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활보일기 intro

-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일단 담배를 꼬나물었습니다. 11시 퇴근 후 마땅히 그것말고는 할 짓이 없었거든요. 엑스세대와 신세대라는 호칭을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여받고 월드컵에 몇번 소리를 지르고 나니, 공상과학같은 2012년이 되었습니다. 88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고나서, 그래도 내가 88만원세대-20대 언저리에 껴있다는 해괴망칙한 안도감과 어디선가 툭하고 불시착한 슬픔이 묘하게 공존했습니다.

저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입니다. 내가 맡은 장애인 이용자가 사회 안에서 어울려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이 없게 돕는게 내 노동의 내용입니다. 말하자면 그의 삶이 내 직업입니다. 나는 이 일이 참 멋지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려고 노력중입니다. 장애인 이용자는 내가 없으면 밥을 못먹고 옷을 못입고 술을 못마십니다. 나는 그의 생활을 도와주고 밥을 벌고 옷도 사고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홀로 술도 마십니다. 그와 나는 이렇게 한 세월을 의지해서 건너가는 중입니다. 간단합니다.

내 노동의 기록을 남겨보려 합니다. 내가 이 시대를 건너 다음 세상을 볼 가능성 같은건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너무 아득한 이야기거든요. 장애인 이용자는 연례행사처럼 장애해방을 발음하고 나는 그보다 더 자주. 속절없이 노동해방을 꿈꿉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길거리에서 이쁜 여자들을 훔쳐봅니다. 나의 소소한 기록(document)이 누군가에게 제발 쓸모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등대나 가로등까지는 바라지는 않습니다. 아득하게 반짝반짝 담배불이라도 됏으면 좋겠습니다. 격주간으로 찾아뵙도록 하겟습니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이용자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하도록 하겟습니다. 이제 담배를 끄도록 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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