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NHS-내 몸에 대한 책임

- 남창훈(면역학자)

오마이뉴스에서 영국의 의료시스템인 NHS (National Health Service)에 대한 연재를 한 바 있다. ‘의료민영화’와 ‘무상의료’라는 두 다른 극단을 두고 이리저리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연재를 한번 봐두면 참 좋을 것 같다. 영국에서 6년을 살면서 나 역시 NHS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다. 거기에는 제도에 대한 칭찬이나 비판 모두가 포함되어 있다. 사람이 만든 제도이니만큼 문제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NHS의 기본 정신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기본 정신 중 하나는 오마이뉴스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의료를 보편적 복지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비교의 대상도 될 수 없고 경중이 있을 수도 없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살아 남는 권리’이다. 국가가 기본부터 살피기를 힘쓴다면 당연히 생명권의 보장을 헤아리는 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생명권의 핵심을 살리는 의료 행위를 국가가 관리하는 복지 개념에 집어 넣은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나는 NHS가 이러한 기본 정신 외에 또 다른 기본 정신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에서 다루지 않은 듯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모든 연재를 다 보진 못했으므로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료행위의 주체 속에 질환을 앓고 있는 장본인인 환자를 포함시키는 정신이다. 나는 한국의 의료 행위를 가끔 경험하며 이러한 측면에서의 큰 차이를 아주 크게 실감하곤 한다. 영국의 GP (General Practitioner)를 보통 한국의 가정의나 일반의와 상치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실제 진료를 하는 범위나 정도를 두고 보자면 비슷할 수도 있지만 다른 점은 GP의사들의 주된 임무가 무엇인가 하는 점에 있다.

내가 지닌 경험이나 NHS문헌 등에서 참고한 내용이나 할 것 없이 GP의사들은 예방과 교육을 아주 주된 임무로 가지고 있다. 작은 질환이 큰 질환이 되지 못하도록 손을 쓰거나 전염병이 돌 때 이를 차단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함으로써 질환의 정도나 확산 등에 대한 통제를 일선에서 하는 일을 한다. 이는 영국처럼 모든 인구가 예외 없이 어느 특정 의사를 주치의로 선택하는 시스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둘째 GP의사들은 병증을 호소하는 환자와 대화를 하며 질병과 그에 대한 관리 지침에 대한 교육을 수행한다. 한국의 병원에서 ‘한 사람의 의사가 한 사람의 환자를 대하는 시간이 1분 미만이다.’라는 사실은 환자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환자에 대한 교육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들이 앓는 질환 가운데 의사의 처방과 투약을 통해서 치유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근 15년 이상 신약 개발에 몸담고 있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써 이 질문을 자주 던져 보았다. 그 비율을 정확히 계산할 수야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 비율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질환은 의사의 처방과 투약 없이 치료된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의사의 처방과 투약이 결정적으로 치료를 완료해주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아주 좋은 예가 감기이다. 피토르나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리노바이러스에 의해서 주되게 발병되는 감기는 사실 치료제가 없다. 증세가 생기고 3-4일 푹 앓고 나면 낫게 되는 질환이다. 문제는 이러한 질환에 대처하는 방법인데 감기 증세가 있음에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 무리를 하거나 폭음을 하거나 하다 보면 몸의 면역 기능이 바이러스를 퇴치시킬 만치 강하지 못하게 되어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보다 기승을 부리게 되고, 그 후유증으로 2차 감염 같은 것이 발생하면 급성 염증들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보통 감기에 걸리면 많은 물을 먹어서 발열 증세에 대처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서 몸의 면역 기능을 최적화시키고, 방안을 청결히 하거나 통풍을 잘 시켜 다른 감염의 빌미를 줄여야 한다.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옮기는 것이므로 감기가 많이 돌고 있을 때에는 비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감기 기운이 있어 GP의사를 만나 듣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모두 하나마나 한 이야기들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현대인의 필수 교양들이다.

과학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우리 자신을 바로 알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라 했을 때 현대 의학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는 우리 몸에 발생하는 질환들에 대해 원인부터 대응법까지 차근차근하게 교육을 통해 공유하는 것일 것이다. 보통 의료 행위를 의사가 환자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행위로 이해하는데 이는 아주 그릇된 것이다.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듯이 우리 몸의 주인은 각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무지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개선시켜 나가야 할 임무가 바로 현대 의학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있던 MRC-LMB 바로 맞은 편에 아덴부룩스 병원이 있었다. 그 병원 들어가는 정문 초입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아프고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말이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어려운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응답 5개

  1. 김상미말하길

    샘, 위클리수유너머에서 뵙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2. 박카스말하길

    ‘우리 몸에 발생하는 질환들에 대해 원인부터 대응법까지 차근차근하게 교육을 통해 공유하는 것’ 그렇군요!
    오래간만에 ‘백수건강법’의 좋은 말씀들을 찾아보게 되네요.

    • 남창훈말하길

      반갑습니다. 앞으로 칼럼을 통해 자주 뵙도록 하겠습니다. 내용과 관련하여 의견 주시면 늘 대화하는 마음으로 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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