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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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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융희

지난 105호에서 못다한 내용을 하나만 더 소개하려 한다.
2002년 6월 22일에 파키스탄의 남쪽 도시 물탄에서도 3시간 이상을 차로 달려야 하는 보수적인 마을에서 있었던 일로, 이미 세계의 메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사실의 내용을 담은 자서전(in the name of honor)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모두가 벌써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신의 정원에…)에서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사건은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로써, 인간의 자만으로 위기의 문명을 치닫고 있는 불안속에 살고 있는 현대의 어두운 현실에도 희망의 미래를 갖게 하는 등불이란 생각을 한다.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가난한 농부의 딸인 무르타크 마이는, 그녀 역시 배우지 못했다.
2002년 6월 22일이었다. 남동생이 높은 카스트의 처녀를 강간해 가족의 피해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혐의로, 피해 마을 종교회의 결정에 따라, 남동생의 누나인 무르타크 마이는마초이족의 온 마을 남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4명의 청년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분쟁이 생기면 피해 집안에 가해자 쪽 여성들을 결혼시키거나, 가해자 부족 여성을 피해 쪽 남자들이 강간을 해서 소위 정의와 평화를 다시 세우려는 전통의 풍속이 있다. 이런 풍속에 따라 남자 위주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여성인 무르타크 마이는 부족을 대표하여 남동생의 죄값으로 희생의 제물이 된 것이다.

강간하라는 마을회의 결정에 ‘알라의 이름으로 코란의 이름으로 살려달라’고 무르타크 마이는 애걸 애원했다. 그러나 250여 명의 마초이족 마을 남자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그녀를 마을회의장 곁에 있는 마굿간의 맨 땅위에 옷을 벗겨 4명이 돌아가며 강간을 한 것이다. 뭇 시선 사이로 거의 초주검의 벌거벗은 채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무르타크 마이, 아버지만을 애태워 부르는 딸에게 넉 나간 사람으로 아버지는 겨우 숄을 던져준다. 숄을 두른둥 만둥 무엇을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이 맨발로 흙길을 걸어 집을 향하는 무르타크 마이였다.

총으로 무장한 마을 회의장에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아야만 했던 아버지와 삼촌, 구자르족 청년들, 이 광경을 멀리 문밖에서 지켜보며 통곡하는 어머니였다. 이것이 피해자 마초이족의 구자르족에 대한 정의의 보복이라는 명목으로 저질러진 풍속이다. 다른 부족에게 모멸감과 수치감으로 패배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이같은 일이 싸움의 수단으로 자행되며 전통적으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라 해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어떻게 전통으로 지켜지는 풍속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 반대였다. 오히려 마초이족이 무르타크 마이의 남동생을 납치해 때리고 강간을 저질렀으며,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강간하지도 않는 남동생에게 도리어 누명을 씌운 것이었다.

-이같은 강간을 당한 여성의 다음 선택은 자살이라 한다. 강간을 당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기에 다시 가족의 명예를 정화시키기 위해선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내 어렷을 적 욕심꾸러기 아저씨가 새삼 떠오른다. 그 분의 구구계산법은 항상 유동적이다. 줄 것은 5, 8은 20이요 받을 때는 5,8이 50이거나 60인 것이다.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지만, 네 것도 내 것인 것이다. 이런 일이 실수처럼 어물쩍이 아니라 아주 당당하여, 그 분 곁에는 늘상 큰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어릴적 경험이 가끔씩 떠올라 웃곤 한다. 이해 타산에 밝은 지금과는 달리 큰 마찰없이 포용하며 살았던 그 때의 어른들을 이제 생각하면 부럽고 존경스럽다. 부조리요 모순임을 알면서도 포용하며 껴안는 마음, 옛 어른들의 너른 마음을 이해하며 살자. 파키스탄의 풍속을 그들의 전통으로 이해하려 해도 잘 안된다. 명예란 이름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말도 안되는 풍습을 나는 이해하려 노력하자고 했다. 이는 내 너그러운 마음에서가 아니다. 무르타크 마이의 실존적 체험의 희생 앞에서 나는 헛소리라도 이렇게 함이 한 인간으로의 도리가 아닌가 싶어 억지를 부려본 것일 뿐이다.

무르타크 마이에게는 극도의 수치심에 자살 충동을 막는 방패가 분노와 복수심이었다고 한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마초이족을 복수하기 전에는 결코 죽을 수 없다. 죽어서도 안된다.어차피 죽을바에는 죽도록 싸워서 복수를 해야 한다는 증오심으로, 그는 경찰서와 법정에 사실을 폭로하고 고발했다. 마을회의 결정을 반대했던 마초이 마을의 이슬람 스승인 물러가 그의 증인이 되어 주었고, 파키스탄의 진보적 미디어, 여성 단채의 적극적 지원과 가족의 응원을 받아 공판의 결과는 승리였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국제적 여성 단체와 메스컴의 지지가 이어졌다. 미국의 여성지인 ‘그래머’가 주는 ‘올해의 여성상’도 받게 되었다.

드디어 무르타크 마이는 세계인의 관심과 지지를 받아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 승리요, 기적과 같은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는 상금과 보상금, 후원 성금등을 모아서 가난해 배우지 못한 천여 명이 넘는 소년 소녀들에게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였다. 그가 세운 여학교의 흰 벽에는 “폭력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소녀들을 교육합니다.” “펜은 칼보다 강합니다.”라는 표어가 적혀 있고, 학교의 자립을 위해 소와 양을 기르는 농장을 만들어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축을 돌보게 하여 노동정신과 자립경제를 익혀 교육효과를 높이고 있다. 매맞고 사는 불행한 여성들을 돌보는 쉼터와 여성을 위한 전문병원,등.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많은 불행한 여성을 위하여 사업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시골의 지극히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인간으로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불행을 경험했고, 지금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무크타르 마이 여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학교를 가보지 못한 그녀는, 법과 언론학을 전공한 매우 똑똑하고 유능한 ‘나심’이라는 든든한 보좌역을 두고 있다. 자신을 죽이려고 위협하는 마초이족 마을의 눈앞에 버젓이 학교를 세워 자신들의 패배감과 잘못에 대한 회개를 바라며, 아름다운 승리와 통쾌한 복수를 이룬 것이다.
“죽기보다 힘들었던 상황에서 살아남아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좋은 일을 하게 했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그건 알라와 코란에서 받은 신앙의 힘이었을 거예요. 저는 이슬람의 신이 정의의 신임을 코란에서 배웠어요. 신이 절대로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을 확신했어요. 그리고 저를 믿어준 가족, 특히 아버지, 그리고 이슬람 스승, 여성 단체들과 저널리스트들, 판사등, 여러 좋은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극도의 분노와 복수심도 힘이 되었을 거예요.”

아버지는 코란을 읽을 수 없었지만, 구절들을 듣고 가슴에 담아 마음으로 외워서 어린 아이들에게 코란을 가르치는 코란 선생으로써, ‘애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코란의 가르침을 실천한 아버지였다. 무르타크 마이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린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본인도 맞아본 적이 없이 자란 이슬람 가정의 딸이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과 코란을 받아들이는 믿음의 힘이 이런 엄청난 도전과 변혁을 이루어 냈고, 오늘의 무르타크 마이를 있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하면서도 신을 의심해 본 적이 전혀 없엇느냐는 저자의 질문에 “사실은 가끔씩 신에 대해 실망하고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신을 의심하고 실망하는 것은 죄임을 잘 알지요. 신앙의 갈등이 있었지만, 전능하신 신께서 저에게 모든 헤쳐 나갈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을 믿었고, 그 때마다 다시 일어서곤 했지요.” 정의의 신을 진심으로 믿는 신앙의 기적은 원수의 마을 앞에 소년 소녀들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웠고, 그 학교에서 가해자인 마초이족의 아이들도 함께 받아들여 배우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오른팔이 되어 곁에서 모든 일을 보좌하고 있는 ‘나심’은, “너무 정직하고 바르고 내성적인 성격은 조용하고 소심한 면도 있지만, 세계인들의 자신에게 퍼붓는 관심을 모두 좋은 일만을 위해 돌릴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무르타크 마이를 평했다.
온갖 협박과 곤경에 굴하지 않고 폭력을 가한 자들과 싸워 그들을 감옥에 보냈고, 자신의 한이었던 꿈을 위해 소녀들의 배움터를 만들었다. 여성을 위한 병원을 짖고, 이제는 여자대학교도 세울 계획이다. 의식화 교육, 사회적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억울하게 당한 여성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쉼터도 운영한다. 이제부터 무르타크 마이는 문맹의 가난하고 힘없는 여성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세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응답 1개

  1. […] 여강만필 |  최악을 최상으로 만든 무르타크 마이.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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