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미래’는 우리 것이다. – 알츠하이머 인류(우리)를 보살피며

- 사쿠라이 다이조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12년 3월 11일이다.

“2011년 3월 11일, 극동의 어느 땅에서 인류사는 일거에 반전을 개시했다”는 관점에서 나는 지난 1년과 앞으로의 1년을 생각해볼 작정이다.

 작년, 대지진으로부터 20일이 지난 뒤, 수백 킬로에 걸쳐 잔해가 이어진 도호쿠 지역의 해안선을 따라 도쿄에서 북상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수 킬로 떨어진 곳에 이르자 경찰이 감시선을 쳐놓아 우회해야 했다. 사실 경비가 그다지 삼엄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후쿠시마 제1원전까지 가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 시간을 내리쬐면 일 년 허용치를 초과한다는 고농도 방사선에 시달릴 필요가 없겠다 싶어 우회하기로 했다.

 후쿠시마를 우회해 가까스로 도호쿠 미야기현의 이시노마키시에 도착했다. 시읍면 단위에서는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이다. 이시노마키에서 나의 텐트극단인 ‘야전의 달 해필자’는 때로 의용병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9월에는 이시노마키의 네 곳에서 연달아 텐트연극을 공연했다. 이번 연극에는 「후쿠비키비쿠니담フクビキビクニ譚」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일본 야전의 달 11명, 타이완 해필자 7명, 독일인 1명이 배우로 출연했으며 연주자 2명과 다른 스텝 10명을 포함하면 30명이 넘는 집단의 공연이자 이동(유동)이었다. 우리와 텐트가 유동한 땅은 눈 닿는 곳이 온통 진흙투성이였다. 반년이 지났지만 복구는 한참 더뎠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전히 전기와 수도가 끊겨 있었다.

 연극의 컨셉은 ‘오메데또 고자이마스(축하합니다)’였다. 가족과 지인을 잃었을 이재민을 관객으로 두고 마지막에 “오메데또 고자이마스!”라며 축하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가 연극의 승부처였다. “오메데또”는 먼저 훔쳐보는 예축(予祝: 미리 축하함) 행위인 텐트연극의 기능, 그 재생을 시험할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축을 승부로 내걸어야 했던 이유가 재해지와 그곳의 사자, 그 사자와 함께 사는 이재민과 공진하거나 이재민을 격려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흩뿌려진 방사성 물질, 그 압도적인 불안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신의 미래에 건네는 말이자 내디뎌야 할 다리를 잃은 우리의 신체감각을 향한 격렬한 ‘도발’의 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게 옳았는지야 어찌되었든, 이시노마키의 텐트 속은 이재민 관객들의 파열하는 웃음소리와 끊임없는 눈물이 교착했으며, 극히 고농도인 인간들의 호흡으로 충만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수도권에서도 이 연극을 공연했다. ‘유메노시마(夢の島: 꿈의 섬)’라고 불리는 제5 후쿠류마루 기념관 앞에서, 언제나 야전의 달이 텐트를 올리는 서부의 시민공원에서, 항만과 건설 일용노동자의 마을인 고토부키에서. 거기에는 많은 한국인 노동자도 살아가고 있다.

 올해 2월에는 타이완의 타이베이시 남부에 있는 원주민 마을에 텐트를 세웠다. 마을은 강가에 있으며 그들은 정부의 퇴거 요구에 맞서 오랫동안 저항운동을 이어왔다. 그들은 투쟁 끝에 공동체 그대로 이주한다는 좋은 조건을 쟁취했다. 따라서 우리의 텐트가 세워진 아름다운 광장은 조만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그곳은 지형 자체가 바뀔 것이다.

“인류사는 반전을 개시했다”는 말은 동일본을 살아가는 내게 중대한 역사인식이다. 나는 역사적 현재를 ‘요개호(要介護: 보살핌이 필요한)형 인류사회’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문명이 출현하던 지점(국가를 산출하는 지점)으로 걸음을 재촉해 되돌아가고자 한다. 물론 현실공간에서 군림하는 방사능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 혹은 제어기술을 발명․발견하지 않으면 ‘반전’은 시민마라톤의 코스처럼 그저 인간의 진화를 거꾸로 돌리며 바라보는 아카이브 체험에 지나지 않으리라.

 반전하지 않을 수 없는 ‘미래’. 피난을 가지 못하고 후쿠시마 가까이서 살아가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글을 읽으면 이런 문구와 만나게 된다. “아이를 낳을 수 없으며 결혼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난 이제 절대로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걸 어떻게 숨기며 살아가야 하나” “직장도 구하지 못 할 것이다” “어떤 미래를 향해 노력해야 할까”. 이 ‘미래’는 물론 우리의 ‘미래’다.

 작년 말, 후쿠시마 북부의 미나미소우마시에서는 학생들의 체내 피폭량을 조사했다. 결과는 신중히 얼버무려졌지만, 일생 동안에 허용되는 방사선량을 이미 초과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소아암만이 문제는 아니다. 방사선은 면역계를 파괴한다. 조사 시점에서는 이미 무기력함에 가까운 자각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마저 불능성의 낙인을 찍는다. 어린 소녀가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며 자기 삶을 저주한다. 대체 어찌된 ‘미래’란 말인가. 그녀가 지금 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가능성으로서의 ‘미래’ –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릴 가능성, 병마가 범한 아이를 낳을 가능성, 존재 자체가 차별을 초래할 가능성 – 자신이 ‘방사능(방사선을 퍼트리는 능력)’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 – 이러한 가능성이 ‘미래’의 인간상 바닥에서 그 모습을 놓아주질 않는다. 이런 기층을 갖고 말았다는 사실을 보편적인 인간 존재론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어두운 기본적 인권으로서 등록해야 하는 것일까.

 반환점을 돈 우리 앞을 가로막는 ‘미래’. 이것은 운명인가? 앞으로 생을 영위해야 할 인간족을 거머쥔,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이란 말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 ‘미래’에 저항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는 “운명은 우리가 고른다”는 사상 훈련을 거쳐야 한다. 그건 현재의 이렇듯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과거의 어떤 사건과 결부지을 것인가라는 선택의 훈련일 것이다. 요컨대 ‘과거 그 자체’를 바꿔가는 것이다. 과거로 여기던 것을 가능성 속으로 되밀어내고 다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욕망’이 발생하는 시점으로까지 되돌려야 한다. 내가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문화는 욕망이지만 동의어는 아니다. 자연이나 동물은 욕망을 갖지 않으며 따라서 문화가 없다. 인간 역시 동물에 속하는 한에서는 그저 ‘기회주의’를 따를 뿐이다. 태양빛과 물을 원하고 위를 채우고자 먹고 마시고 움직인다. 이런 노력이 인간의 조건이다. 따라서 문화 역시 위 속에 있다. 다만 인간은 기회를 찾아내는 기술이 발전해왔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 착각으로 말미암아 ‘문화’는 인간의 죄 많은 업이 되었다.

착각된 ‘문화’는 차례차례로 ‘표준’을 내놓았다. 이 ‘표준’이란 모두 함께 만들었을 터인 ‘기회 찾기 기술’을 나쁜 놈이 횡령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증명할 따름이다. ‘인간이라는 문화적인 것’이 발명되고 나서 이백년이 넘게 지나자 강력한 힘을 갖기에 이르렀다. ‘일반 지성’인 스탠더드는 국제법부터 원자력발전 기술의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아우르고 있다. 인간은 이러한 ‘일반 지성’에 종속되는 길이 유일한 생존 방식인양 훈련받아 왔다. ‘정치’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기능부전이 되어 탈정치화가 ‘일반 지성’의 윤활유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일반 지성’이 실은 인류를 소멸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동의 섬나라에서 발생한 일은 ‘사고’가 아니라 당연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1년 간 동일본을 중심으로 ‘절망’과 ‘희망’이 말해졌으며, 풀어낼 수도 없을 만큼 뒤얽힌 실타래가 되더니 결국 방치되고 있다. 이 실로 무엇을 짤 수 있을까? 알츠하이머에 걸린 인류를 보살피며 이 실로 무엇을 짜낼 수 있을까?

 후쿠시마 근처에서 사는 어린 소녀가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는 모든 상상력을 짜내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녀들과 적극적으로 관계하고 서로의 ‘절망’과 ‘희망’을 교환하고 재생산하는 것, 그게 바로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려는 우리의 방침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축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미래’를 보살피고 그리하여 ‘과거’를 변혁하며, 지금부터 축하해 마땅할 1년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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