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농담에 대한 예의 좀 지킵시다

- 박정수(수유너머R)

먼저, 기분 좋은 소식 한 가지. 그저께 두리반에서 안종려 사장님을 만났는데 <위클리수유너머> 96호 ‘두리반 안종려 사장,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기사 보고 정말 많은 분들이 방문해서 칼국수도 팔아주고 격려도 해주셨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오히려 좋은 말씀으로 저희 <위클리수유너머>를 널리 알려주신 안종려 사장님께 고맙고, 저희 글 보고 두리반 방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저께 두리반에서 박정근 후원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정동영 의원도 반가웠지만 박정근의 아버님이 오셔서 참 좋았습니다. “걱정 많이 했는데, 정근이 옆에 좋은 친구들이 많은 걸 보니 안심이 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핑크빛 애정을 담아 부른 ‘천의 사십’ 노래들도 감미로웠고 오랜만에 “당신을 유혹하는 매력만점 철거농성장~ 사랑과 연대 저질러 놓고~”로 시작되는 ‘멍구빵꾸’의 두리반 연대가도 좋았습니다. 이처럼 박정근 주위에는 ‘박정근을 격하게 포옹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두리반, 명동마리, 포이동, 희망버스 등 사랑과 연대로 매력만점이 된 농성장에 깃드는 철새 음악, 예술, 활동가들로, 기질적으로 권위를 싫어하고 춤과 노래,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개중에는 사회당이나 진보신당 당원도 있지만 이념적 지향 때문이 아니라 춤추는 다리와 노래하는 심장 때문에, 무엇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배제된 자들과의 연대에 과감한 친구들입니다.

박정근이 어울리지 않게 국가보안법 위반사범이 된 것도 그런 기질 때문입니다. 엄숙한 권위 나부랭이는 참고 못 보는 몸에 밴 가벼움 때문에 남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우리민족끼리’ 트윗과 유튜브 선전영상을 유머러스한 사족을 달아 리트위한 겁니다. 또 이 친구가 심히 오타쿠스러워 “게임을 했으면 엔딩을 봐야하는게 근성”이라 국보법 7조 찬양고무혐의에 걸린 리트윗이 96건에 독자적으로 올린 이적 표현물이 무려 34건입니다. 선량한 시민의식과 냉전의 역사에 짓눌린 정신 말짱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유머기질의 소유자죠.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를 겨냥한 박정근의 이 유머러스한 종북놀이는 결국 검찰의 기소로 앤딩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마도 검찰은 박정근의 특이한 유머 기질이 냉전치하의 한국사회에서는 욕먹으리라 여기고 만만한 본보기 삼아 트위터도 국보법의 예외지대가 아님을 과시하고 싶었나 봅니다. 물론 박정근은 비전향장기수들의 신념도 없고 양심수들의 정치적 양심도 없는 별볼일 없는 청년입니다. 오히려 경찰의 압수수색에 불면증과 신경쇠약에 걸리고 감옥에서 성욕감퇴의 고통을 호소하는 섬약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검찰은 박정근에게 낚인 겁니다. 가장 만만할 것 같은 놈이 얼마나 만만하지 않은지, 약하게만 보이는 그의 기질 속에 얼마나 강인한 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몰랐던 겁니다. 박정근이 구치소에서 쓴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 보내는 공개서한’ 한번 읽어 보십시오. http://cafe.daum.net/freePark/17wt/4 그의 유머에 얼마나 강인한 힘이 숨어 있는지, 그의 오타쿠스러운 기질에 얼마나 새로운 운동의 길들이 숨어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박정근 같은 기질을 격하게 포옹하는 사람들이 대세라는 사실 앞에서 검찰과 국보법 신봉자들은 좀 걱정해야 할 겁니다.

G20과 가카의 권위를 조롱했다가 처벌까지 받은 저는 이 싸움이 ‘국가보안법 대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엄숙주의 대 유머’의 싸움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박정근의 유머는 간과할 수 없는 결의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농담’을 소명의 근거로 제시하길 거부하면서 그는 비록 농담이 아니더라도 트위터에서의 자유로운 표현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송두율 변호를 맡았던 송호창 변호사님은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구분되어야 한다면서 적극적으로 ‘농담’임을 변명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런 사법적 대응과 함께 공론장에서는 어느 누구도 사상과 양심 때문에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박정근이라는 친구가 위대해 보이는 건 그런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엄숙한 담론의 자유가 아니라 “농담에 대한 예의”로 부르는 까닭입니다. 공개서한에서 그가 한 말은 당분간 제 명언노트에서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체제찬양으로 보이는 글들은 대부분 농담이었으나 저는 이 편지에서 농담을 일일이 설명하진 않을 것입니다. 농담을 변명하는 건 농담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면 농담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니게 되니까요.

박정근과 동거했던 피코테라님은 박정근 같은 “귀찮은 동거인”이 “매의 눈빛을 가진 이 시대의 선지자”처럼 된 게 황당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런 황당한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이념과 의지 때문에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기질과 욕망 때문에 위대해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사회, 멋지지 않나요?

지난주 위클리 편집회의 때 1월 19일 하루 방문자 수가 무려 4994명인 걸 보고 깜놀랬습니다. 많아봐야 1000명을 못넘던 최대 일일 방문자수가 갑자기 5천명으로 늘어난 이유가 뭔가 했더니, 역시 이계삼 선생님의 ‘나꼼수를 끊어야 겠다’ 때문이었습니다. 이 페이지 리뷰가 무려 8천 회였죠. 반갑고도 씁쓸했습니다. 지난 한 주 트이터가 나꼼수 비키니 건으로 뜨거웠습니다. 생각의 차이는 많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차이의 확인이 사상의 검열이 아니라 더 좋은 삶을 향한 여러 경로의 발견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이번 주말 청계천광장에서 열리는 박정근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기를 위한 집회에서 뜨거워진 뇌주름을 뜨거운 몸짓으로 식혀보면 어떨까 합니다. 집회 모토는 “국격 1년을 기해 국가보안법 철폐에 앞서서 래일의 영웅이 되자!” 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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