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공부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홍아야, 글이 자꾸 길어져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교과 공부에 대하여 얘기를 빠뜨릴 수 있겠니. 수업 중에는 선생님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할 수만 있다면 불꽃 튀도록 눈길을 마주쳐라. 그게 선생님에게 에너지를 충전시켜 피로를 이기게 만드는 방법이고, 너 자신에게는 선생님의 마음을 읽어 말로 다 못한 암시들을 수신하는 방법이다. 하버지는 천재라는 것이 별로 믿어지지 않으나 인간의 집중력에는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인정한단다. 수업 중에 배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여 수업 중에 끝낼 수 있도록 한마디도 놓치지 마라. 그러려면 네 지적인 능력을 한데로 모아서 써라.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네 인생의 성패를 갈음한단다.

집중하면서도 언제나 만약에 내가 수업한다면 이렇게 가르칠 거야라고 상상하며 비판적으로 들어라. 선생님이 만약에 수업을 네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더 잘 하셨다면 기회가 닿는 대로 고마움을 표현해라. 만약 성에 차지 않는다면 네가 더 나은 방식들로 너를 가르치면서 배운 내용을 정리해라.

수업을 기본으로 삼고 거기에 너 혼자 예습이나 복습으로 살을 붙여라. 대개는 그날 배운 수업 내용을 복습하기 위해 두세 종류의 문제집을 사서 진도에 맞춰 풀어나가더라. 그날 배운 것은 그날 복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단다. 희미해진 것을 호출하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 힘들므로 짜증이 난다. 나중에는 호출이 안 되며 복습자체가 불가능한 하여 학업 결손 상태가 누적되면 기초학력이 부진하여 수업을 못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 멍청히 앉아 있는 다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알 게 될 게다.

수업을 소홀히 하고 과외로 메우려하는 것은 시간과 돈과 건강을 낭비하는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또 미리 배우려고 학원에는 다니지 말아라. 돈, 시간, 잠 못 자 건강까지 낭비하는 것이 싫다. 더 싫은 것은 어설피 아는 것이 학교 수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주제넘어진다. 주제넘은 것은 고칠 약도 없단다. 또 더 싫은 것은 퍼먹을 줄 모르고 먹여주기만 바라는 공부는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을 언제까지 과외로 살아가겠다는 거냐.

만약에 학업에 결손이 생겼을 때는 결손부분이 메워지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게 된다. 나중에는 결손이 점점 쌓여 기초학력 부진으로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될지 몰라 두 손을 들게 된다. 이럴 때는 개인별 수준별 맞춤형 과외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되기 전에 아빠 엄마에게 반드시 도와달라고 상의해라. 더 고생하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아빠와 엄마의 도움을 요청해라 알겠지.

만약에 네 삶의 범위가 넓고 깊기를 바란다면 학교에서 배우는 어느 교과 하나라도 소홀하지 마라라. 모르는 것을 꺼내어 쓸 수는 없지만 알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 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때가 되면 반드시 쓸모가 있단다. 아니, 배운 것을 다 사용하는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공부해라. 실용적인 쓰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디서 무엇을 경험하고 배우든지 진선미에 대한 너의 경험 가능성을 실현하여 죽는 날까지 너 자신을 완성시키는 거란다. 하버지의 보배는 네가 경험한 진선미의 부산물도 진선미 그 자체도 아니고 진선미로 가득 차있는 바로 너란다.

너는 점수만 잘 나온다면 시험이 끝났으니 시험 공부한 거 다 잊어도 좋다는 태도를 가지면 절대로 안 된다. 몰라서 틀렸고 그래서 점수는 안 나오더라도 기죽지 말고 ‘알면 되잖아!’라고 생각해라. 시험이 끝나고 나서 왜 틀렸는지 반드시 점검하여라. 네가 걱정하는 교과 성적은 마치 모래성을 쌓는 것 같아서 빈자리를 다 채워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듯이 학업 결손은 다 메워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야. 그러나 네게 더 중요한 것은 아는 걸로 얻는 점수가 아니라 ‘알고 있는 너’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선미로 너를 채워 너 자신을 완성해가는 거란다.

어떤 이는 교과 공부에서 필요할 때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다 나올 걸 힘들여 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나도 그렇게 말한다.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다 기억해둘 필요는 없단다. 그러나 어떤 경험이나 지식이든 꼭지말(핵심 개념어)은 언제나 호출할 수 있도록 네게 남아 있어야 돼. 꼭지란 열매가 가지에 매달리도록 연결시키는 부분인데, ‘꼭지말’이란 하나의 경험이나 지식을 이루는 정보들 중에서 가장 추상적 개념어로 그 경험 체계나 지식 체계나 정보 체계의 맨 꼭대기에 자리 잡게 된 그 말을 가리킨다. 그 말은 그 경험이나 지식의 전체를 담아내는 말들 중에서 범주가 가장 작은 단위의 말이지만 더 큰 개념체계나 지식체계 또는 인식체계에 접속해주는 말이야.

이를테면 네가 길을 가다가 민들레꽃을 보았다. 잎은 기다란 곡선이고 끊은 자리에는 하이얀 진액이 나온다. 꽃은 노랗고 홀씨 열매는 바람에 흩어진다. 보도 불럭 사이 아주 작은 틈새만 있어도 밟히며 자랄 수 있어 민중의 생명력을…… . 민들레꽃의 잎이나 꽃, 열매, 생태, 생명력, 비유 대상 등의 하위어들을 묶어서 지식체계나 개념체계에 접속시키는 말 즉 이 경험의 꼭지는 ‘민들레’이다. 너는 ‘민들레’라는 이름의 파일에 네 경험을 검색하기 쉽도록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민들레’ 위로는 꽃이나 식물이나 생물 또는 존재나 우주까지 상위 파일이 들이 있겠지만 네가 길에서 본 그 꽃에 대한 경험을 담는 데는 그들 중에 가장 작은 개념어인 ‘민들레’이다. 아래로는 가장 크고 위로는 가장 작은 이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면 네 경험은 영원히 무의식에 묻혀 버릴 것이며, 그 마저도 자주 호출해주지 않으면 결국 아주 사라지고 만다. 바로 이 연결고리가 될 꼭지말은 따로 저장할 곳이 없으니 언제라도 검색이 가능하도록 네 인식체계 속에 반드시 등록해 두어야 한다는 거다.

그거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그럼 너는 떠올리고 싶은 네 경험과 지식을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니? 만약에 네가 원하는 그 무언가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 경험이나 지식에 꼭지를 만들어 인식체계(또는 지식체계)에 접속시켜 두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니면 접속이 불완전해서 찾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주 호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뉴런이 끊어져 있거나.

그런데 그 꼭지를 만드는 작업이 지식(또는 인식)의 체계화이란다. 경험은 여러 흩어진 정보들 가운데 핵심어가 될 꼭지말을 찾아, 그 말을 정점으로 노트하듯이 검색하기 좋게, 부분들을 제자리에 가져다놓는 거야. 정리하는 거지. 그러면 위계적인 꼭지말들로 체계를 이룬 인식체계 안에서 해당 꼭지말을 클릭하며 저장된 기억을 호출할 수 있다는 거지. 그러므로 검색이 가능해졌을 때 있을 때 비로소 경험했다고 즉 안다고 말할 수 있어. 인터넷 검색이 네 머릿속의 인식체계까지 정리해주지는 못한다. 네가 컴퓨터에서 파일을 만들어 제자리에 저장하듯이 경험을 정리할 때 꼭지말을 중심으로 잘 정리하고 네 인식 체계에 선택지의 하나로 등록해두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야. 쉽게 말하면 꼭지말은 떠올릴 수 있어야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거야.

책을 읽고 생각에 잠겨보는 것 또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꼭지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저장하는 작업이지. 그래야 나중에 네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꺼내 쓸 수 있으니까. 검색은 경험이나 지식의 전체 구조나 체계를 검색하는 추상화 작업이 아니야. 구조나 체계는 네 안에 들어 있고 그 구조나 체계에서 어떤 빈자리를 메워주는 검색은 구체화 작업이기 때문에 언제나 꼭지말의 부분정보나 지식들을 찾아보는 거야. 그러나 그 부분들을 거느린 꼭지말을 찾지 못하면 기억에서나 인터넷에서 검색이 안 된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거야. 그러니까 잊을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꼭지말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야.

지금까지 교과공부를 어떤 맘으로 어떻게 할 건지 얘기했구나. 다만 홍아야. 교과 성적을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라. 비교하고 싶다면 어제의 너와 비교하여 오늘은 몇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는지 너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겨 사랑해라. 제자리걸음을 했어도 내일은 더 잘 해보자고 격려해라. 그리고 가끔은 멈춰 서서 지금 가는 길이 내가 바라는 ‘완성된 내일의 나’를 찾아가는 길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아라.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