 인류학자 로이 와그너는 “문화”가 인류학자에 의해 발명되고 또 현지 사람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Roy Wagner, The Invention of Culture, Chicago and London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5. []
  13. 호리카와 히로미(堀川弘美) 「마쓰시타 류이치의 운동: 상냥함을 중심으로」(「松下竜一の運動:やさしさを手がかりに」)(2011년2월24일 수유너머N 국제워크샵에서 발표), 冨山一郎『暴力の予感』岩波書店、2002年(도미야마 이치로 지움, 손지연, 김우자, 송석원 공역, 『폭력의 예감』, 그린비, 2009. []
  14. 사카이 다케시(境毅) 「‘지금’ ‘여기’서부터의 사회변혁론」(「いま」「ここ」からの社会変革論)(2011년2월25일 수유너머N 국제워크샵에서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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