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너의 일상. 실은 나의 노동

-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아무리 봐도 그는 멀쩡햇다. 가령 일그러진 표정이라거나 아무렇게나 걸친 옷차림. 우스꽝스러운 몸짓, 휠체어나 목발같은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근사한 야구모자를 쓰고 단정한 옷차림의 청년이 반듯하게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어머니가 앉아 연신 아들과 자신의 이마를 닦았다. 당황스러웠다. 일을 하기전에 늘 짓는 자신감있는 표정이라거나 ‘뭐든지 열심히 하겟습니다’ 같은 나름대로의 준비된 제스쳐 라든가, 저도 장애인입니다. ‘안경 보이시죠? 저도 나름 시각장애가 있습니다’ 같은 심심하고 멍청한 농담들도 한방에 훅 날라가버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얼마나 장애인의 스테레오 타입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제까지 벙쪄 있을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급 미소를 짓고 밝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마치 시트콤에서 막 튀어나온 청춘의 전형처럼.

그는 1급 뇌병변장애를 가지고 있다. 언어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더디고, 팔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옆에서 덥다를 연발했고, 다른건 필요없고 밖에서 아들을 잘 보조해주면 되는일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가장 곤란했던건 그의 언어를 내가 잘 알아들을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와 나는 같은 한국말을 썻지만, 그는 그만의 고유한 음성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언어를 알아듣는게 가장 시급했다. 이건 마치 연애같은 느낌이었다. 주의깊게 세심하게 그의 말을 듣고 그 표면적 의미뿐만 아니라 숨은 의미까지 파악해야했다. 평상시보다 몇배의 인내심과 집중도가 필요했다. 그는 인류의 진화의 최대 산물인 <명확한 언어> 와 <두 손의 자유> 를 금지당했다 .

이제부터 편의상 그를 ‘아담’이라 부르겟다. 아담과의 면접은 약 30분간 진행되었는데, 그는 진보정당 당원이고 집회에 자주 나간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사실 아담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고, 나는 그가 어떤 정치적 성향인지 몰라서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혹은 무관심한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다. 아담은 나와 그의 관계가 ‘갑과 을’도 아니고, 자원봉사자와 장애인의 관계도 아닌 묘한 관계라고 말했다. 나는 설사 그가 내게 가족같은 관계를 요구했어도 따를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통상 고용관계에서 가족같은 관계는 가족처럼 부려먹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난 돈이 필요했으니까. 사실, 채무관계도 있었다. 평소 소신이 빚지고 살지는 말자였는데, 어쩌다 보니 지인에게 몇십만원 땡겨 쓰게 되었다. 빛은 없고 빚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나의 전략은 채무를 갚고 실업수당을 받을수 있는 시점까지만 고용안정이 되면 좋겟다는 생각이었다. 일단은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앞에 있는 ‘아담’에게 신뢰를 줘야햇다. 면접을 통해 몇가지 사실을 알게되었다. 장애인에게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과 (고기인가?) 투쟁현장에 생각보다 자주 나가게 될거란 사실과 그가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는 사실( 뇌병변 장애인들은 동안이 많다.) 가끔은 주말에도 나와줄수 있냐는 부탁과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달라는 부탁, 그리고 야학에서 공부를 하니 학습보조도 부탁한다는 것. 그리고 아담은 무학이며 고졸검정고시를 준비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얼떨결에 취직이 되어버렸다. 출근거리는 30분.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 정도고 시간당 6000원을 받는다. 하루 열시간씩 5일만 일하면 급한 돈은 갚을 수 있었다. 출근 시간은 오후 두시. 느긋하게 일어나도 된다. 종종 이용자의 사정에 따라 출퇴근과 노동시간은 변동이 있을수 있고 동행해야 하는 야학은 혜화동에 있다.

무언가 얼떨떨했다. 고정된 수입, 출퇴근. 4대보험. 투쟁하는 자들에게 갖고 있던 채무감. 막연한 불안감. 죽지는 않겟구나 라는 안도감. 내 노동이 누군가의 삶이 된다는 만족감.노동,투쟁,연애의 강박 같은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체되는 느낌이었다. 시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 밖에는 오늘도 여지없이 사람들이 바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렇게 석달만 버티자고 시작한 일이 오늘로 여덟달째이다. 아담과 나는 해를 바꿔 세 번째 계절을 맞고있다.

아담과 나의 첫 번째 업무-일상은 같이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는 일이었다. 마치 이건 데이트잖아? 라고 생각은 했지만 엄연히 일이었다. 그는 영화를 좋아하고 먹는걸 좋아한다고 했다. 특별할건 없었다. 현대사회에서 미식과 영화관람은 고상하게 보이기 좋은 취미였다. 한편으로 아담이 손과 언어를 통해 욕망을 구현할수 없기 때문에 음식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욕망을 충족할수밖에 없지않나? 라고 생각을 하다보니 영화는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활동보조를 구할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고 했다. 햇병아리 활동보조인 나는 막연히 그거 큰 문제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딱히 내 직업의 구조적 모순이나 고충같은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활보1를 처음 만나는 날이면 으레 같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다고 했다. 이를테면 입사 기념 회식인 셈이다. 홍대에 있는 소박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주변의 시선따위는 가볍게 쳐낼 내공이 있었지만 내가 음식을 집어 아담에게 주는게 영 서툴렀다. 그의 오른쪽에 앉아 냅킨을 깔고 밥과 반찬을 알맞게 집어 입으로 넣어주는 일. 어깨를 쓰지말고 부드럽게 손목을 써서 입에 넣어주고 종종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고 그가 음식물을 먹고 있는동안 내 밥을 챙겨먹는것 이 아담과 나의 식사의 풍경이다. 간단해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일단은 밥을 먹는동안에도 모든 신경은 이용자에게 고정된다. 더구나 아담은 맛있는걸 많이 먹는걸 좋아한다. 입도 위아래로 몇 번씩 뽀드득 소리가 날때까지 닦아줘야 한다. 그렇게 많이 먹는데도 살도 찌지 않는다. 분명히 나쁜놈이다. 어쩐지 엄마의 마음같은걸 연습하는것 같았다. 그의 한숟가락을 신경쓰다 보면 나는 밥 먹을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나의 노동이 그의 입안에서 오물거리는것이다. 처음이라 그냥 그런줄 알았지만 식사의 문제는 다른 활보들도 가지고 있는 고민이었다. 엄연히 일인지라 맘편히 먹을수 없었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있어서 반찬 하나를 집을때도 아담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그는 막연히 턱짓을 하거나 그거 라고만 말해버리기 일쑤다. 그때부터 식탁위에 좌표를 그리고 어떤 음식을 어떻게 줘야할지 고민해야한다. 누구에게는 간단한 일상이지만, 아담에게는 늘 이런 복잡한 과정이 수반된다. 여차저차, 밥을 먹는데 한시간이나 걸렸다. 아담은 종종 후식도 즐긴다.2

첫날은 가볍게 데이트 하듯 시작되었다. 아담과 나는 한달동안 180시간을 만나기로 했다. 아담은 8월부터는 야학에도 나가야 된다고 했다. 노들야학이라는 곳이었다. 내게 노들야학이라는 곳은 활동가들의 에세이나 시사주간지의 특집기사에만 존재하는 곳이었다.3 그런 노들에 간다는것은 내게 뭐랄까? 대단히 비장하고 진지한 기분에 휩싸이게 했다. 뭐랄까 . 당장 화염병이라도 만들고 싸우러 나가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 같은거 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마땅한 이유도 없었다. 무언가 대단히 묘한 기분이었다.

2011년 7월. 아담은 희망버스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했다. 돈도 벌고 투쟁도 할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수락했다. 입사하자마자 출장을 가게 된것이다. 노들야학에서 교통편을 다 대주니 몸만 가면 된다고 했다. 머릿속에서는 하루에 몇시간을 일하니 얼마를 벌 수 있겠구나. 잘하면 밀면이나 돼지국밥도 먹겟구나 같은 생각들이 분주히 떠올랐다. 1박2일 코스. 15만원은 벌 수 있는 기회였다. 금전적 채무와 막연한 부채의식을 빨리 갚고 싶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무척 흥미진진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참 순진했었다. 어쩌면 나는 그저 활동보조‘용역’4이었을 뿐이다. ★

  1. 활동보조를 줄여서 이렇게 말하는듯 하다. 장애인 이용자들의 용어다. []
  2. 아담은 고상하고 낭만적인 면모가 있어서, 밥을 먹고 후식을 즐기기도 한다. 내게는 후식을 즐긴다는 점도 그렇게 많이 먹고도 또 후식까지 챙기는 점도 낮설었다. 더구나 살도 안찐다니. 후식은 중산층의 규범 아닌가? 규탄의 대상이다. 부러울때는 규탄하고 볼일이다. []
  3. http://gyuhang.net/576 또는 http://gyuhang.net/1120 []
  4. 서비스(영어: service),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용역은 건설 및 철거 용역을 말한다.
    물질적 재화 이외의 생산이나 소비에 관련한 모든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복무(服務)라는 용어도 통용한다. 상품을 빼고서 교사의 수업, 이발사의 이발, 일용직근로자들의 일 따위가 용역에 속한다. 대개 용역은 개인이 남을 위하여 일하는 행위를 뜻[1]하지만 경제학에서도 토지·자본·노동이라는 각 생산요소나 정부가 무엇인가를 생산하거나 혹은 일상 생활을 위한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행동을 포함한다. (출처: 위키백과)
    []

응답 1개

  1. tibayo85말하길

    “나의 노동이 그의 입안에서 오물거린다”는 표현, 뭐랄까 에로틱하면서도 의미심장하네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