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칼럼

희망광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 이창근(쌍용자동차 해고자)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데 하필 꽃샘추위란다. 밤엔 눈발마저 날려 텐트는 날아가고, 천막은 찢어진다. 깔아놓은 스티로폼을 뚫고 냉기가 심장 어디쯤에 느껴질 때면 오줌은 또 왜 그리 마려운지. 온몸이 저릴 정도다. 침낭을 덮어쓴 노동자들의 모양새가 번데기를 닮았다. 새벽까지 수십 번을 꼼지락 거리며 아침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그러면 아침이 온다. 그게 지금까지 길바닥 노숙농성의 경험치다. 그래서 그냥 버티는 것이다. 투쟁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운명처럼. 노숙 하면 당연히 추울 것이란 생각을 하는데 사실 그렇진 않다. 사람의 온기가 무시못 할 정도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내 몸뚱이가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다. 지난 10일부터 서울시청광장에서 시작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 희망광장의 모습은 이렇다. 경찰과의 티격태격도, 지나는 시민들의 반응도, 차가운 날씨 만큼이나 차가운 언론의 시선도 다 참아내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 무언가 뚝하고 떨어질 거란 기대와 희망버스만을 되뇌이는 모습은 고민을 해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희망버스는 진화 발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2011년 희망버스는 이후 숱한 노선의 희망버스를 만들었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희망버스의 등장과 출현은 한국사회가 절망의 늪지대임을 방증하는 결과다.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라던 희망의 버스는 이제 하나의 흐름과 경향을 갖게 됐다. 그것은 단순히 이름의 차용이 아닌 자발성의 독려와 참여의 확대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묻혀있던 사안즉,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문제를 과거의 유물처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문제, 나의 문제, 즉 등잔 밑이 문제로 비로소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희망버스가 주는 정신이며 교훈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희망의 버스는 철저하게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나아갔다. 이제까지 투쟁하고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방식을 뼈대로 한 싸움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이 안정된 골격에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는 다양함을 가미한 것이 희망버스가 아닌가. 그러나 이제 우린 희망버스를 잊어야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2011년의 희망버스 열기를 잊어야 한다. 오히려 다시 시작하는 지금의 모습에 주목하고 이 희망버스운동의 에너지를 모으는 작업을 성실하게 다시 해야 한다.

희망광장은 울분과 분노 저항의 우물이며 반격의 거점 역할을 자임한다.
밀양 탈핵 희망버스, 쌍용차 희망텐트, 강정 평화비행기, 강원 생명버스등 이름은 다양하며, 분포는 전국이다. 어느 순간 유행처럼 번지는 이 희망버스의 흐름이 2011년 희망버스마냥 파괴력을 갖진 못하게 보인다. 이슈가 이슈를 덮는 상황에, 주제도 무척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저변은 확대되고 당사자 또한 엄청난 규모로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동안 지역성과 의제 중심성을 벗지 못했다면. 이제는 탈지역성과 탈의제라는 새로운 이합을 하고 있지 않은가.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는 우리의 주장은 이제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희망광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희망을 일궈나갈 것이다. 2011년 희망버스에 만족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다시 뚜벅뚜벅 걸어, 사람의 길 노동자의 길을 다시 열어 나갈 것이다.
희망광장에서 다시 희망을 이야기 하자. 희망광장은 아픈만큼 기쁘게 만나는 곳이다. 희망광장에서 만나자.

응답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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