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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대성추행 항소심 선고공판 “피해자의 처벌의지가 관건이다”

- 황진미

2012년 2월 3일, 고대의대성폭행 사건 항소심 선고가 있었다. 판사는 먼저 피고인들의 1심에서의 형량과 항소요지를 확인했다. 박씨와 한씨의 항소요지는 합동하여 범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과, 피고인들도 술에 취해 심신미약상태였다는 점을 들어, 형이 무겁고 정보공개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배씨의 항소요지는 자정 쯤 일어난 1차 추행은 추행사실이 없고, 새벽에 일어난 2차 추행은 수면 중의 동작일 뿐이라 추행의 고의가 없으며, 피해자의 항거불능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1차 추행에 배씨도 가담하였으며, 세 명의 피고인들이 순차적으로 추행하여 합동범이다

판사는 고대양성평등센터에서 작성한 진술서를 ‘자백의 보강 증거’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여, 배씨의 추행사실을 인정하였다. 박씨도 최초진술에서 배씨가 추행에 가담한 것으로 진술하였다가 2차 진술부터 배씨의 추행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였는데, 이는 배씨의 변호인의 조언에 의한 것이며, 박씨가 배씨와 친밀한 관계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씨도 최초 진술에서 배씨의 추행사실을 진술했다가 번복하였지만, 이 역시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사건 다음날 배씨가 박씨, 한씨와 차를 타고 가면서 1차 추행에 대해 “부드럽더라”라고 말한 사실이 있고, 배씨가 피해자에게 반성의 취지로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 등으로 인해 배씨의 1차 추행사실이 인정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배씨는 법정에서 “이래도 되는 것이냐?”며 ‘상의를 내려 주려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하였지만, 최초 경찰진술과 고대양성평등센터의 진술에는 그런 말이 없었으며, 박씨도 그런 말이나 제지를 당한 기억이 없고, 결국 상의를 내려주지도 못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배씨가 피해자의 가슴에 손을 댄 행위는 고의적이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판사는 1차 추행의 합동성이 인정되는지의 여부에 대해 피해자가 한씨의 어깨에 기대서 잠이 들자, 박씨와 배씨가 눈짓을 주며 방밖으로 나온 뒤, 한씨가 추행을 시작했으며, 박씨와 배씨가 차에 있다가 얼마 후 박씨가 들어가 한씨와 함께 추행을 하였고, 이어서 한씨가 나온 후 배씨와 한씨가 같이 있다가 배씨가 방에 들어가 추행에 가담하는 식으로 약 20분에 걸쳐 순차적, 연속적으로 추행이 일어난 것은 범행 시작당시 피고인들 사이에 공모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어, 1차 추행에 합동성이 인정된다고 말했다.

# 2차 추행에 한씨는 가담하지 않았고, 박씨와 배씨의 추행에 합동성은 없다

또한 판사는 2차 추행에서 배씨의 추행의 고의성은 피해자가 경찰에서 법정까지 일관되게 배씨의 추행을 주장하고 있는데, 피해자의 진술이 다소 일관성이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주요부분에서 일관성이 있으므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하였다. 피해자가 당시 후배인 손00과 나눈 통화에도 배씨의 2차 추행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피해자가 배씨를 무고할 만한 동기가 없다고 판단된다고 하였다. 특히 피해자는 배씨가 “얘 뭐야, 다 기억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배씨가 수면 중 동작이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맞지 않으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의적인 추행이 있었다고 볼 수 있어 배씨의 2차 추행도 인정된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에 있지 않았다는 배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1차 추행과 2차 추행 사이에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상태여서 술이 깨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잠이 들었다가 추행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잠이 드는 상태로 2차 추행당시 피해자가 대처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이때 박씨가 피해자를 추행하고 카메라로 여러 번 촬영하였는데도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당시 피해자가 항거불능상태에 있었던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차 추행에서 한씨는 가담하지 않았고, 배씨와 박씨의 추행도 합동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박씨와 배씨가 서로의 추행행위를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의사가 결합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단독범행으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즉 1차 추행에 대해서는 합동에 의한 특수준강제추행이 맞고, 2차 추행에 대해서는 단순준강제추행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박씨와 한씨가 주장한 자신들이 술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 피해자의 2차 피해가 크고, 처벌의사가 확고해 집행유예 불가

양형에 대해서는 한씨가 2차 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유리하나, 가장 먼저 추행을 시작하였고 촬영한 점이 불리하다고 말했다. 박씨의 경우 2차 추행에서 피해자를 쫓아다니며 추행하고 촬영까지 하는 등 가담정도가 가장 중하며, 배씨의 경우 추행의 가담 정도는 약하지만 범행을 극구부인하고 피해자의 2차 피해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세 명의 피고인 모두에게 이들이 초범이며 학생신분이라는 점, 한씨, 박씨, 배씨가 피해자를 위해 각각 2천5백, 2천5백, 1천만 원의 공탁금을 낸 점 등이 참작되었다.

판사는 이상의 양형사유를 종합하여, 박씨에게는 징역 2년 6개월, 한씨와 배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3년간 신상정보를 공개하게 한 원심의 형량이 유지된다고 선고하였다. 또한 성폭력특별법상 특수준강제추행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되어 있어 최대한 감경을 하여도 1년 6월 이상을 선고하게 되어있다고 말하면서, 집행유예에 대해 고려하였지만, 피해자가 커다란 성적 수치심과 6년 동안 함께 공부해온 동기로서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으며, 사건 후 일어난 2차 피해 등으로 인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입을 만큼 큰 고통을 겼고 있다는 사실과 피해자가 결심 공판에까지 나와 진술하는 등 처벌의사가 확고해 집행유예가 불가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판사는 “인생은 길다”며 피해자와 피고인들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상고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대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고대의대 성폭행 사건은 사실상 이렇게 마무리된 듯하다. 피해자는 사건자체는 물론 2차 피해까지 극심한 고통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재판을 통해 자신이 입은 피해와 부당함을 호소하였다. 판사의 덧붙임이 말해주듯이 피해자의 처벌의지가 실제로 재판의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피해자의 옆에서 바람직한 법적 조력을 제공해준 변호인이나 고대양성평등센터의 개입과 활동, 그리고 사회적 관심과 여론의 압박 등이 이 사건의 실형선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사건은 수많은 성폭력 사건 중 아주 작은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아직도 수많은 피해자들이 적절한 법적 도움이나 여론의 지지 등을 받지 못하고 2차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침묵과 합의를 강요받고 있을 것이다. 지지와 관심, 그리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여론의 환기가 피해자를 일으켜 세우고 재발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두 눈 크게 뜨고, 연대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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