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좋아하기를

- 산호

1.

수유너머 R과 별꼴이 등을 맞대고 문을 연 날이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으려고 찾아갔다. 그런데 광주리가 천장에 달려있고, 창문은 뭔가 누르스름했다. 여기 좋아! 다시 또 와야지! 하고선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새로운 편집진을 구한다는 말에 덥석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번의 편집회의를 거치더니 느닷없이 편집자의 말을 쓰게 됐다. 느닷없음. 물론 처음 쓰는 데서 오는 어색함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위클리 수유너머>의 편집진이라는 이름이 내게 낯설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까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동안 편집회의에 얼렁뚱땅 참여하게 되면서 느낀 몇 가지가 있다. 내게는 이른 새벽인 무려 10시 반에 모인다.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가 되도록 회의를 한다. 한국에 없는 편집진은 화상 채팅으로 회의에 참여하기까지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아온 모습들이다. 다른 어떤 말보다 이런 데서 <위클리 수유너머>에 대한 애정을 보곤 한다.

이 곳에 처음 오자마자 들었던 말을 기억한다. ‘새로운 위클리’를 원한다고. 작년 여름 <수유너머 n>에 오게 된 이후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바로 이놈이다. 새롭다는 것이 대체 뭐길래? 근래 막 시작된 세미나에서 누군가 ‘그저 일상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내게 무심코 습관이 되고 있었던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잠깐 소개를 하자면, 나는 그 흔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마. 깝치지 말고 대학이나 가.’ 삼 년 동안 스케쥴러에 적어놓았던 말이다. 모두가 왜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지만, 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남들 다 가는 곳에 나 또한 가고 싶었지만, 왜 가야 하는지를 물을수록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런 소속감이 없는 것이 불안하지 않냐고 물어보지만, 같은 자리와 같은 시간에 있으면서도 서로 아무 것도 나누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이 숨이 막혔다. 거기에서 어떻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지? 나는 알바로 도망쳤고, 봉사활동지로 도망쳤고, 우연히 수유너머에 오게 된 후에는 아예 피신해버렸다. 이제 조금 있으면 1년이 되고, 그러니 ‘그저 일상’이 되는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기보다는 조금 더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얼마 전까지도 비단 좋은 대학만이 아니라 좋은 꿈, 좋은 삶, 좋은 목표라는 것들도 나를 도망치게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옆도 보지 못하게 만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싶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나는 진취적이지 못하다. 야망 같은 것도 없다. 한참 더 멀리 돌아가고 싶고, 어디에나 불쑥 들이밀고 싶다. <위클리 수유너머>도 그렇게 넘어온 것이고.

2.

처음으로 인터뷰를 나갔다. 단편선 씨였다. 두리반과 카페 마리를 비롯한 각종 집회 장소에 출몰하여 공연하는 음악가. 르몽드 지에 인디음악과 관련한 칼럼을 실기도 하는 자유기고가. 청년기본소득 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에도 참여하는 활동가라는 것이 알만한 사람은 아는 ‘단편선’에 대한 짧디 짧은 소개이다. 나의 주변에는 그의 추종자가 몇몇 있는데, 그를 만나러 간다는 말에 쫓아온다고 달려드는 것을 짐짓 말렸다. 왜 이러세요, 팬사인회가 아니라 인터뷰라서 아니 됩니다. 그래서, 자랑인데, “존나 바빠요.”라는 그를 붙잡고 칼국수까지 먹었다.

사실, 인터넷 상에 올라온 그의 글을 더러 접했던 터라, 인터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많지 않았다. 이는 단편선 씨가 변함 없이 한결 같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단편선 씨가 문제 삼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물음은 이렇다. 음악가는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가.

우리는 흔히 대형기획사를 통하지 않는 음악, 자본에 독립적인 음악을 두고 ‘인디음악’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돈이 되는 음악을 거부하고 자신의 음악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음악들이 존재한다. 어디에나 있는 감성이 아니고, 그만큼 왜 이렇게 좋은지 설명하기도 어렵다. 단지, 그저 사라지지 않기를…. 이런 지점에서, 음악가도 아니고, 음악에 별다른 소양도 없는 내가 그의 질문에 이끌리게 된다. 음악가는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이에 ‘자립음악가’ 단편선 씨는 말한다. “함께 공연을 기획하고 음반을 만들고 유통망을 조직하려고 합니다.” 이번 위클리에서는 단편선 씨를 통한 ‘자립음악생산조합’을 소개한다.

3.

덧붙여,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얘기는 나눠야지’라며 들은 일화를 전하고 싶다. 어떤 스님이 꽃을 주워다 화병에 놓고 물을 주었다. 이를 본 그의 스승이 ‘너는 꽃을 좋아하느냐?’라고 물었다. 스님은 그렇다고 대답하며 꽃이 정말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승이 ‘그런데 꽃도 너를 사랑하느냐?’라고 다시 물었다. 이를 듣자마자 얼떨떨해졌다. 그 이후로, 무언가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에 앞서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새로운 장, 새로운 공연 기획,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을. 쉽게 지나치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해주는 특별한 감성들을. 그런데 그들의 음악도 나를 좋아할까. 어떡하지? 이렇게 멈칫 하는 순간에, ‘좋아하기를’ 약속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좋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