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노동잔혹사

패션

- 김민수(청년유니온)

40조

국내 패션 시장에서 대기업의 지배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이들 4개 업체(이랜드그룹, 제일모직, LG패션,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의 올해 매출은 약 7조5,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체 패션 마켓의 약 21%를 차지하는 수치이다. (한국 패션협회[KFA] 2011-10-17)

이 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패션산업 시장은 약 40조 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1000만 관객과 굿다운로드를 밀고 있는 영화 산업의 규모가 1조원 남짓이니, 거의 40배에 육박한다. 사회의 악성 종양으로 평가 받는 사교육 시장이 25조 원 수준임을 감안했을 때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역시 의식주의 힘은 무시무시하다.

이런 미친

패션 브랜드 업체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실태를 대략적으로 분석해보기 위해 구인구직 사이트를 헤집고 다녔다. 속 된 말로 정말 개판이다. 유니클로를 비롯한 해외SPA 브랜드와,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시급을 책정하여 단시간 근무하는 이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백화점 입점 업체 등 작은 규모로 운영 되는 대다수의 사업체에는 적은 규모의 인원이 정직원으로 채용 되어 장시간 고강도의 노동에 그대로 노출 되어 있었다.

브랜드를 막론하고 20여 개의 구인 광고를 점검해 본 결과, 이들은 주 6일 노동(월 4~6회 휴무)을 기본으로 일 평균 10~12시간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고, 월 평균 임금은 110~150만 원으로 결정 된다.

이 노동시간과 임금을 보다 자세히 분석해보면 보다 충격적인 결과가 도출 된다. 주 66시간(일 11시간, 주 6일) 일하면 173만 원 이상을 받아야 하고, 주 60시간(일 10시간, 주6일) 일하면 155만 원 이상을 받아야 한다. 기준 노동시간, 주휴수당, 연장 근로수당을 고려한 금액이다. 여기에 연차 휴가 미사용에 따른 수당과 휴일 근로에 따른 수당까지 감안하게 되면 더 높은 금액이 나온다. 쉽게 말해서, 위 그림 좌측에 나오는 매장들은 최저임금 미달 사업장이고 우측에 나오는 매장 또한 200만 원에 가까운 임금이 책정 되어 있지 않다면 최저임금 미달이다. 감정 노동과 오랜 시간 서있는 근로조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최저임금에서 막혀 버린다.

다시 강조하지만, 패션브랜드의 시장 규모는 40조원이다. 이런 시장이 24개만 더 있으면 대한민국의 GDP는 만땅 된다.

문명

해가 뜨고 지고를 반복함에 따라, 인간의 문명은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한양에서 통영까지 말을 타고 달렸던 것이 불과 수백 년 전의 일이다. 이제는 가방에 있는 아이패드나 스마트폰을 꺼내면 앉은 자리에서 같은 정보를 다른 세계에도 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은행원이 수행하는 업무는 ATM이 대신하고 있고, 노동자의 역할을 공장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같은 수준의 경제적 효과를 만드는 업무에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문명의 발전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들 또한 없지 않지만, 이러한 현상들을 마냥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다른 의문이 든다.

사회적으로 요구 되는 인간의 노동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새로운 세대는 편의점과 의류 매장이라는 변방으로 밀려나는 동안, 기계와 문명이 인류를 대신하여 생산한 경제적 가치는 누구에게 귀속 되는가.

공장에서 완성 된 섬유 제품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용모 단정한 청년들의 12시간 감정 노동 서비스에 의해 판매 되는 동안, 40조 원에 달한다는 경제적 가치는, 대체 누구에게 귀속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