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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와 또 다른 재미- 일본의 추리·수사 드라마

- AA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매 분기 수사나 추리에 관련된 드라마가 꼭 한두 편은 편성된다.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만 탄탄하다면 A급 주연배우가 출연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곤 한다. 만화로도 유명한 <소년탐정 김정일>, 몇 번이나 다른 버전으로 제작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TV에서 3기 동안 방영되었던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올해까지 10시즌 째 방영되고 있는 <파트너> 등 일본에서 수사·추리 장르는 잘 팔리는 분야다. 그만큼 다양한 작품이 방송되고 있는데 오늘은 그 중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갈릴레오>는 2007년 후지TV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로 인기 가수이자 배우인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시바사키 코우가 각각 남녀 주인공을 맡았다. 여형사 우츠미 카오루는 그녀의 존경하는 선배에게 그동안 해결했던 모든 사건은 어떤 인물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비밀을 듣게 된다. 선배의 소개로 찾아간 곳은 한 대학의 물리학과. 그 곳의 준교수로 있는 유카와 마나부는 명석한 두뇌와 수려한 외모를 갖춘 완벽한 남자인데 사람들은 그를 ‘괴짜 갈릴레오’라고 부른다. 물리학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는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일반적인 대화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카와는 우츠미가 도움을 요청한 사건의 개요를 듣자 “재미있다”고 하며 관심을 보이며 우츠미의 수사에 도움을 주기로 한다. 우츠미가 유카와에게 들고 오는 사건은 매번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다. 멀쩡하던 사람의 머리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지진도 아닌데 집이 흔들린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움직인 용의자가 있다 등등. 귀신의 짓이네, 초능력이네 하며 법석을 떠는 주변 사람들에게 유카와는 늘 선언한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물리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이론과 그에 따른 충실한 증명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드라마는 큰 인기를 얻어 연장선상의 의미로 2008년,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국내에서도 2009년 개봉작이었다.)

                             

2009년 TBS에서 방영된 <미스터 브레인>은 기무라 타쿠야, 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드라마다. 전직 호스트였으나 큰 사고를 당해 우뇌가 발달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뀐 츠쿠모 료스케는 뇌 전문 연구자로 일본 과학경찰연구소에 초빙된다. 그는 과학자나 수사원이라고 하기엔 엉뚱하고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통해 범죄의 원인, 과정 등을 알아내며 사건을 해결해 간다. 결국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람이고 그 사람의 행동은 대부분 뇌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뇌를 연구하여 범죄 심리, 범죄 유형을 구축한다는 이 드라마의 기본 구성은 미국 드라마에서 흔히 봐오던 프로파일링, 과학수사, 심리수사 등과 같은 해결 방식에서부터 새로운 분야를 찾으려 한 노력이 돋보인다. 츠쿠모가 그의 조수 연구원인 유리 카즈네를 비롯한 과경연의 멤버들에게 인간의 뇌가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설명하며 애니메이션이 곁들여지는 등 구성도 아기자기하게 ‘일본 스타일’이다.

위의 <갈릴레오>와 <미스터 브레인>는 매 회마다 스타들이 카메오로 등장하여 또다른 볼거리를 준다. (물론 스타 카메오로 인해 누가 범인인지는 너무 명확해지는 게 흠이긴 하다.)

                                                   

세 번째로 소개할 드라마 <보스>는 후지 TV에서 2009년 방송했고 인기에 힘입어 2011년 시즌 2도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오오사와 에리코는 FBI에서 프로파일링을 배우고 일본으로 돌아와 경찰청에서 프로파일 전담반을 꾸리고 사건을 해결한다. 오오사와 자신도 과거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고 팀원으로 모인 이들도 경찰청 여기저기서 모인 왕따들이라 얼핏 떨거지들의 집합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 팀은 경찰청에서 현대의 특수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매스컴 홍보용으로 만든 전시성 팀이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큰 신장과 큼직한 이목구비만큼이나 쩌렁쩌렁한 목소리,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오오사와가 팀을 이끌며 철저하고 조직적인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을 찾고 증거를 확보하거나 자백을 이끌어낸다.

위에서 소개한 <갈릴레오>와 <미스터 브레인>이 남자 주인공의 비범한 재능과 남녀 콤비의 시너지 효과를 주무기로 삼았다면 <보스>는 원 탑 여주인공에 화려한 조연으로 이루어진 팀웍이 무기다. 주인공 오오사와 역의 아마미 유키는 30~40대 캐리어 우먼 역할을 소화하는 대표적 여배우로 유명하며 20대 탑 여배우 토다 에리카, 개그맨 켄도 코바야시, 떠오르는 꽃미남 타마야마 테츠지, 불쌍한 중년 남자 전문 배우 누쿠미즈 요이치 등이 팀원으로 활약한다. 특히 오오사와가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윗선과 생기는 트러블을 적절히 조절하며 그녀와 티격태격하는 동기로 나오는 노다테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타케노우치 유타카가 맡아서 능글맞은 감초 연기를 보여준다. (한류 열풍 덕에 시즌 2에는 국내 아이돌 2PM이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했다.)

                           

세 편의 드라마 모두, 심한 신체 훼손과 같은 하드코어한 장면이 거의 없고 중간 중간 끊임없이 웃음을 주는 장치들이 잘 배치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장르의 매니아가 아니라 하더라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본의 추리·수사물들은 대부분 이 정도의 수위를 유지한다. 그래서 미국 드라마와 다르게 등장인물들이 어딘가 좀 ‘덜’ 프로페셔널하고 ‘더’ 친근한 느낌이다. 비슷한 작품으로는 검시관을 주인공으로 한 <임장>, 법의학 분야가 나오는 <보이스~생명없는 자의 목소리~>, 일본의 대표 여배우 칸노 미호가 엉뚱한 천재로 나오는 <키이나~불가능 범죄 수사관~> 등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는 일본인들의 B급 유머를 장르에 완전하게 결합시킨 개그형 추리·수사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놓고 방송 시간 33분을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탐정이 주인공인 <33분 탐정>, 사랑에 빠지는 여자가 전부 사건의 범인이어서 웃기고 슬픈 형사가 나오는 <자만형사>, 엄청난 부자라 현장에서 재력을 이용해 황당한 수사를 하는 여형사가 주인공인 <부호형사> 등이 이 파생장르에 들어가는 드라마인데 호불호가 갈리는 개그 코드라 쉽게 추천할 수는 없다. 

                         

<갈릴레오>나 <미스터 브레인>은 미국 드라마 <멘탈리스트>와 같이 사법 체계에 속해있지 않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고문 역할로 수사에 도움을 주며 사건을 해결한다. 이 드라마들 뿐 아니라 많은 추리·수사 드라마가 구성원 아닌 외부의 인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이는 다르게 보면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과 그 시스템이 구현되는 기저를 모토로 해서는 더 이상 현대의 범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모두가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 편 모두 시스템 내에서 배제당하거나 늘 윗선과 충돌을 일으키는 구성원들이 사건 해결의 중심에 있다. 이들은 시스템이 정해놓은 규칙을 끊임없이 위반하면서 자신의 밥줄, 권력의 체면 등에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사건의 해결, 진실의 규명, 정의의 구현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의 많은 추리·수사물이 FBI, CIA, CSI 등 기관의 뛰어난 정보력과 수사력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얼핏 양극 구도에 놓여있는 것 같지만 이러한 드라마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시즌을 이어가는 원동력은 같은 선상에 있다. 시청자들의 공포가 같은 것이다. 공권력으로 제압하기엔 한계가 있는 현대 사회의 범죄에 대비하기 위해서, 무너진 공권력에 나의 안전을 맡기지 않기 위해서는 범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두어야 한다는 조바심. 또한 극악무도한 범죄가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현실에서 공권력 안이든 밖이든 드라마 속 주인공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은 한 줄기 희망. 이러한 심리를 가지고 있는 시청자들의 바람을 만족시켜줄 만큼, 캐릭터와 사건이 탄탄하게 짜여있기 때문에 시리즈가 성공하고 끊임없이 추리·수사물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탄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청률에 매달리지 않고, 장르물에도 투자를 하는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최근 유일하게 추리·수사물 장르에서 작년에 방송된 <사인>이 괜찮은 성적을 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리나 수사를 좋아하지 않아서 이 장르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 단순하고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사인>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매니악한 시청자들이 갑자기 늘어나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현실에 가깝게 캐릭터와 배경을 구축한 뒤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몰입할 여지가 충분했고 극의 구성 또한 탄탄한 편이었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최근 들어 케이블 TV에서 <별순검>, <신의 퀴즈>, <뱀파이어 검사> 등 공중파에서 시도하지 않은 추리·수사물을 제작하여 방송하고 있고 반응도 괜찮은 편이다. 국내 시청자들이 그동안의 추리·수사물을 외면했던 것은 로맨스에만 급급하여 정작 사건과 해결 과정을 안일하게 처리하여 완성도를 떨어뜨렸던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그저 스타 배우에만 의존하여 제작과 편성을 좌지우지한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가 원인이다. 공중파도 이제 그만 시간대와 등장인물 주인공만 바꾼 불륜, 치정, 출생의 비밀 덩어리인 일일 드라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투자를 했으면 한다. <사인>이 방송 후반부에 황당한 실수를 낸 것은 생방송처럼 촬영하고 방송하는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회의 모든 문제가 그렇듯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희생자는 늘 피라미드의 하층에 있는 구성원이므로.

덧붙여, 필자는 수사, 추리 장르를 좋아하여 꽤 챙겨 보는 편인데 늘 볼수록 참 주인공들이 로맨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다. 사건이 일어나면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피해자의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며 상사가 그만두라고 해도 끝까지 범인을 밝혀내야 한다며 뛰쳐나가는 주인공들이 로맨스 드라마의 백마 탄 실장님, 예쁜데 성격도 좋은 여주인공과 본질이 닮았다. 어딘가 있을지 몰라도 난 절대 못 만날 것 같고 심지어 내 주변 사람들도 만날 가능성이 없는 저 먼 곳의 존재. 혹은 어쩌면 내 가까이 있었을지 모르나 나와 만나기 전에 이미 시스템 밖으로 쫓겨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언젠가 사건 당사자의 가족을 찾아야 했을 때 주민번호를 아니까 호적상 직계 가족은 바로 찾을 수 있지 않느냐고 필자가 형사에게 묻자 그 분은 짜증을 냈다.

“아, CSI 같은 거 좀 없어졌으면 좋겠어. 아니 사람들이 하도 그런 걸 봐서 컴퓨터만 툭툭 치면 죄 나오는 줄 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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