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김정일 가슴 좀 만지게 해 주세요

- 피코테라

 정근이의 사진관과 집이 압수수색 당한 후 나는 정근이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사건링크 : http://cafe.daum.net/freePark/17wt/3). ‘같이 살기 시작’이라는 말이 좀 선언적으로 들리는데 나는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고, 정근이는 압수수색 당한 그 현장에 머무는 것이 버겁고 힘들어서 자꾸 내 방에 오고 그랬었다. 일주일에 사흘을 우리는 같이 잤다. 정근이가 좋아하는 영화(스즈키 세이쥰, 재팬 로망 포르노)를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정근이가 좋아하는 음악(펑크, 그라인드 코어)를 역시 난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근이와 나 사이에 대화는 극히 절제되어있었고, 난 내 공간을 여튼(!) 정근이와 공유하고 있기에 같이 식사는 자주 했다. 물론 거의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아, 이 이야기는 2011년 9월 21일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일단 그렇게 3개월을 보냈다. 경찰과 검찰과 법원의 현명한 판단으로 정근이는 구속되었고, 유치장에 갇혀있다가 구치소로 옮겨졌고 검찰조사 이후 기소되었다. 정근이는 경찰에 어이없게 구속되는 날 새벽에도 내 방에 있었다. 난 정근이가 구속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침대에 자빠져 퉁명스럽게 있었다. 정근이는 빅맥 라지세트를 시켜먹고, 입 안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털어 넣은 후 보일러도 틀지 않는 맨 바닥에 이불 두 장을 깔고 누웠다. 그날 저녁, 정근이는 구속되었다. 2012년 1월 11일의 일이었다.

이제, 정근이는 내 방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내 방에는 지금 코드꽃은 진공청소기와 비닐봉투와 머리카락과 곰팡이 슨 냄비가 뒹군다. 일단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다. 지금은 박정근을 격하게 포옹하는, 박격포 까페(http://cafe.daum.net/freePark)를 만들어 정근이 관련 소식을 모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정근이의 면회 일정 등을 조정하고 있다. 방에 나뒹구는 맥도널드 쓰레기 봉투와 바라보는 날이면 정근이 꿈을 꾼다. 주로 정근이가 등장하지는 않고 정근이가 나오는 중이니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술자리를 준비하는 꿈이었다. 슬프고 허망한 꿈인데, 글로 써 놓고 보니 꿈의 기괴함이 탈색된다.

정근이에 대해 귀찮은 동거인이 아닌, 매의 눈빛을 가진 이 시대의 선지자라 가정하여 생각 해 보기 시작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기사 댓글 등을 유심히 보았다. 몇 가지 키워드가 잡힌다. ‘국가보안법,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명박 정권의 무리수, 변양균, 앙망합니다.’ 정근이가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반대했었나? 가령 누가 “님, 국가보안법 반대하심?” 물어보면 “그렇슴.”이라고 정근이는 답하겠지만, 뇌 속에 장기기억으로 “난 국가보안법 반대임”을 입력하고 살던 친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상/표현의 자유 역시도 난 정근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근이는 사상의 자유를 적극 지지하였을 것이 틀림 없지만,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고자 트위터를 했느냐 하면 그건 나로서는 대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확실한 것은 정근이는 트위터로 이런저런 막말과 농담을 마구 해대고 그러다 사람들이 이야기 퍼뜨리고 말 걸 어오고 하면 재미있어 했던 것 같다. 반MB?어짜피 이쪽에 관련되서는 수많은 투사들이 있으니 지구의 모퉁이에서 나랑 놀던 정근이가 이런 위대한 일을 도모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반MB하려면 트위터 할 게 뭐가 있나, AK-47 100정만 밀수입 하면 되지.

 자, 그렇다면 박정근 사건은 도대체 무엇이며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런 질문에 호기심을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박정근의 동거인이자 관찰자로서 내가 할 말은 없다. 태양에서 발생한 사건이 지구까지 전해지는데 8분 20초가 걸린다 하는데, 빛의 단위보다 훨씬 쪼잔한 인간사의 의미야 뜻한 대로 당도할 리 만무하다. 다만 나도 정근이와 같은 트위터 사용자이고, 우리민족끼리를 몇 번 리트윗 했으며 각종 막말과 농담으로 장난을 친 사람으로서 혹시 정근이가 나의, 우리의 죄악을 대속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해 보았었다. 하지만 정근이 어머님은 정근이 아버지와 함께 정근이를 낳으셨고, 정근이는 죽지도 부활하지도 않았으며, 정근이를 폄훼하는 이들이 정근이를 보안수사대에 팔아 넘긴것도 아니었으니, 정근이의 운이 더럽게 나쁜가 보다 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뻥이다. 그냥 넘어 갈 순 없다. 이번 사건의 가장 한심한 점이라면, 남한 정부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언행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오프라인으로는 성조기 휘날리며 미국 만세를 외치고, 돼지를 반으로 갈라 찢고, 가스통에 불을 붙여 대로변에서 전경에게 방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데 왜 이토록 온라인을 싸잡고 늘어지는가. 그래서 걱정된다. 빅맥 라지세트값 500원을 걱정하는 사진가의 온라인상 표현이 남한의 안보를 뒤흔들며, 행여나 흔들지는 아니하더라도 일반 국민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그래서 찬양/고무!)고 판단하기에 정근이를 구속 한 것 아닌가. 둘째로, 새로운 매체에는 새로운 방식의 여러 대응들이 뒤따르는 것이 인간사라지만, 이번 사건은 남한 정부가 너무 강경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향유하는 매체에 대한 법적 접근(그것이 제도이건, 처벌이건)은 신중해야 한다. 이는 구성원들의 자유를 침해하며, 심대하게는 매체를 통해 이룩해 구성원의 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박정근을 둘러 싼 하나의 트위터 계는 많은 피해를 입었고, 국가보안법이 존속 하는 한 복구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이 남한 정부가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근이가 다시 나와 트위터를 계속 할 수 있겠냐고, 이 개새끼들아!!!

맥 딜리버리를 라지세트로 만들려면 500원을 추가해야 하는데, 이를 할까말까 엄청 고민하던 정근이에게 구속 이후 천만원의 후원금이 모금되었다. 그러니까 10,000,000원이다.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즉,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어기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국가보안법이 잘못된 법이고, 잘못된 법에 의해 피해를 받을 경우 국가에서는 붉은 별 하나를 가슴에 새겨줄 때, 시민들은 통장잔고 액수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냉담한 한국의 언론과 달리 해외 언론의 반응 역시 뜨겁다(외신정리링크 : http://cafe.daum.net/freePark/17xj/101). 전기와 통신을 국민 대다수가 접근 할 수 있는 국가들에서 박정근 사건은 우리가 접하는대로 정권의 무리수이거나, 국가보안법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자유권의 침해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정근이 다른 국가에서 태어났으면 ‘3대 세습 하는 미친 왕조 리트윗 하는 웃긴 사람’으로 듣보잡 취급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지만, 불행이도 정근이는 남한 국적을 가진지라 어쩌다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민주시민이 된 것이다.

모르겠다. 정근이가 구속 된 이후로 내 삶도 많이 엉크러졌다. 난 정근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거나 유명하다거나 혹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억세게 운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총선 결과 나오면”, “정권바뀌면”하는 술자리 농담이 고깝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러한 우연적인 요소들에 한 인간의 삶이 좌우되는 것이 아직도 우리의 현실이라는 씁쓸함 때문이다. 민주정부 들어서면 무죄, 보수정권 들어서면 유죄 하는 남한의 역사는 법 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에 회의가 들게 한다. 모르겠다. 힘들다.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큼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박정근이 왜 그런 트윗을 했으며, 어떤 의도였냐는 것이다. 가끔 기자들이 인터뷰를 물어와 이 주제로 자꾸 묻는데, 정근이는 트윗에 분명히 이런 말을 적었다.

 – 권위를 가진 누군가가 “당신은 종북주의자인가?”라고 묻는다. “그렇지 않다” 라고 대답한다. 또 다시 묻는다 “그럼 당신은 종북주의자가 아닌가?”라고 묻는다. 또 다시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한다. 혹자는 이 모습을 몰양심적이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 이런 대답을 하는 자의 자유부터 보장된다면 다른이들의 자유 또한 그럴 것이며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이 있다면 고쳐지거나 없어져야만 한다. By @seouldecadence 2012. 01. 10.

 나는 이 대답이 옳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옳음의 거리만큼 박정근은 우리와 떨어져 있다.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정근씨의 구속. 정말이지 어이없는 코미디가 따로 없네요!
    글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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