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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이슬람 – 신의 정원인가, 지구의 화약고인가.

- 김융희

인류 문명의 모태요, 새계 종교의 발생지인 지중해 연안은 유사이래로 지금까지 바람 자는 날이 없다. 중동으로 불리고 있는 이 지역은 인류 문명을 이끌어 온 회교와 기독교의 발생지로, 세계 최대 신도들의 메카요 성지인 것이다. 절대자인 신을 믿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신앙의 성지가 신의 축복이 아닌 저주의 땅으로 변하여, 어느 순간도 총성이 멈추지를 않고 테러와 살육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주민 대부분이 무슬림인 이슬람의 메카엔 지금도 살육의 땅이다. 왜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로 계속 불타고 있는걸까? 왜일까? 그들의 신앙인 종교 때문인가? 그들의 민족성 때문인가? 아니면, 오늘날 블랙골드로 불리는 풍부한 석유자원의 소유권 쟁탈의 여파인가? 매일 머릿 뉴우스를 장식한 중동사태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문명 충돌이던, 자원의 소유를 위한 정치적 게임이던, 이 알 수 없는 불가해로 나는 안타깝고 궁금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미국을 비롯해 서방의 많은 나라들은 이슬람을 악의 축이요 저주의 대상으로 몰고 있으며, 이슬람 또한 자력 보호를 위해 지금 세계와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새 천년의 기원을 위한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인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상징인 뉴욕의 국제무역센터빌딩이 테러로 무너졌다. 미국의 힘에 도전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인 것이다. 물론 미국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지금까지 소탕전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뉴우스에 관심을 줄이고자 신문도 멀리하는 내가 이슬람에까지 관심을 갖일 특별한 이유는 없다. 생활의 곳곳에서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고 있어 유용한 오일이 중동의 정정에 좌우되고 있음에, 당장 의식주처럼 영향을 주고있는 오일가격으로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감안해 선뜩 이해할 수도,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작은 배려일 뿐이다. 내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거창한 문제였기에 궁금은 궁금일 뿐, 지금까지 그를 이해할려는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나였다.

그런데 이같은 여러 궁금증과 사실을 알려주는 기회가 있었다. 감사해야 할 행운은 우연한 해후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이 책을 만나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유익한 보람으로 계속 흐뭇했다. 오죽했으면 좀체 쓸 줄 모르는 독후감을 써서 여러분께 내 기쁨을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했고, 가까운 이들과의 담소장에서는 이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고 한참이 흘렀다. 그런데 금방 서두르며 당장 실행하려 했던 결심이 지금까지 미루어지고 있다.

내가 읽은 책은, 웅진지식하우스에서 낸 “현경”이 쓴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이란 책이다. 저자 ‘정현경’은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대학원’의 신학을 가르치는 석좌교수이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가르치는 신학교수로,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특히 9 11의 극단적 테러 현장을 보면서, 학자요 교육자로써 ‘테러에 대한 정당한 전쟁’을 보면서, 외면할 수 없는 관심과 함께 연구에 변화가 생겼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런 차원은 아니었지만, 내 궁굼증에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믿음에서 읽은 책이었다. 책의 볼륨이 600여 페이지의 장편이지만, 굵은 활자에 아름다운 칼라 그림과 사진이 적당히 배치되 있어 쉬엄 읽을 수 있으며, 특히 마음의 감정을 건드리는 극적 사실들이 당사자들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생생하게, 그리고 상황 설명이 쉽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어서 나의 노안에도 무리없이 독파할 수 있었다. 저자와 함께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인내와 집중력이 쇠한 나의 독서벽은 유별나다. 정진 일독은 전혀요, 쥐 소금 먹듯 냠냠 독서라야, 그것도 책을 여럿 펼쳐놓고선 수시로 바꿔치기의 괴벽 독서가 진행된다. 그런데 이 책의 독파는 나의 괴벽을 깨뜨렸다, 그래 독후감을 써야지, 또 여러 이웃에 많이 알려야지를 되내었다. 그런데 나를 일깨우는 방해자가 생겼다. 진즉 ‘한겨레신문’에 연제되어 흔히 알고 있다며 나는 비아냥의 면박을 당했고, 나의 우물안 정보로 허뿔싸가 돼야 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지만, 나의 감동의 내용을 하나쯤 요약 소개하면서 내 상한 무안을 달래야겠다. 아브라함을 공동의 종교적 조상으로 하여 세계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 세계에서 가장 큰 순례 관광 시장, 그리고 이스라엘과 파레스타인의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삶의 터전인 국토 분쟁은 이미 대게는 아는 사실로, 중동의 문제는 장구한 역사와 얽설킨 관계에 대한 상술과 부연 설명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거두절미로 모두 생략하고, 여기선 그 안에서 일어난 감동의 사건으로 책에서 밝힌 하나의 내용만을 여기에 소개해야 겠다.

“탈리아는 홀로코스트 후 동유럽에서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로 이민 온 유대인이다. 정부의 이민정책에 따라 정부로부터 집을 한 채 선물 받았다. 유럽에서 겪은 가슴 아픈 박해의 역사를 뒤로하고 새롭게 내 땅과 내 집을 갖고 오랜만에 안정과 행복을 즐기고 있는 어느 날, 집의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헨섬하고 지적인 팔레스타인 청년 둘이 서 있었다. 이 집은 그들이 태어나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라는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부모를 따라 피난을 갔고 이스라엘 점령지구가 되어 돌아올 수 없었다. 이제 그들은 장성해서 형은 의사, 동생은 철학교수가 되었다. 어린 시절이 하도 그리워 방문했는데 좀 들어가봐도 되겠냐는 부탁이었다. 탈리아는 선선히 받아들였고, 그들은 감회에 젖어 집을 들러보면서 옛날을 기억했다. 또 자신의 어머니께서 아직도 이 집에 돌아올 날을 꿈꾸며 집 옛 열쇄를 간직하고 계시다고는 말도 했다.”

“탈리아는 본의 아니게 집의 주인이 된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탈리아는 그들을 보낸 후 고민에 빠졌다. 저들은 태어난 집에서 쫏겨나고, 그것도 모른 채, 주인이 되어 살고 있는 자신이 계속 마음에 걸린 것이다. 이후 탈리아는 그들에게 연락해 집을 반씩 나눠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형제의 동생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가담했다가 감옥에 간 후였다. 그럼에도 탈라이는 이 형제들과 계속 우정을 키우면서 그들을 통해 파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부당한 점령에 대해 어떤 한을 품고 살아가나를 들을 수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의 가족들만의 행복한 집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탈리아는 결국 이 집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유치원을 만들었다.”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전쟁을 겪는 세대는 트라우마의 골이 너무 깊어 공존 상생하기가 어렵지만, 그런 경험이 아직 없는 어린이들은 ‘적’이란 편견없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이다.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학부모들을 모아 탈리아는 ‘평화 유치원’을 세웠다. 이 유치원은 세계 평화운동가들의 순례지가 되었고, 이 모델을 따르는 여러 학교들이 이스라엘 전역에 생겨 났다. 이러한 사업과 프로그램들을 통해 청소년들은 적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우정을 싹티운 이웃이 되어 평화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P526~527)

나라를 잃고 발붙일 땅이 없어 너무나 많은 차별과 박해를 받아온 이스라엘의 시온이즘에 동정이나, 이스라엘이 얼마나 욕심 많고 무례하고 오만한 나라인지를 욕하며 무슬림을 동정하여 세계는 오해와 이견이 들끌고 있다. 이같은 중동의 이견과 오해로 인한 두블럭으로 나뉜 지구촌엔 끈임없이 갈등과 분쟁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존의 엄연한 역사앞에서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며 오해와 이견이 아닌, 탈리아처럼 우리들 모두가 조금만 배려하고 보듦을 수 있다면, 미래는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지혜와 능력을 충분히 갖춘 우리 인간들임에도 현실은 아니다. 어두운 나락의 길을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이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차분히 기회가 되면 좀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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