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푸코와의 마주침, 그 충격의 기록

- 정정훈(수유너머N)

당신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위대한 사유는 언제나, 익숙한 통념들을 산산조각 내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사람들 앞에 들이민다는 것을. 그래서 위대한 사유는 또한 항상-이미 위험한 사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 위험한 사유는 또한 너무나도 매혹적이라서 거부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역시 당신도 공감하겠지만,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위대하기에 위험한 사유에 매혹된다는 것은 그 사유의 열정적인 추종자가 된다거나 충실한 주석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사유에 매혹된다는 것은 그 사유를 촉발시켰던 물음에 직면한다는 것이고, 그 물음을 내 삶의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클리 수유너머’는 우리- 여기서 ‘우리’는 말 그대로 위클리 슈유너머에 글을 쓰는 사람일 수도 있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일 수도 있으며, 혹은 위험한 사유에 매혹되길 두려워하지 않은 모든 이들일 수도 있다 -를 매혹시킨 위험하며 위대한 사사상가들과 다시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시대를 거스르는 사상가들’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다시 만나려는 네 번째 매혹적인 사상가는 미쉘 푸코이다.

우리에게는 미쉘 푸코 역시 그러한 위대한 사유의 세계를 펼쳐냈던 위험한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요즘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푸코의 작업들, 즉 신자유주의와 자기통치의 문제를 다룬 그의 강의록들뿐만이 아니라 침묵하는 타자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근대적 주체성의 탄생과정을 규명하며 권력의 작동방식을 세밀하게 추적하던 오래된 그의 작업들 역시 여전히 유효한 개념들과 사유의 방법들로 가득 차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의 저작은 여전히 우리의 통념을 흔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우리로 하여금 숙고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와의 마주침은 언제나 우리에게 어떤 충격을 유발한다.

‘위클리 수유너머’ 106호의 ‘동시대 반시대’는 푸코와의 마주침이 발생시킨 충격들의 기록을 담았다. 푸코에 막 입문한 독자들부터 푸코와 더불어 오랫동안 사유해온 연구자들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푸코가 그들의 생각과 고민에 어떤 문제들을 던졌으며 어떤 통찰들을 보여주었는지를 풀어낸 글들을 중심으로 이번 ‘동시대 반시대’는 꾸려졌다. 그리고 이들이 마주한 푸코의 텍스트 역시 <감시와 처벌>과 같은 한국 지식사회에 익숙한 저작에서부터 <안전, 영토, 인구>나 <생명정치의 탄생>과 같은 최근 급격한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의 작업이나 <자기의 통치나 타자의 통치>1,2권처럼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강의록까지 다양하다.

이번호 ‘위클리 수유너머’의 ‘동시대 반시대’를 읽으면서 당신은 푸코와 마주침이 유발시킨 충격에 대한 네 편의 기록들, 푸코의 물음을 자신의 상황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묻고 있는 네 개의 시도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마주침의 기록과 시도들이, 그 기록과 시도들을 읽는 당신에게는 또 어떤 효과를 유발할지 궁금하다. 당신의 개입을 기다린다.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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