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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핵 사고 1주기, 피폭자와 함께 핵 없는 세상으로 – 3월 23~24일 합천에서 세계 피폭자 모이는 비핵평화대회 열려

- 전은옥(합천평화의집 대외협력팀장, 2012합천비핵․평화대회조직위원회 상임집행위원)

지난해 3월 인류는 큰 재난을 맞았다. 방사능은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모든 것을 파괴하였다. 16만 명 이상이 피난 생활을 강제당하고 있고 이미 수많은 노동자와 주민들이 상당량의 방사능에 피폭되었으며,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건강피해 사례가 발생할 것은 명백하다. 후쿠시마현의 18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방사선 관리구역에 해당하는 방사선이 계측되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피해는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알 수가 없다. 방사능 사고는 한 번 일어나면, 완전한 복구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 또 핵과 방사능에 삶이 유린당한 사람들이 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

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무기는 그곳에 있던 일본인은 물론이고, 강제동원과 일본 제국주의

의 식민지 수탈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이국 땅으로 떠나야 했던 식민지 조선인들의 생명도

앗아 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피폭된 70만 명의 전체 피폭자 중 10%인 약 7만 명(추정치)이 당시‘조선인’이었다. 이중 4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생존한 3만 명 중 2만 3천 명 정도가 한반도의 남쪽으로 귀국하였는데,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등록회원 중 절반 또는 3분 2 정도가 경남 합천 출신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 생존해 있는 원폭피폭자는 2680명(2012.1 현재), 2세의 경우 최소 7천 여 명으로 추산된다(국가인권위원회 조사보고서, 2004). 이중 1세도, 2세도 각각 30%정도가 건강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1991). 또 2002년 이미 고인이 된 원폭피해자 2세 고 김형률씨가 설립한 한국원폭2세환우회에는 환자 회원을 포함해, 건강불안을 안고 있는 2세와 3세까지 포함해 약 10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

핵무기 폭발로 인한 열선과 폭풍, 방사능이 인체에 끼치는 파괴력은 어마어마하여 설사와 구토, 탈모, 세포와 유전자의 파괴 및 돌연변이, 내장계통질환과 백혈병, 암, 갑상선질환, 피부병, 켈로이드, 백내장과 혈액질환 등 수십 년에 걸쳐 다양한 건강 피해가 나타났다. 또 가족을 잃고 홀로 남거나, 육체적 고통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던 사람은 충격, 상실감, 공포와 불안, 가난과 무학, 사회적 편견에 따른 차별이나 불이익과도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원폭피해자의 고통과 상처는 다른 가족과 그 자녀 세대에게도 큰 아픔을 남겼다. 2004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국내 피폭자 1·2세를 대상으로 우편설문조사 및 일부 건강검진과 심층면접을 실시한 바에 따르면, 피폭 생존자(1세)는 일반인보다 우울증이 93배, 백혈병이나 골수종과 같은 림프, 조혈계통 암이 70배 등 더 많이 발병하였다고 한다. 또 이들의 자녀인 피폭 2세도 빈혈 88배, 심근경색과 협심증 89배, 우울증 71배, 빈혈 21배, 백혈병 13배, 간암 13배 등 비교집단 일반인보다 다양한 건강 위험을 떠안고 살고 있다. 조사 대상 피폭 2세 중 7.3%인 299명이 이미 사망했고, 과반수가 10세 이전에 사망했으며, 그중 절반은 원인미상의 질병사였다.

2012년 3월 26-27일,「2102 서울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다. 50여 개국과 4개의 국제기구 수장이 참여하는 이 회의는 국제 핵 테러 방지 및 핵시설 방호에 대한 논의를 핵심테마로 하지만, 동시에 원자력의 안전성을 홍보하여 핵 산업 시장의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려는 속셈도 품고 있다. 전세계의 모든 핵을 폐기하자는 내용이 아니라, ‘안전한’ 핵의 사용과 ‘평화로운’ 핵의 사용은 계속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핵시설과 방사성 물질의 안전한 관리 및 각종 테러와 재난, 사고에 잘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진정한 안보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핵의 개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핵과 방사능의 피해를 겪고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으며, 핵과 방사능 피해의 실상과 올바른 정보 공개도 없는 국제적 현실 속에서, 마땅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질병에 개인적으로 맞서 싸워야 했다. 건강 문제뿐 아니라 핵 방사능 피해는 그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 심지어는 후세대의 삶마저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이 위험한 핵물질을‘안전하고 평화롭게 사용하고, 사고만 안 일어나면 된다, 테러만 막으면 된다’는 시각과 정책으로는 핵과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의 실현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오는 3월 23-24일에 국내 원폭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사는 경남 합천에서「2012 합천 비핵·평화대회」가 열린다. 이는 지구촌의 생명과 안전, 평화로운 미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행사로, 국내 원폭피해자와 2,3세 환우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합천평화의집이 주최한다. 또 원폭피해자 1,2세 단체와 탈핵․평화․환경․여성․종교단체 등 약 30개 단체가 참여하여 개최하는 행사다. 이미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아 일본을 포함한 해외에서도 많은 이들이 참가할 예정이며, 해외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핵무기 사용과 실험, 원전 사고 및 방사능 누출로 인한 피폭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비롯하여 히로시마, 나가사키, 냉전시대 미국의 핵실험 희생양이 되었던 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섬, 러시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온 세계의 핵 피해자들이 그 실태를 전하는 세계 핵 피해자 증언대회가 열린다. 또 비핵·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내외 저명인사들의 강연과 토론, 핵 피해의 심각함과 생명과 평화의 절박함을 전하는 영상전과 사진전, 콘서트, 설치미술전, 퍼포먼스와 공연 등이 이틀 내내 펼쳐진다. 지역주민과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다채로운 체험 행사도 준비돼 있고, 원폭피해자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담은 사진전시 및 국내최초의 원폭피해자1,2,3세로 구성된 합창단의 무대도 만날 수 있다.

이 대회가 합천에서 개최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현재 피폭자에 대한 지원과 보상에 있어 국가의 법적 근거와 제도적 복지 지원이 미비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국내 피폭자들이 겪고 있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치유하고 자신감을 부여함과 동시에, 피폭자의 존재와 실태 그리고 세계 시민의 비핵 평화 의지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랜 분단과 냉전, 군사주의 문화 속에서 핵불감증이 심했던 한국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였던 피폭자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다. 소중한 이번 대회가 피폭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하는 국제 연대의 장으로 개최되고, 향후 지속적으로 열릴 수 있다면 좋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이라든가 팔만대장경을 소장한 해인사 또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의 배경이 된 영상 테마파크로만 알려진 합천이 아니라, 피폭자의 삶을 만나고 비핵 평화의 발신지로 새 역사를 쓰게 될 합천으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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