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카테고리 없음

여강만필

전철에서 보고 느낀 세상만사

- 김융희

 전철을 타고 상경길이다. 옆자리에 이웃인 듯싶은 할머니 둘이서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아주 사소한 일상 잡사의 이야기들이다. 의정부쯤에서 탄 것 같은데 철량리를 지나는데도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한 할머니께서 내릴 곳이 ‘종료다음’이라고 말한다. 동대문이 무슨 종로 다음이냐며, 다른 할머니의 발끈한 대꾸이다. “아니 종료가 맞다니까, 종료말이야…” 한참을 이렇게 서로 우기며 실랑이 질이다. 대수롭게 듣던 할매들의 실랑이질에 결국 나는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터진 웃음을 속으로 감추려니 더욱 터진다. 동묘를 ‘종로’라는 발음으로 들은 것이다. 아닌 종로를 ‘종료’라고 하여 기가 찬 할머니요, 동묘를 ‘종료’로 발음하는 할머니도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 콧바람으로 말이 세면서 정확한 발음을 할 수 없는 할머니의 발음이 문제인 것이다. 못 알아듣는 할머니 보다는 ‘종묘’로 발음하는 할머니의 대꾸가 더 거세다. 참 하찮는 것에도 결코 양보없는 할매들 고집이 재밌다.

동묘를 지나 동대문에서 두 할매는 내리고, 그 자리에 중년의 두 아주머니들이 앉았다. 그들도 앉자마자 이야기를 나눈다. 큼직한 검정 비닐봉투들을 잔뜩 든 것을 보면, 가까운 이웃 상권에서 의류가게를 하는 아주머니들 같다. “요즘 왜 아들은 안 보이고, 이모가 대신 나온 것 같더라” “응 그리 됐단다” “아니 글쎄, 삼촌이 말이야” “그러면 안 되는데..” “왜 무슨 일이 있었니?” “가계에 짧은 스커트를 입은 젊은 고객이 들어오면, 뒤에서 자꾸 종아리 사진촬영을 하는거야” “어머, 그럼 고객이 가만 있니?” “알게 찍겠니.. 나도 처음엔 몰랐는데” “그렇지만 한 두 번이면 이해하고 모른척 했을텐데, 아주 상습인 걸 어떡하니” “고객이 알게되면 가게의 체면은 뭐가 되며, 그것이 체면으로 끝나겠니..” 그런데 “내가 직접 말할 수도 없어 참 힘들었단다.” “다행이구나” ….. 전철에서의 어지간한 일에는 익숙해진 나이다. 그런 내가 오늘 전철에서의 일과는 완전히 공쳤다. 오늘처럼 할머니들의 아주 사소한 이야기나, 두 아줌마의 황당한 말에서, 훨씬 큰 소란보다도 마음의 심란이 더 심했다.

나의 관리를 위해 전철의 시간 이용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집을 나섰다하면 거의가 상경길이요, 머무르는 네댓 시간 이상의 대부분을 전철에서 보내게 된다. 요즘은 좀 뜸해졌다지만, 그래도 한 주일이면 3일 이상은 오르내려야 함을 감안하면, 전철은 내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인 것이다. 이와같은 나의 시간 활용의 수단으로 읽기의 대부분이 전철에서 체워진다. 그래서 나의 나들이길엔 꼭 책과 노트등의 지참용으로 손가방이 함께한다. 이같은 손가방 지참은 귀찮고 거슬리는 일이 많다. 가물거리는 깜박 기억력에 놓아버릴까싶은 조바심으로 항상 불안하다. 또 남자가 늘상 큰 핸드백을 드는 것도 번잡스럽지만,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곳에서 책을 읽는 짖이 남의 눈에 거실리기도 할 것 같고, 고상한 척이나 연스러움으로 비칠 것 같은 남세스러움의 마음 불편도 있다.

전철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곁에서 이야기하거나, 생계의 수단으로 상품을 팔고 있는 상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주위가 소란하면 생각이 엇갈리고 책 읽기도 산만하다. 이런 일로 분위기에 민감하여 너그럽지 못한 마음으로 이웃과 어울리지도, 적응하지도 못함은 더욱 속상할 일이다. 이는 나의 욕심을 남에게 전가하는 짖으로, 당연히 자숙하며 나를 다스려보지만 잘 안된다. 아니 잘 적용하면 될수도 있음을 경험하기는 했다. 큰 소리로 계속 울려데는 손전화 소리가 몹시 싫었을 때였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생각, 저 정겨운 통화의 모습을 보라. 그런데 나의 전화벨은 거의 종일을 완전 침묵이다. 왜 내 전화는 침묵만 지키고 있는 걸까? 그러고보니 전화벨은 관계를 소통시켜주는 반가운 소리인 것을!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전화벨이 기다려지고 큰 소리로 울려덴 남들의 전화벨 소리가 부러웠다. 주위를 포용하며 내 일상을 지키는 지혜를 찾자는 다짐의 순간이다.

어찌하다 상경 길 전철 이야기를 하다보니 너무 사사로운 시시껄렁의 일상사에 매달린 나의 좁쌀같은 마음의 변죽이 쑥스럽다. 그러나 전철이라는 곳이 그렇고 그런, 바탕이 그런곳이 아니던가. 전철안에서 무슨 큰 기대가 있겠는가. 이런 사사롭고 시시껄렁한 여러 일들의 뒤얽킨 일상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두 할머니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서로를 배려하면 전혀 아무일이 아닌 것을, 아니 동묘가 종묘이기로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의 생각이 아니면 결코 아니라며 서로 맞서고 또 어울리며 그렇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이 우리들의 생활이요 삶인 것이다. 동묘를 거쳐 동대문역에서 내린 할매들은 여전히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두 아줌마의 대화중 듣게된 이야기, 어느 젊은이(30대 중반의, 아들이란 주인의 아들인 듯)의 ‘음란 변태증’이 결코 이해 못할 생소리는 아니다. 이런 현대인들의 음습이 오늘날 널리 확대 노골화 되면서 진즉부터 보편화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 여자의 하체나 종아리의 사진으로 도대체 무얼 어쩌겠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실리도 없으면서, 떳떳치 못해 감춰 저지른 몰래 짖이다. 오히려 들키면 따귀 감이요, 잘못되면 처벌까지도 각오해야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젊은이와 같은 부질없는 짖거리가 줄기는커녕, 눈덩이 굴리 듯 자꾸 늘고 있는 불가해의 현실이 착잡하다.

오늘 음란 음담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털어야할 이실 고지, 밝혀야할 것이 있다. 우리는 사춘기로부터 죽을 때까지 성으로부터 완전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비밀에 쌓인 성의 알 것은 알만큼의 경지인 노년에게도 역시, 성에 대한 집착이나 호기심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전자편지인,e-mail에서 뜬금없는 음담물을 많이 만나게 된다.

보내는 사람들, 지인들로 평소의 행적이나 인격도 잘 아는 사이들이다. 처음엔 의외로 황당했지만 작난이겠지 싶어 혼자서 낮을 붉히고 말았다. 얄궂은 사진에 낮 간질은 음담패설은 가끔이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보내준 이들도 단수는 아니다. 그런데 아직도 의도는 솔직히 잘 몰겠다. 의도 파악도 없이 지체있는 이들에게 함부로의 발설도 계면쩍어 엉거주춤 지내고 있는 것이다. 한가로울 땐 눈요기도 하지만, 부질 없고 남세스러워 귀찮다. 안 읽고 넘기면 새 메일로 계속 쌓이고, 제목이 애매하여 미리 걸름도 쉽지 않다. 허황함이 마음의 혼란은 너무 크다. 거룩지심이 아닌 헛된 낭비의 자격지심이다.

모든 생명체는 종족 번식의 유일한 수단인 성을 본능이라고 한다. 창조주 뜻인 성의 본능은 지끔까지 변질없이 잘 지켜지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본심인 수치심은 저버리고 본능은 성욕으로 변질되어 창조 질서를 욕되게 하고 있다. 순수의 본능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성의 매력인 순결의 지워진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노년의 향수로만 남을 것인가.

무료의 하루, 전철에서의 시시껄렁 넌더리 세상사에 넉살부림의 만필을 혜량 바랍니다.

응답 3개

  1. bada말하길

    지하철은 인생사 축소판입니다.
    얼마전 제가 ‘실버 스타의 메트로 열전’이라는 글을 썼는데,
    비숫한 분위기입니다. ㅎㅎ
    지하철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일화가 만만치 않더란 말입니다.
    글 읽다보니 지루한 한낮이 즐거워졌어요.

  2. 말하길

    푸하하 쌤 빵 터졌어요. 오랜만에 듣는 지하철 서울상경기네요. 재밌어요. 유익하고.

댓글 남기기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