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의 뒷골목

우생학-순수와 우월을 지향하는 근대의 폭력 (1)

-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뉴욕이타카)

우생학-순수와 우월을 지향하는 근대의 폭력 (1)

1. 들어가며

지난 칼럼에서 다룬 ‘생체실험’이 사회적 약자-고아, 빈민, 수감자, 신체정신 질환자, 그리고 다른 인종을 과학적 실험의 대상물로 삼는 근대적 폭력의 실천 양상이라면 ‘우생학’(Eugenics)은 이런 인간의 ‘우월성’과 ‘열등성’을 유전적으로 규정하고 우월한 인간을 증가시키고 열등한 인간을 고립, 도태 나아가 제거함으로써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체계적 지식으로서의 유전학은 단종과 생체실험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대량학살과 같은 약자에 대한 폭력을 합리화하는 과학적 근거이기도 하다. 나치의 우생학에 입각한 폭력성과 잔인함이 종전 후 폭로되고 단죄되면서 그것이 마치 일부 맹목적인 과학자와 광기에 찬 국가가 연합해 만들어낸 비정상적이고 예외적인 일탈로 여겨지고 있지만 우생학은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의 등장과 괘를 같이 한 전 세계적 조류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현재 우리의 삶을 상당부분을 규정하고 있는 과학적 지식체계 발전의 중요한 고리이기도 하다.

2.역사적 배경

푸코는 18-19세기에 인간에 대한 과학이 사회적 통제로 이어지고 감옥, 학교, 병원, 군대 등 근대적 기구들이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적 장치로 등장하며 특히 19세기 후반에 들어 “규범”이나 “정상성”에 대한 개념이 개인을 통제하는 담론으로 등장한다는 역사적 분석을 내놓았는데 이는 서구사회에서 근대국가와 자본주의의 형성과 정착이라는 과제가 맞물리며 새로 등장한 ‘내부’를 만들고 유지해야 하는 역사적 정황을 일컫는 것이다. 여기에 서구의 제국주의의 역사가 같이 고려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내부를 식민지처럼 그러나 이제까지의 외부 식민지와는 다르게 통치해야 할 필요를 근대적 장치 들이 역할분담을 하며 떠맡게 된 것이다.

여러 가지 인간에 대한 지식체계가 이 통치를 합리화하고 원활하게 하는 자원으로 등장하게 된다. 인류학과 언어학은 제국주의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발전되어 왔고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 등이 체계적 학문의 분과로 성립되는 것도 이 시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시기를 규정하고 대표하는 것은 ‘과학’일 것이다. 과학은 학문분과를 넘어서 모든 ‘학’(Wissenschaft)의 전범으로 등장하며 세계를 이해하고 규정하는 틀이 된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이전까지의 다양한 욕망과 주장들이 학문적 체계, 과학적 체계로 포섭되고 그런 적나라한 욕망과 주장들은 이제 과학의 언어로, 과학이론이라는 옷을 입고 등장한다. 제국주의적 외부 지배욕망은 인종을 포함한 인간의 위계라는 합리화를 통해 정당화되고 근대 국민국가 내부의 지배와 통치를 위해서도 인간의 서열화는 필수적이다.

19세기 후반은 과학사적으로 중요한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우생학적 과학담론이 사회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1859년에 출판되고 지적 계보는 다르지만 스펜서의 ‘진화론’이 다윈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발표되었으며, 당시에는 많은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멘델이 ‘유전 법칙’을 발표한 것이 1866년이었다. 이런 동식물의 유전에 대한 과학적 담론은 기존의 인종과 인간의 우열에 대한 담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고비뉴(Arthur Comte de Gobineau, 1816-1882)는 이미 1853년에 <인종간 불평등에 대한 에세이>라는 노골적 인종차별론을 쓴 바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우생학을 학문분과의 하나로 격상시키고 선구적 업적을 남긴 이는 골튼이다.

다윈의 사촌이자 영국의 다재다능한 학자였던 프란시스 골튼 (Francis Galton 1822-1911)

다윈의 사촌이자 영국의 다재다능한 학자였던 프란시스 골튼 (Francis Galton 1822-1911)

골튼은 <유전적 천재>라는 우생학의 선구적 연구를 1869년에 발표하였고 이어서 1883년에는 <인간의 능력과 그 발전에 관한 탐구>라는 책에서 ‘eugenics’라는 말을 만들고 ‘선천 대 후천’(nature vs. nurture)라는 표현을 처음 쓴 것도 그였다. 사촌인 다윈의 연구에 자극을 받아 다윈이 보편 법칙으로 탐구한 ‘과학’을 근대국가의 구성원과 그 구성원들의 다양한 특질에 관한 연구로 전환시켰으며 사회분석에 계량적, 통계적 분석 방법을 최초로 도입했고 실제로 여러 가지 실증적 연구를 행하고, 실증적 연구의 대상을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설정한 선진적 연구방법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역설한 것도 그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멘델의 유전법칙이 재조명되고 유전학이 등장하면서 우생학은 본격적으로 과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고 시대의 필요와 맞물리며 사회의 큰 조류로 등장한다. 돌연변이 연구에 몰두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자 베이슨(William Bateson, 1861-1926)이 처음으로 유전학(genetics)이라는 어휘를 쓰기 시작하면서 유전학은 새로운 학문의 분과로 자리 잡게 된다. (‘시스템 이론’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베이슨이 그의 아들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미국이 남북전쟁 이후 지속되고 있던 인종간 갈등-앞선 ‘린칭’에 관한 글 참조-과 정착민과 이민자들과의 불화, 그리고 자본주의의 문제로 인한 극심한 빈부 격차와 범죄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에 봉착한 시기였고 기존의 제국주의에 기반을 둔 인종간의 위계라는 관념이 국가 유기체론 같은 집단주의와 결합하여 인종학이 과학으로 자리 잡는 시기이기도 하다.

3. 자본과 국가의 야합

이런 역사적 배경 아래 19세기의 우생학 과학 이론이 주로 영국 그리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만들어져 왔다면 20세기 초에는 미국이 이를 사회적 연구로 치환하고 국가적 정책으로 실천하는 주도적 역할을 하며 유럽을 이끌게 된다. 이런 조류의 가장 큰 동력은 당시 독과점으로 엄청난 부를 형성한 소수 자본가들로, 이들이 만든 카네기 연구소(Carnegie Institute, 1902년 설립)와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 1913), 철도 거부 해리만의 ‘유전학 기록국’(Eugenics Record Office, 1910), 켈로그 집안이 씨리얼 팔아 만든 ‘인종 개량 재단’(Race Betterment Foundation, 1911) 등의 역학을 빼고 미국 우생학의 발전과 전파를 얘기할 수는 없다. 자본가들은 이런 자신들의 기구로 통해 직접 혹은 자신들이 지원하는 ‘미국 개량인 협회’(American Breeder Society. 1906년 설립)나 ‘인간 개량 재단’(Human Betterment Foundation, 1928) 등 우생학 전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들을 통해 범죄와 빈곤, 인종 문제에 대한 우생학적 해결책들을 내놓는다. 이외에도 미국역사에서 우생학의 열렬한 지원자는 씨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듀퐁가, 월 스트리트의 J.P. Morgan 가문, 프레스콧 부쉬(전 대통령 부쉬의 핼애비), 그리고 하바드와 예일. 스탠포드 대학 총장 등 정계, 관계, 경제계, 학계를 가리지 않고 당대의 유명인사와 각 분야의 거물들로 넘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안락사 형태의 대량학살까지도 대안의 하나로 공식적으로 제기한다. 이런 극단적 정책이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정신병원이나 다른 의료시설에서 적절한 처치나 치료를 하지 않고 태아나 환자가 죽도록 내버려 두는 소극적 안락사는 물론, 은밀하게 적지 않은 수의 적극적 안락사도 행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결국 합법적인 격리수용, 이민불허, 결혼제한, 그리고 단종시술 등 우생학에 입각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정착시켜간다. 자본이 만든 연구소나 자선 공익재단을 통해 자체적 연구를 하고 학계나 관련 단체에 자금을 대주고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며 정치 엘리트들을 포섭하여 우생학을 미국 사회의 정책적 기조로 자리 잡게 만든 것이다. 자본이 선도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국가가 집행한 것으로 자본과 국가가 본격적으로 결탁한 최초의 역사적 사례일 것이다.

1934년까지 단종법을 통과시킨 주(빗금)와 통과 예정인 주(검은 색)를 보여주는 지도.

1934년까지 단종법을 통과시킨 주(빗금)와 통과 예정인 주(검은 색)를 보여주는 지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1905년 펜실바니아주가 법을 제정했지만 주지사가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인디아나주가 1907년 가장 폭력적인 우생학적 조치인 단종법을 채택한 주가 되었고 1930년대에 이르면 33개 주가 단종법을 채택한다. 1927년 연방 대법원은 합법 판결을 내려 더러운 정책에 합법의 옷을 입혀 주었고 70년대에 대부분의 주가 단종법을 폐지하고 1981년 오레곤주를 마지막으로 모든 주에서 금지될 때까지 공식적으로만 약 7만 명이 강제로 혹은 자신도 모르게 단종 시술을 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행해진 단종시술과 단종이 불법이었던 주에서 행해진 것들을 합치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주로 정신지체자, 신체장애자, 고아, 거지, 부랑자, 성매매여성, 생활보조금 수혜자, 알코올중독자, 범죄자, 한센병 환자, 그리고 흑인과 원주민 등을 대상으로 하였는데 주로 여성이 피해자가 되었다. 일부 주에서는 특히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남성의 거세도 이 조치의 일부로 시행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오래전부터 유지되어왔던 다른 인종간 혼인을 금지하는 법은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남부 주를 포함한 17개 주에서는 1967년 연방법에 의해 위헌판결이 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지금도 몇몇 남부 주는 사문화된 법조문을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는 오기를 부리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은 완전히 금지시키고 당시 열등하여 백인으로 분류되지 않은 동유럽 이민을 극도로 제한했던 1924년의 반이민법도 우생학에 기반을 둔 법으로 1965년까지 유지되었다. (이전까지 일본은 아시아에서 예외적인 취급을 받았었는데 새로운 이민금지 조치에 분개한 일본인이 일본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할복자살한 일도 있었다.)

4. 우생학의 근대성

자본과 국가가 서로 연합하여 행해온 우생학적 폭력은 인간을 포함한 세계를 계량적으로 파악하는 근대 이성 그리고 합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성’(reason)과 합리성(rationality)을 뜻하는 말의 라틴어 어원인 ‘ratio’에는 ‘계산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인간을 이윤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산될 수 있는 자원으로 상정하는 자본주의와 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해 인간을 표준화하여 통제하며 자원을 구성원들에게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국가체제 아래서 사회적 약자들은 사회에 기여하는 바 없이 자원을 축내고 사회를 타락시키는 무익하거나 사악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이는 국가가 그들의 삶에 폭력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나아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인간의 계량화, 수량화는 이런 폭력을 “합리성”이라는 이름 아래 “객관적”으로 정당화하는 방안에 다름 아니다.

인간과 사회의 계량화는 19세기말 골튼에서 시작되어 20세기에 들어서면 더욱 정교한 형태로 진행된다. 대표적인 예로 1905년 프랑스에서 비네(Alfred Binet)에 의해 지능을 계량화해 측정하는 최초의 I.Q. 테스트가 고안되었고 1916년에는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이자 열렬한 우생학 신봉자인 터만(Lewis Terman)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Stanford-Binet Test라는 이름의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지능지수 테스트의 모태가 탄생한다. (터만은 1000명이 넘는 지능이 높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추적연구(longitudinal study)를 시작했는데 살아있는 200여명을 대상으로 일세기 가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세계 최초, 최장의 추적연구일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의 지능을 수치로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집단의 테스트 결과를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지적으로 뛰어난 집단과 열등한 집단을 가를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교와 군대라는 근대적 조직의 구성원에 대한 선발과 평가로 시작해 우생학적 폭력을 합리화하는 과학적 근거로 널리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그렇게 쓰이고 있다. 한국 교육계의 ‘평등성’ ‘수월성’ 논의의 이면에도 우생학적 발상이 도사리고 있다. 근대의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신화와 맞물려 인간의 지적 능력이라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자질을 단시간에 숫자로 객관화하고 거기에 따라 인간의 우열을 구별하는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학생들을 마구 분류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I.Q 테스트로 개개인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1922년 교육관련 잡지의 삽화. 과학이 보장한다고 생각한 인간에 대한 전지적 관점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주먹구구식으로 학생들을 마구 분류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I.Q 테스트로 개개인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1922년 교육관련 잡지의 삽화. 과학이 보장한다고 생각한 인간에 대한 전지적 관점을 보여준다.

학계가 이런 움직임을 한편으론 이끌고 다른 한편으론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은 더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당대의 조류와 돈을 좇아 우생학을 신봉하며 연구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있었고 1930년경에 이르면 대부분의 대학에서 우생학 과목이 개설되어 널리 가르쳐졌다. 범죄와 가난 그리고 이민자 문제 등 당시 심각하게 여겨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주요한 수단의 하나로, 나아가 자연의 순리에 맡겨진 진화의 흐름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종으로서의 인간의 미래, 사회의 미래를 인간 스스로 조작하고 설계해 나갈 수 있다는 근대적 오만의 학문적 표출로. 동물학, 생물학, 유전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 범죄학, 통계학 등 다양한 학문 범주를 넘나들고 포괄하며 연구되고 가르쳐진 우생학은 근대적 학문의 선구였다.

 ‘유전학 나무’의 형상. 유전학이 인간 진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이며, 여러 분야에서 자양분을 얻으면서 동시에 그들을 통합하는 상위의 종합학문이라는 주장은 당시 유전학의 학술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전학 나무’의 형상. 유전학이 인간 진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전개 과정이며, 여러 분야에서 자양분을 얻으면서 동시에 그들을 통합하는 상위의 종합학문이라는 주장은 당시 유전학의 학술적 지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런 학술적인 접근법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70년대까지 텔레비전으로 중계되기까지 한 ‘우량아 선발대회’(Better Baby Contest) 그리고 ‘우월 가족 선발대회’와 같은 이벤트들도 알고 보면 우생학을 교묘히 주입시키는 선전기제였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이런 행사는 당시 유행하던 농작물과 가축 등을 전시하던 ‘주 박람회’(State Fair)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의사의 심사에 의해 우월한 아기가 선발되는 외형적으로는 오락적 요소가 강한 이벤트였는데 인간을 식물과 동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도록 하여 식물과 동물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통제, 조작이 인간으로 확장된다는 관념을 심어주었다. 품종개량을 통해 우수한 작물, 우수한 가축을 만들어 내듯이 인간에게도 그런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는. 근대의학 권위자의 재가를 거쳐 예쁘고 건강한 아기가 성황리에 선택되는 퍼포먼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상성의 전형을 심어주고 그에 따라 인간의 우열을 구분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를 통해 태아의 사전 검진과 “자발적” 낙태를 유도하여 우생학의 목적을 간접적으로 실현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어짐)

응답 1개

  1. […] 미국 역사의 뒷골목 | 우생학-순수와 우월을 지향하는 근대의 폭력 (1) 우생학-순수와 우월을 지향… _ Beilang(동아시아사상사연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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