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국제 워크샵 참가 소감

- 신은희

“뉴욕 도시 시리즈의 기본적인 관심은 도시에 말이 있을 수 있는지의 문제, 도시가 스스로 말할 때 어떤 말을 할지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도시를 계속 사랑해 온 이유 중 하나는, 도시를 통해 비로서 세계라는 보이지 않는 관계성을 알게 됐다는 점. 세계로 부분적, 형식적으로 닿을 수 있게 됐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국제 워크샵 참여는 내가 사는 도시가 말을 걸어 온 느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워크샵이 끝나고 고체와 유체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공간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오래되었지만 고체화된 생각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건축가가 디자인한 대로 만들지 못하는 것처럼 운동, 행동도 디자인한 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부상의 말처럼 이탈하고, 벗어나기 마련인 것들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사부상은 도시를 고정된 장소라든지 물질적 구축물로 볼 수 도 있지만, 그것을 빠져나오는 것으로서 도시를 본다. 치마타(거리), 이=민, 집합적 신체 등 유체적인 것들은 낯설지만 다른 상상,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가재울뉴타운’이란 이름으로 재개발이 오 년 째 이어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가 허물어지면서 기괴하게 변해갔고, 불안과 함께 몸과 마음이 힘들어졌다. 집들이 부숴지기 시작할 즈음 비어 있는 집과 폐허가 되어버린 공터에서 아기 인형과 놀이를 하는 내용의 영화를 만들었다. 현재 재개발 지역 안에 살고 있는데 개발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되고 있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쪽에는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빈 공터에 성당만이 홀로 서 있고, 가장자리 길가에는 얼마 전 화재로 불타버린 술집들이 탄 냄새를 피우고 있다. 그 곳을 무기력함으로 바라보았는데, 공부를 하며 그 곳에서 저항하고 쫓겨났던 사람들,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축척된 삶의 시간들이 되살아났고, 고체화된 권력, 고체화된 사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국제워크샵을 하기 전 준비워크샵을 하면서 사부상의 <뉴욕열전>,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외에 공간과 건축에 대한 다양한 책들을 읽었다. <근대적 주거 공간의 탄생>을 처음 읽었는데 주거공간과 가족주의, 자본주의의 관계의 내밀함과 집의 코뮨주의적 모델인 파밀리스테르 등 외부로 열려지는 주거공간의 개방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장소와 장소상실>을 읽으며 무장소성이란 말이 기억에 남는데 무장소성은 다양한 경관과 의미 있는 장소가 제거되어 문화적, 지리적으로 획일화되는 장소로 내가 배제되어 있는 타자 지향성을 특징으로 한다. 자기 정체성이 망각되고 익명성으로 가득한 도시 공간을 유체적인 도시로 상상하고 현실화하는 것은 새로운 전환이었다.

국제 워크샵 첫 날은 뉴욕 점거 운동(Occupy Wall Street)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사부상은 점거를 “하나의 정치사상에 의해 조직된 ‘운동’이 아니라 다종다양성을 포함한 ‘추세’”로 보았다. 이러한 다종다양성은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을 도입한 ‘제너럴 어셈블리’라는 회의 형식으로 반짝이는 개념으로 내게 다가왔는데, 제너럴 어셈블리에선 참가자 모두가 발언권을 갖고 결정에 참가한다.

사부상 강의의 통역은 한글로 타이핑한 글자를 스크린에서 읽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눈이 아프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다. 한국어로 통역하면 참여한 일본인들에게 비어 있는 시간이 생기고, 시간이 길어지게 되어 도입한 새로운 방식이다. 이런 형식은 예전에 장애인 단체에서 일할 때 문자통역을 했던 기억을 불러 왔다. 문자통역은 수화통역과 함께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일본어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이 되었고, 문자통역은 정동노동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워크샵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집중된 에너지와 교류되는 감응affect으로 새로운 신체가 만들어지고 기억은 다시 쓰여졌다. 워크샵이 끝나면 먹는 블록?으로 이동해 밤 늦도록 대화하면서 워크샵이 끝날 때까지 흥겨운 분위기는 이어졌다.

마지막 시간에 3.11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자력은 자본주의에 의해 구동되고 있는데 이윤을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는 자본주의의 시간적 싸이클과 핵, 원전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끝없이 어긋나고 이 어긋남 속에 묵시론적 위기가 감춰져 있다고 한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활동가 세 명의 이야기와 무기력하지만 죽음 이미지로부터 촉발되어 무언가 해야 한다는 사부상의 이야기가 울림으로 남아 있다.

사부상의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은 도시를 걷고 느끼고 체험한 것, 활동하면서 감응한 것들을 몸으로 쓰고 있다는 점이다. 워크샵 기간 동안 사부상의 낙관적인 태도에 대한 질문이 여러번 나왔는데, 그의 낙관적인 태도는 내게 좋은 감응을 주었다. 낙관적인 태도는 유연함, 흐물흐물함, 유체적인 것들이 연상되며 좋은 에너지와 힘이 생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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