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흥해라 녹색정치!

- 백납(수유너머R)

1.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친구들이 공동체상영 ‘반핵영화’를 빌려와 봤다고 했습니다. ‘핵발전소 – 이제 우리도 알거든!’이라고 크게 적힌 DVD였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DVD를 보려 하니, 컴퓨터마저 말썽입니다. 음성이 나오질 않습니다. 컴퓨터도 말썽이고 몸도 피곤하다 보니, 감상의욕이 생기질 않습니다. 지나가는 투로 빌려온 친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했냐고 물어봤습니다.

에너지정의행동의 홈페이지를 보고 빌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여비용이 상당한 거금입니다. 이 DVD는 ‘뽕’을 뽑도록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이 어디 있다고, 차라리 나에게 고기를 사다주지!’ 라는 생각이 뭉실뭉실 떠오릅니다. 어쨌거나 이 친구는 돈도 잘 못 벌면서 엄청난 거금을 주고 DVD를 대여했답니다. 그의 뜻을 받들어 꿋꿋하게 볼 것을 다짐합니다.

2.

고기를 생각합니다. 친구가 지불한 대여료만큼의 화폐로 교환될 고기를 생각합니다. 고기하면 쇠고기, 쇠고기도 생각합니다. 미국산 쇠고기도 생각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촛불집회 하던 것도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값이 싸기 때문에 가끔 들르는 고기 집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쓸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미국산 쇠고기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제 더 이상 그런 것 따지지 않습니다. 매번 묻기에도 피곤할뿐더러, 대량 사육방식의 문제점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별로 안전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아마도 그 친구가 DVD대여하면서 같이 가져온 듯 싶은 ‘탈핵신문’이 있었습니다. 창간준비호 라는데 일본 현지를 방문해 취재한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방사능과 오염에 지쳐 버린 사람들”입니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제 일본 사람들도 방사능에 신경 쓰는 것에 지쳤는지 점점 방사능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지는 모양입니다. 작업복으로 완전무장한 채 방사능 제거작업을 하는 옆에서 마스크조차 쓰지 않은 중학생들이 지나다니는가 하면, 경고선량 구역 속에서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야외에서 먹고 마시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3.

이주 전쯤, 이번 호를 기획하면서 편집진 몇몇이 녹색당을 준비 중인 하승수 변호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광화문에서 일인시위 중이었는데 “신규원전 중단, 자연에너지가 대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정봉주 전의원의 석방을 촉구하는 일군의 무리들과 또 다른 일인시위자가 있었습니다. 그 일인시위자는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구럼비바위, 붉은발말똥게, 아름다운 바다를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실 아직까지 환경운동 하시는 분들이 이야기하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건 없습니다. 자식이 어떻게 살지 미리 예비해 놓고 낳는 부모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된다면 그 자식의 삶은 얼마나 답답할 까요? 결국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미래세대도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그들이 해결하도록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생명애가 넘치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생명애는 고사하고 인류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붉은발말똥개도 똥개 보듯 합니다. 세상이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것 같은데 바다가 아름다울 리 없습니다. 하지만 원전을 반대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강정 해군기지를 반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위험에,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조차 무시하고 강행되는 국가권력의 횡포에 분개할 뿐입니다.

4.

위험한 곳에 있다고 해서 항상 공포에 떨며 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사태가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연한 위험, 어찌할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해지고 체념하게 됩니다. 자명한 현실로 수용하게 됩니다. 어떤 위험에 대해 일상생활에서 상시적으로 신경 써야 한다면 그 피로도가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급기야 위험에 대한 감각조차 없어지겠지요. 그렇다면 그 위험을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벌어지면 이미 끝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일어나기 이전에 막아야 됩니다.

3.11이후 일 년이 지났습니다. 일본도 변했지만, 이에 반응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움직임들이 생겨났습니다. 3.11에 대한 기억들을 가지고 반핵, 탈핵을 위한 움직임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호는 이러한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3.11의 기억과 녹색정치의 시작>입니다. 이왕이면 녹색정치가 흥해서, 신규원전은 물론이거니와 있던 원전도 폐쇄하여 마음 놓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응답 2개

  1. tibayo85말하길

    그래, 다큐야. 우리 기억,하자!
    오염에 지치지도 않게, 썩어버리지도 않게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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