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이데이

[5호] 에일리언 2: 매이와 촛불

- 기픈옹달(수유너머 R)

어느 정신분석학자의 육아일기: 매이데이

에일리언 2: 매이와 촛불

인간 에일리언은 뱃속에서 나오고 나서도 오래 동안 엄마 몸에 달라붙어 있다. 젖을 빨고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때로는 바다 달팽이의 기생충처럼 숙주가 전에 없던 행동을 하게 만든다. 2008년 5월 이 에일리언들은 집에만 있던 어미를 광장과 가두로 뛰쳐나오게, 그래서 광우병 원인물질의 유입을 저지하는 싸움에 앞장서게 만들었다. 촛불시위의 배후에는 에일리언이 있었다.

2008년 6월 26일 새벽 1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시위의 정점에서 나는 무시무시한 ‘아기+유모차+어미’ 복합 에일리언을 목격했다. 수천의 시위대를 두렵게 만든 살수차를 돌려세운 거대한 에일리언을. 두 대의 살수차가 교대하던 순간, 한 아기엄마가 유모차를 끌고 새로 투입된 살수차 앞을 가로 막았다. 인도로 가라는 경찰에게 아기 엄마는 “나는 직진할 겁니다. 나는 저 물대포 가는 길로만 갈 겁니다.”며 기어이 살수차를 돌려세웠다.

나는 그 아기엄마에게서 라캉이 말한 안티고네의 윤리를 봤다. 둘째 오빠 에테오클레스를 매장한 것처럼 (국가의 적으로 지목된) 첫째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고집함으로써, 그것을 금지한 크레온의 국가주의를 무력화시킨 외디푸스의 딸 안티고네, 라캉은 그녀에게서 이데올로기의 한계를 돌파하는 반복 행위의 윤리성을 발견했다. 각목과 망치로도 막지 못한 살수차를 무력화시킨 그 아기엄마의 이질적인(alien) 힘은 ‘아동인권’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돌파한 데서 나온다. ‘위험한 상황에 자녀를 방치하지 말라’는 아동 인권에 대해 그 아기엄마는 바로 그 아동인권의 논리로 아이를 광우병 위험상황에 방치한 정부에 반대하여 거리로 나왔고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도로에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자유”를 근거로, 조금 전까지 허용했던 행진을 반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고집스러움으로, 살수차와 맞짱 떠 무력화시켰다.

아래 글은 그 다음날 ‘다음’ ‘아고라’ 광장에 올린 글이다.

2008년 6월 27일/ 유모차 부대 아빠로서 물대포 막은 엄마에게

며칠째 13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아기 엄마와 함께 광화문으로 밤마실 나가고 있는 애기 아빠입니다. 어제도 나갔었죠. 저 같은 사람 간간히 눈에 띄더군요. 어제 광화문 종로 쪽 도로 한켠에서 5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시위대를 향해 “현행범을 체포해라”며 소리를 지르더군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남자 앞에 유모차를 들이대며 그랬죠. “당신이 말하는 현행범이 이 아이와 나냐?” 그랬더니 그 남자는 씩씩대며 유모차를 발로 찰 듯 달려들더군요. 깜짝 놀란 시민분들이 그 사람을 밀쳐 냈습니다.

위험의 정도는 다르지만, 그리고 그 어머니가 살수차를 막아낸 그날 밤 저는 조금 일찍 아이와 애기엄마를 집으로 보내고 혼자 싸우고 있었지만, 저는 그 어머니의 행동이 무모하다거나, 아이를 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거라는 정부나 일부 시민들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선 이유부터 생각해 봅시다. 저 같은 경우는 단순합니다. 첫째, 그 시간에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이가 먹을 먹거리의 위험성이 아이와 긴밀히 연결된 제 신체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셋째,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제 아이 역시 이런 경우엔 거리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할 거라고, 제 아이도 그런 어른으로 크리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아기는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민감하게 느끼고 반응할 수 있게 해준 제 신체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다른 인격체입니다.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야겠지만, 저는 스스로 먹고 살 수 없는 아이의 양육을 돌보는 꼭 그만큼 아이의 판단을 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선 다른 분들도 저처럼 생각하실 거라 믿습니다. 아이를 수단이나 대상으로 여겨서가 아니라 아이를 먹거리의 주체로서, 시민적 주체로서 여기기 때문에, 아이 역시 나의 판단에 동의하리라는 믿음 때문에 아이를 대신해서 판단했고 아이와 함께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아이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분들이기에 다른 누구보다 아이의 위험에 대해 깊이 고민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를 양육할 책임감이 없는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 이성적인, 바로, 아이 때문에 예민한 이성을 갖게 된 분들이기에 아이의 위험에 대한 그분들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보도 때문인지, 어제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 시작하니까 꽤 멀리 있는데도 몇 분이 저더러 아이를 데리고 인도로 올라가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걱정해주시는 거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선 부모들은 철부지도 아니고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정신이상자도 아닙니다. 먹거리 안전성을 확률로 따지는 철부지 학자보다, 국민의 건강을 포기한 미치광이 통치권자보다, 싼 맛에 먹겠다는 어른들보다 훨씬 더 냉철한 이성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많이 배워서가 아닙니다. 아이를 기르기 때문에, 아이의 몸을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런 이성을 갖게 된 겁니다.

바로, 아이 때문에, 아이와 함께 미친 정부의 <위험>을 누구보다 크고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이의 위험에 대해 그분들만큼 잘 판단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들더러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라고 하지 말고 그런 걱정할 필요 없도록 아이뿐만 아니라 그 자리의 누구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앞장서서 싸워야 할 것입니다. 위험을 막는 것은 ‘인도’나 ‘집’이 아니라 거리에서 싸우는 우리들의 단결된 힘입니다.

다시 보니 그때의 감회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인용하며 오늘 육아일기를 대신하려 한다.

2008년 8월 7일/ 유모차부대 아빠가 촛불공화국 시민에게

14개월 된 딸아이를 안고 15번째 촛불시위를 하고 새벽 3시에 돌아왔습니다.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촛불의 힘이 뭔지. 이제야 만해가 ‘님의 침묵’에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쓴 이유를 알겠습니다.

아스팔트 농활대원들이 소라광장에 소복이 모여 단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숙’의 비루함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그들의 잠은 아름다웠습니다. 태평로 한 귓가에서 젊은 연인들이 입맞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후덥지근한 밤을 청량하게 해주 어여쁜 모습이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르는 동호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 난 공감의 길을 보았습니다. 차벽 앞에서 야생의 북소리를 울리며 “이명박을 오사카로” 라며 주술을 거는 ‘원시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회찬, 심상정, 정태인씨와 시민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는 걸 보았습니다. ‘대의’’하는 정치가 아니라 대중 속에서 방향을 모색하는 참된 정치를 보았습니다. 싸움을 즐기고, 즐김을 싸움으로 만드는 촛불의 정치는 첫 키스처럼 강렬하고 행복했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촛불은 ‘재협상’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만이 아니라는 걸. 촛불시위는 그 자체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청소년과 주부와 아기와 연인과 노동자와 시민과 인터넷이 거대한 무리를 이루며 강렬한 키스를 나누는 삶, 우리는 두 달 동안 고기 먹은 쇠고기를 먹지 않았고, 몸에 해로운 라면을 먹지 않았으며, 사회적 연대의 필요와 기쁨을 나누었고, 전자의 속도로 지혜를 모아 실천했으며, 헌신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두 달 간 살아온 우리의 삶이 우리가 이 사회에 대해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촛불이 뭘 이루었냐?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지 않느냐, 지친다는 분들이 저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촛불시위의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가 원한 사회의 모습이니까요. 우리는 이 촛불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이 촛불공화국을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시키기 위해, 지금처럼 즐기는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숙제’도 즐기고, 토론도 즐기고, 싸움도 즐깁시다. 시작에 얽매이지 않듯이 끝에 목말라 하지도 맙시다. 날카로운 첫키스는 ‘추억’이 아니라, 현재형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우리 딸은 저녁이 되면 작은 손가락으로 대문 바깥을 가리킵니다. 계속하실거죠?

– 매이 아빠

응답 1개

  1. 박혜숙말하길

    샘, ‘즐기는 싸움’이라는 말이 확 다가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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