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치마타’(巷)를 살아가기 –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 제 4회 국제워크샾

- 정정훈(수유너머N)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우리 말 중에 ‘여항’(閭巷)이라는 단어가 있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장소라는 뜻 정도로 쓰이는 말이다. 이 여항이라는 말과 비슷한 뜻을 가진 일본어가 ‘치마타’(巷)이다.

노마디스트 수유너머N의 네 번째 정기 국제워크샾에서 초대한 뉴욕의 활동가이자 사상가 코소 이와사부로(Sabu Kosho)는 치마타라는 말을 하나의 개념으로 사용함으로써 도시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치마타란 “사람이 집합하는 장소라면 어디라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교류와 교통의 공간’을 지칭한다. 따라서 각종 의식이나 축제의 공간, 퍼포먼스의 공간, 시장,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뉴욕열전>, 527) 그런 의미에서 치마타란 도시를 계획하고 통치하는 권력이 만들어 도로(street/avenue)나 구역(block)이 아니라 도시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사건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치마타란 분명 물리적 공간성을 가지고 있지만 단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코소가 말하는 치마타란 차라리 수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섞이고 엮이는 접속의 다양한 계기들을 일컫는 것이다.

지난 2월 20일 월요일부터 24일 금요일까지 ‘유체도시를 구축하라’는 제목으로 진행한 국제 워크샾에서의 논의들은 바로 자본과 권력의 도시 계획 속에서 사라져가는 치마타적 장소를 어떻게 다시 구축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내에도 번역된 코소의 책, <뉴욕열전>과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이상 갈무리)의 핵심적 문제의식이기도 했지만 또한 작년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아큐파이 뉴욕(Occupy NewYork)운동이나 일본의 원전폭발 사고 이후의 문제를 사유하는 데 있어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위클리 수유너머 이번 호의 ‘동시대 반시대’에서는 코소 이와사부로와 진행한 국제워크샾에 대한 이야기들을 싣는다. 코소와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류했던 본 워크샾은 4박5일 동안 진행되었지만 수유너머N의 국제워크샾 팀은 13주 동안 도시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그와 함께 공부하기 위한 준비 세미나를 하였다. 그 준비 세미나부터 본 워크샾까지 를 함께한 이들이 쓴 글들은 이 워크샾을 통해 어떤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어떤 고민들이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이번 워크샾에는 바다 건너 일본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수유너머의 친구들이 함께 해주었다. 이들의 워크샾 참관기를 동시대 반시대에 싣는다. 이들이 코소와 수유너머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 시간을 통해서 어떤 자극을 받았는지 독자 여러분들도 확인해 보셨으면 한다. 고병권의 사회로 진행된 코소와 이진경의 대담은 도시와 운동 그리고 오늘날 전지구적 반자본주의 운동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거리들을 많이 던져주지 않을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

비록 제한된 지면에 길게는 14주간, 짧게는 4박 5일간 진행된 수유너머 국제워크샾의 모든 내용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그 문제의식의 강도와 고민의 열기만은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자본과 권력이 구획해 놓은 도시에 배치된 존재가 아니라 그 도시에 새로운 용법을 부여하는 치마타적 존재로 살아가는 삶, 그 치마타를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민이 조금이라도 번져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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