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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참 고약한 세상.

- 김융희

유례없는 계속된 혹한에 미리 마련해 뒀던 장작이 벌써 바닥이 났습니다. 당분간 계속되겠다는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영하의 기온을 무릅쓰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땔감용 나무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한낮인데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 고되고 힘든 일로 등에는 땀이 촉촉이 베었습니다. 이같은 경황에 전화벨이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낯선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잘못 걸려온 전화로 끊으려는데, 끊기는 커녕 일손을 멈춘 체 말대꾸에 빠져들고 말었습니다. 대꾸를 끊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니 말대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능숙한 유도에 어쩔 수 없이 말대답의 끊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미리 오해는 마십시오. 오랜 세월 험한 세상살이로 어지간히 닳코 닳은 노회의 내가 얄팍한 상술의 말솜씨 쯤이야 감쪽같이 당할 호락호락은 천만에 올시다. 다시 말하거니와, 머리 굴리기도, 눈치로 때려 잡기도, 얄팍한 상술의 간교함도, 달콤한 애교의 유혹도, 소위 감언이설의 피해쯤은 충분히 자신있는 나였습니다. 오히려 먹이사슬의 이용을 삶의 지혜라며 이런 일 쯤이야라는 수완을 마음속에 도모해 본 경험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영민한 내가 당했습니다. 그 상한 자존심에 마음의 지금 상처가 나를 슬프게 합니다.

정도가 가장 옳은 삶의 길임을 믿고, 부질없는 욕망을 삼가며, 철저한 자기 방어력을 갖춘 일상이라면, 요즘의 어떤 유혹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에도 허점은 있었습니다.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치고, 돌로 치면 돌로 친다던가. 아님, 이열은 치열이랄까. 나같은 노회에게는 어눌한 말투로 순수를 가장한 어수룩한 태도의 인정에서 오히려 투철한 마음도 자신감도 눈 녹듯 허물어진, 도데체가 무방비요 대책이 없었습니다. 상술에 그만 나의 허점이 노출됐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고얀 일을 당했던 경험이 있는지요. 내가 이렇게 어리석고 지혜가 부족한 줄이야, 또한 허황된 탐심은 어떻고요. 수선부림이 좀 지나쳤습니다. 부끄럽고 남세스러워 감히 떠벌리기조차 챙피함에도, 또한 깍인 자존심으로 인한 분한 맘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제발 이같은 고이얀 일들이 우리들 곁에서 멀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간곡한 마음에서, 수치를 무릅쓰고 이실직고, 내 경험의 실례를 여러분 앞에 망설임 없이 털어놓습니다.

오지 진안의 청정 특산물로 만든 좋은 상품으로 소비자 의견의 필요한 행사이오니, 오해하지 말고 협조해 달라며, 구구 절절이 질박하면서 믿음직스런 너무도 인간적인 호소였습니다. 전혀 어떤 부담도 없다는 말에 나는, 뜨악하지만 우물거리면서 그만 호응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우체국 택배 상자를 받았습니다. 생각보다 크고 디럭스한 상자를 보면서, 아차! 했지만, 벌써 벌어진 일. 어제 있었던 전화의 결과였습니다. 열어보니 내용물은 담긴 비닐팩의 10개씩으로 소포장되고 다시 3개의 소포장이 한 박스로 포장된 상품은 택배용 우체국 상자로 다시 포장되어 배달되었습니다.

내용물에는 시음용으로 1회용 비닐팩 두 개와 A4 용지의 인쇄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구입하는 분께는 6십여만 원인 물품을 29만 여원에 드리는 상품이란 내용의 문구같은데, 도대체가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표현으로 무엇이 어떻다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언뜻 그냥 줄 것 같은 얼핏 느낌의 분위기였지만, 자세히 새겨 보면 시음용 두 팩까지도 그냥 준다는 내용은 어데도 없습니다. 어수룩한 촌부가 읽으면 공짜라는 착각의 아슬한 표현으로, 나같은 노련한 노회도 선뜻 함정 판별의 불가해라니……

상술은 어차피 장사 수단의 한 술책이려니 너그럽게 이해하려 합니다. 상술 이전, 이같은 현대인들의 음식 기호에 대한 못 마땅으로 나는 늘 식상합니다. 왜 음식을 들면서 건강에, 또는 정력에 좋으며, 이같은 표현도 부족해 ‘약보다 좋은 음식’이라는 호들갑을 떠는걸 보면서, 이는 음식에 대한 심한 모독이란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음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음식에 대한 어떤 수사나 대용은 필요 없습니다. 먹거리인 음식은, 그 이하나 이상의 무었도 아니며,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그야말로 먹거리일 뿐입니다.

갈수록 음식에 대한 늘어만 가는 과대 수식어들, 과연 안 좋은 음식은 어떤 음식이며, 완전 식품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기아 선상에서는 물 한 컵, 벌레 한 마리도 생명을 지키는 일이 허다합니다. 생명을 앗는 부자는 보약에도 쓰이며, 인삼의 부작용과 같은 양 극단을 교차하는 식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란 수식어가 붙지 않음 마치 먹거리가 아닌 것 같은 요즘, 이런 틈새에서 파우치 식품이 유행처럼 퍼져가고 있군요.

현대 문명의 방편인 듯, 음식문화도 참 다변 다양해 지고 있습니다. 제한된 TV 시청에도 나는 장수 프로로 인기리에 방영되는 ‘6시 내고향’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체 내용과 분위기는 거의 변함없이 꾸준하면서도, 등장 인물들의 웰빙, 스태미너와 같은 어려운 외래어의 부드러운 혀놀림과 개방적 입담, 특히 정력에 좋다는 표현과 같은 행동의 당돌함은, 천양지간 변화의 느낌입니다. ‘몸에 좋은 음식’이란 표현이 마치 ‘음식맛 평가’의 대명사처럼 애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어제 귀가길 전철에서의 경험입니다. 귀티 차림의 사모님이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한참을 있으려니 무료한 듯, 핸드백을 열어 무얼 꺼냅니다. 내용물은 건강식품인 듯 싶은 비닐팩이었습니다. 무심결 바라보았던 내가 민망했습니다. 질긴 봉지에 입술을 데고 치아를 이용해 뜯더군요. 그리곤 병아리 물먹듯, 송아지 어미 젖 빠는 모습으로 빨아 마시는 모양새는 결코 젊잖은 짖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밖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일입니다.,

이같은 혐오식품이 나에게 배달되었습니다. 나는 상품이 불량식품이리란 생각은 않습니다. 물론 시음도 안했지만 들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리란 믿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품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판매의 방법에 대한 충고는 하고 싶습니다. 정성껏 만든 자기 상품이 인기리에 판매되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람은 누구나 갖는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물쩍 어떻게든 안겨서 팔아 볼려는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이런 일들이 자꾸 늘어가는 추세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계속된 혹한에 외출 기회도 줄어 제한된 공간에서의 불편한 심기는 더 참기가 힘듭니다. 이제는 물품도 반송하고 평정하려는 마음이 아직도 잘 갈앉지를 않습니다. 이번 분통은 남이 아닌 나의 허술함에 대한 자괴감으로 더욱 부글거려 잠자리까지 나를 괴롭혔습니다. 그런중 이번 주의 만필 구상의 글감이 없어 능력없는 글재주만 통탄했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의 영향인가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순간 이것이다! 생각하니, 이글거렸던 마음의 원망도 답답증도 사라지고 다시 평정을 찾아 오늘 소임을 끝냈습니다. 더불어 짜증스러움이 기쁨의 빌미가 됨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분노가 감사로 변한 마음을 대신하여, 여러분께서는 이런 고얀 경험이 없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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