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뮤지션 유니온

- 김민수(청년유니온)

# 69만원

눈을 감고,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학교를 졸업한(혹은 다니지 않은) 20대 후반의 당신의 한 달 수입은 69만원이다. 이 돈을 가지고 재주껏 생존해야 한다. 이제 인생을 설계해보자. 길바닥에서 박스 깔고 풍천 노숙을 할 순 없으니 집부터 해결해야 한다. 보증금이야 마더파더펀드(MFF) 신용을 활용했다 치고, 이제 원룸을 구해보자. 직업의 특성상 홍대 쪽에 구하면 좋을텐데… 50만 원, 60만 원, 헉… 70만 원 짜리 원룸은 대체 누가 사는거야. 할 수 없이 30만 원 짜리 고시원에 등록. 이제 40만 원 남았다. 컵라면 1개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도, 한 달 식비 최소 10만 원. LTE가 어쩌고 하는 세상에 2G 폴더폰으로 버텨도 4만 원. 교통비 10만 원… 세상에. OK캐쉬백과 해피포인트로 문화 생활을 해야 할 지경이다. 기획 행사를 잡아보려고 해도 수 십 만원에 달하는 대관료를 감당할 수 없고, 작품 활동을 하려 해도 프로듀싱 외주를 맡길 수 없으니 혼자서 북치고 장구 쳐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뮤지션이다.

# 충격적인, 혹은 당연한

청년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10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 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디음악가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이 조사는 지난해 12월 221명의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음악가들이 느낀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력이었다. 조사에 따르면 인디음악가들에게 매달 시기와 액수가 균일하게 들어오는 고정수입은 평균 69만원에 그쳤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55만3354원에 못 미치는 월 소득 50만원 이하의 음악가들도 38%나 됐다. 월수입 200만원이 넘는 사람은 9%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77%의 음악가들이 음악활동 외에 강습·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추가노동이 주당 40시간 이상에 이르는 응답자도 전체의 22%나 됐다. 이마저 고용이 불안정한 학원강습(29%)이나 아르바이트(23%)가 대부분이다. 정식계약을 맺고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으로 활동하는 음악가는 12%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65%는 “음악을 주업으로 생각하는 직업 음악가”라고 답했지만 응답자의 절반은 실제 수입 가운데 공연이나 저작권료, 강습 등 음악활동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의 비율이 전체 수입의 10% 미만이었다. (경향신문 2012.02.10.)

누군가에게는 충격적이고,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그들의 이야기. 국제 무역과 경제 규모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과시한다면, 이제 누군가는 펜과 연장을 내려놓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여력이 생길 법도 한데, 도무지 이 후진성은 극복이 되지 않는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시간(OECD 중 갑)을 감내해서 만들어지는 국민소득 2만 달러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삶의 권리

앞서도 언급했지만, GDP 1000조 규모의 국가라면 새로운 삶을 긍정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딴따라로 놀고 먹는게 무슨 노동이냐는 박정희류 쉰소리는 그만 할 때도 되었다.

문제는 ‘신성장 동력’ 드립과 ‘뮤지션 = 딴따라 ≠ 노동’이라는 개념이 같은 인물의 머리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제조업으로 끌어 올린 경제성장률이 임계점에 달했다면, 새로운 경제구조와 신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진단은 적확하다. 그러나 같은 인물이 문화예술 영역에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대단한 모순이다. 이게 신성장 동력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만 개 있는 편의점을 4만 개로 늘려서 4580원 짜리 노동자를 두 배로 늘리면, 그것이 새로운 고용이고 새로운 경제인가?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경제와 삶을 누릴 권리가 기꺼이 존재한다. 미래에 대한 저작권은 새로운 세대에게 있는 것이다. 상징과 시혜를 동원하여 청년들에게 ‘쇼맨쉽’을 부리는 것, 다 좋다. 더 치고 나가시길 바란다. 자신을 위한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는 80%의 청년들에게 진정한 해답을 보여주길 바란다. 문화예술의 삶을 갈망하고, 물론 험난한 여정이 되겠으나, 조금만 도와주면, 홀로 일어설 수 있음을 외치는 그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란다.

응답 2개

  1. 말하길

    자립음악이야말로 “신성장동력”이다. “미래에 대한 저작권”은 새로운 세대에 있다. 멋진데요. 미래에 대한 저작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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