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자립음악생산의 단편선

- 박정수(수유너머R)

저 이상한 존재는 누구인가?


2년 전 장애인 극단 ‘판’ 개소식 때 ‘그들’을 처음 봤다. 보문역에 있는 노동사목회관 대강당이었는데, 낮은 천장에 창백한 형광등 불빛, 스무 명 남짓한 장애인들과 우중충한 운동권 관객들, 최악의 공연무대였다. 그래도 ‘시와’의 감미로운 노래는 좋았다. 간만에 귀가 호사를 누렸다. 그런데 ‘회기동 단편선’이라는 요사스런 이름에, 헝클어진 긴 생머리를 하고, 노래하러 나와선 코맹맹이 소리로 기형도 시집을 꺼내 웅얼거리는 저 치는 대체 뭔가? 노래 또한 그로테스크했다. “오늘 나는” 어쩌고 하면서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괴성을 내는데, 이상하게 들을수록 몰입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박경석 노들교장샘도 흡입되고 있었고 옆에 있던 뇌병변 장애인은 덩달아 괴성을 질러댔다.

좀 지나서 더 괴상한 가수가 등장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 재일교포인가? 빽바지 안에 뭘 넣었는지 하복부가 불룩했다. 부르는 노래가 문주란의 트롯? ‘너무나도 그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했어 사무친 미움. 원한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수 없는죄 저질러 놓고~’ 뭐하자는 플레이인가? 그런데, 노래가 트롯에서 테크노로 변신, ‘저질러 놓고’에서 ‘저질’이 분리, 급기야 ‘돈만 아는 저질’로 합체되자 객석은 아수라장이 됐다. 도저히 좀 전의 노동사목회관 대강당을 떠올릴 수 없으리만치 공간은 ‘저질, 저질, 돈만 아는 저질’을 외쳐대는 장애인들의 테크노 클럽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속으로 ‘이거다! 더이상 뽕짝이나 군가풍의 운동가요는 안돼! 이들의 음악이야말로 민중의 야생성과 비밀스레 통하지 않는가!’라고 소리쳤다.

그 후 장애인 집회뿐만 아니라 촛불집회, 철거농성장, 희망버스, 잡년행진 등에서 ‘그들’과 그들의 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 무키무키만만수, 악어들, 멍구밴드, 밤섬해적단, 들어도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의 인디밴드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왜 홍대클럽 한번 안 가본 내 눈에 자주 띄는가? 홍대앞 클럽에나 있을 법한 그들이 어쩌다 집회장과 농성장에 출몰하게 되었는가? 어쩌다 그들의 ‘조직’이 ‘자립음악생산조합’이며, 그동안 몇번 만나 안면을 튼 ‘단편선’씨가 조합의 운영위원으로 있다는 얘기를 듣고 단편선씨를 찾아갔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한발 약진보다 모두가 실패하지 않는 것

연봉 500만원을 꿈꾸나 잔고는 12만원인 거렁뱅이 뮤지션이다. 그들이 홍대 클럽문화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홍대상권을 형성했지만, 치솟는 임대료에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점령하면서 쫓겨난(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2010년 2월에 한받(야마카타트윅스터)씨가 친구들을 데리고 두리반 농성장을 찾아갔고 토요일마다 인디밴드들이 자립음악회를 열었다. 2010년 5월 1일 <뉴타운컬쳐파티 51+>때 판이 엄청 커졌다. 이참에 가난한 인디밴드들이 스타일만 ‘인디’한 게 아니라 자본으로부터의 ‘자립’ 속에서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할 수 있게 생협 같은 조합을 만들어보자고 한 게 자립음악생산조합이다.

조합원 수는?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조합원 수는 50명 정도, 그 중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는 뮤지션은 절반, 조합 차원의 공연수입으로 공동장비도 갖췄고 개개인의 생계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도 내 통장 잔고는 12만원이다.

처음엔 자립음악가조합이라 들었다. ‘음악가’ 조합과 ‘음악생산’ 조합은 뭐가 다른가?

음악을 생산하는 건 작곡가나 연주자만이 아니다. 공연 기획하고 공간 만들고 엔지니어링하고 춤추고 노는 관객들이 모두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공동체란 말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음악은 개별적인 음악가가 아니라 씬(scene)에 참여하는 무리들의 생산물이다. 두리반에서의 공연이 그걸 일깨워줬다. 그곳은 자립음악생산을 훈련하는 일종의 ‘학교’였다. 나는 안 해본 공연기획을, 다른 이들은 홍보, 엔지니어 등을 배웠다. 분업이 아닌 협업, 전문화가 아닌 협력의 정신이 자립음악생산을 떠받치고 있다. 개개인의 흥행은 조합에서 책임질 수 없다.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자립음악을 생산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거다. 한발 약진하는 것보다 모두가 실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조합의 친구 중 하나가 ‘한국예술펑크학교’를 열었다. 지역 주민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펑크음악을 작곡, 연주하는 법, 펑크의 역사, 펑크 패션 등을 가르친다. 강의 듣고 끝나는 게 아니라 수강생들이 펑크밴드를 만들어 공연하기도 한다.

음악이 없는 곳에서 음악이 생겨나다

씬(scene)이란 단어를 자주 쓰는데, 자립음악 씬을 생산하는 건 사람, 공간, 사물만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기도 할 것 같다.

구성원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갠적으로는, 맞다. 음악이 없는 곳에서 음악이 생겨나는 사건에 주목한다. 가령, 명동 마리 농성장에서 공연의 열기를 모아 용역깡패들이 점령한 마리 안으로 쳐들어갈 때 음악은 어떤 사건을 일으킨다. 또한 농성장이나 시위대중들의 정서적 기류가 뮤지션의 음악을 밀어올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내가 느낀 게 바로 그런 거다. 쥐 그래피티 후원 파티 때 야마가타트윅스터가 관객들을 이끌고 도로를 점령하거나 명동 마리에서 동네를 누비며 “돈만 아는 저질”이라고 소리치는 사건, 잡년행진이나 희망버스 때도 일어났던, 디오니소스적 음악정신이랄까, 음악과 정치의 행복한 만남이 일어나는 그런 사건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당신은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하고 기본소득운동도 활발히 하는데 음악과 정치는 어떻게 만난다고 보는가?

음악에는 좌우가 없다고 본다. 음악과 정치의 교집합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음악을 정치적으로 재단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바디우 식으로, 그 둘은 서로 다른 진리-과정이다. ㅋㅋ.

좀 다르게 묻겠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자신의 지향점으로 “세계의 마이너한 존재들, 곧 노동자, 소외된 자, 쫓겨난 자들과의 연대”를 명시하고, 집회나 농성장과 같은 정치적 공간에 결합할 때 음악 씬(판)과 정치 씬(판) 상호간에 일어나는 변화는 무엇인가?

집회에 결합하고 내부 토론도 하면서 정치적인 데 관심 없던 뮤지션들의 생각과 음악이 조금씩 바뀌는 경우가 있다. 또 기존에 펑크, 락 씬의 ‘모순’ 어법에 따라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 보이는 말(‘빅자지쇼’, ‘병1신들’)과 공연을 연출할 때 조합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강하게 문제제기 한 적이 몇 번 있다. 이런 논쟁을 통해 서로 조금씩 변화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치판의 변화는 잘 모르겠다. 이쪽이 워낙 소수다 보니. 내가 기본소득 운동 하는 건 뮤지션들의 자립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경계를 허무는 것도 중요하고. 자립음악가는 임노동자가 아니다. 하지만 노동이 아닌 활동을 하는 건 맞다. 기본소득은 임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삶자체나 활동에 대한 존중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운동판의 변화는 미미하지만 당신들의 음악에 감염된 활동가들의 새로운 감수성이 기존 운동판의 권위와 위계를 해체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립음악 씬 내부에서의 논쟁은 음악판뿐 아니라 운동판에서도 일어나야 할 미시정치학의 주제들이라 생각된다. 나꼼수 비키니(코피) 논쟁처럼. 그건 그렇고, 민노총 집회 때 자립 뮤지션들이 불려나갔다가 분위기 싸~ 해진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일이 종종 있다. 나같은 경우는 그래도 공감대가 형성되는데, ‘밤섬해적단’이 최저임금문화제 공연할 땐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대오를 이탈하기도 했다. 노동계 정서로는 펑크, 락의 모순어법과 과격한 표현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더 많은 씬을 위하여

농성장에서 공연할 때랑 홍대앞 클럽에서 공연할 때랑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가?

‘자립’ 친구들이 많이 있는 농성장이나 시위공간에서 공연할 때는 확실히 감염과 공감 능력이 증대된다. 홍대앞 클럽은 좋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진지하게 들어주는 관객도 있고, 두리반 씬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근데,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공연만 보고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는 참….

두리반이 타결되고 나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거점이 한예종 ‘대공분실’(석관동)로 옮겨졌다. 너무 외지지 않나? 힘들더라도 홍대권에 자립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홍대는 끝났다. 2012년 <51+>공연 타이틀도 ‘홍대는 끝났다’이다. 처음 예술가들이 만들었던 홍대씬에 부동산자본과 문화자본, 상업자본이 몰려들면서 홍대거리는 카페와 술집의 거리로 변했다. ‘홍대 간다’ 하면 이제 ‘여자 꼬시러?’ 하지 않나. 높은 임대료와 건물주의 횡포로 클럽의 사정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는 클럽은 자생력을 잃고 홍대씬에 대한 통제력도 잃었다. 새로 생기는 클럽도 대규모 공연장이지, 자립음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데이 페스티벌>이나 클럽 ‘바다비’ 살리기, 결혼식 이벤트사업 등 홍대에서 이어져온 일관된 운동의 흐름이 있는데 ‘홍대는 끝났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사람들도 있다.

홍대씬만 씬이 아니다. 씬은 많아져야 한다.

또 다른 씬의 탄생을 기대하며 자립음악생산조합이 그 탄생의 마굿간이 될 거라 믿는다.

응답 1개

  1. 칭미말하길

    인터뷰 제일 앞에, 연봉 500만원을 꿈꾼다 굽쇼? 월급도 아니고 연봉?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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