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얼렁뚱땅 월급특집

-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부산행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밀면이나 돼지국밥은 구경도 못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술도 덜깬 채 김밥집에서 순두부찌게를 꾸역꾸역 밀어넣은게 가장 식사다운 식사였다. 과연 요행을 바라던 자의 얄팍한 최후였다. 그 이후로 또 부산에 갔지만 역시 회나 밀면 같은건 없었다. 그래도 바다의 향기나 정감있는 부산 사투리, 영도 크레인 뒤로 펼쳐진 바다의 풍경이라거나 김진숙지도위원의 목소리도 들을수 있어서 꽤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가는 내내 덜컹거리던 의자도, 따닥따닥 불편한 자리도, 처음보는 사람들과 같은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낮선 경험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야학 봉고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활동보조를 하는 용역이고 부산에는 노동자를 탄압하는 용역깡패가 있는데, 봉고차로 이동하는 비슷한 팔자군. 나는 돈도 벌고 연대도 한다내. 같은 참 한심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정작 부산에 가서는 회사 워크샵에 임하는 신입사원의 자세로 성실하게 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 똑같이 성실근면하게 하라면 절대 못한..아니 안한다.

아담에게서 종종 지난 활동보조인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제일 성실하다거나 제일 친절하다 같은 인정은 애초 바라지도 않았다. 언젠가는 그와 헤어져야 할 날이 올테고, 그때도 그는 행복한 시간들을 나 아닌 사람과 보내겟지, 다만, 그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경험해보지 못한 유니크한 경험들을 하면 참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아담은 간혹 ‘활보와 이용자는 한 몸이다’ 같은 얼토당토 않은 헤게모니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런건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 내공도 생겻다. 나도 그를 만나는 동안 달라진것들이 더러 있다. 장난으로라도 ‘ㅂㅅ’ 이라는 욕은 안쓴다거나, 카페나 식당, 극장을 가도 계단이나 턱이 있는지, 장애인접근성은 확보되있는지 무의식적으로 살핀다던지, 휠체어를 탄 사람을 보면 괜히 반갑다던가, 식당에서 지인들과 밥을 먹다가도 활동보조하듯 누군가의 입을 닦아주고 밥을 먹여주려고 하는 나를 발견한다거나, 설사 내가 이용자를 짖궂게 놀릴지라도 다른 사람이 아담을 놀리거나 얕잡아보면 속이 부글부글하고 불편해진다든지 (아담이 때때로 비난받을 행동을 했을 때 다른이보다 내가 먼저 아담에게 잔소리를 해서 다른이가 입도 뻥긋 못하게 했던 적도 두 번인가 있다.) 작은 변화들이 생겻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들이 내 본질의 변화라기 보다는 활동보조라는 일에 내가 적응한 결과라고 보는편이 정확하다.

때때로 아담에게 측은한 눈길을 보내거나, 나를 참 기특하게 보는 시선을 거부한다.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담에게는 충분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고, 내게는 신성한 노동이기도 하다. 너무나 의미있는 일이고 사명감을 느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이 수반되고, 노동의 장소가 정해져 있는것도 아니며, 장소나 일정의 변동도 심한 편이다. 주말이나 이른 아침에도 필요에 따라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오후 10시 이후나 주말에 일한다고 해도 노동법으로 정해진 추가수당이 붙는것도 아니다. (심야나 주말에 꼴랑 1000원의 시급이 더 붙는다.)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간혹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거나 욕망을 유보하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 당사자나 주변인들도 이 일을 하찮게 보는 경우도 많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에게서 지나가는 말로 ‘자기 길 가야지 오래 할 일 못되’ 라는 말을 들은적도 있다. 왜 활동보조는 자기 길이 될 수 없는걸까? 우선 열심히 해도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임금이 문제다. 매우 전문적인 자질이 요구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직률도 매우 높아서 안면을 익힐때쯤 되면 활동보조인이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일의 특성상 협업도 안되고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고민을 나누기도 애매하다. 각자가 일하는 시간이 달라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사석에 이용자랑 같이 나오는건 일이지 친목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마치 데이트에 형제나 자매를 데리고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 역시 자주 고립감을 느낀다. 고립감은 쉽게 자존감 하락으로 나타나고 노동의욕 하락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만둘까 라는 생각을 매일 하다가도 월급날 이후 2주 정도는 가까스로 견딜만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연 나는 직장인이 맞다. 공공연히 장애인 이용자들이 활보끼리 이용자 뒷말하는걸 꺼려한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장애인이기 때문에 욕을 먹어선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직장인들에게 ‘상사 및 동료 흉보기-친목도모’의 효과가 있다. 대통령 욕도 대놓고 하는 세상이다. 나는 장애인들의 의식이 그 정도로 편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활동보조와 이용자를 반목하게 하는 나쁜 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장애 그 자체를 비난의 내용으로 한다거나 개인의 사생활을 문제삼아서는 안되겟지만!

내 직업은 아담이 사회의 주체적 시민으로써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걸 돕는 것이다. 일정을 체크할때는 아담의 매니저 같기도 하고, 옷을 입히거나 식사를 도울때는 엄마가 된 기분이기도 하고, 동행을 할때나 수업을 들을때는 친구같기도 하다. 그 모든 것을 대신하지만 사실 그 아무것도 아니다. 아담을 포함한 장애인들이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에 서툰 경우가 있다. 혹자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주체적인 판단과 책임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장애가 영향을 미칠수는 있지만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능숙하게 자기 인생을 꾸려나가는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혹 활동보조를 하면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 모든 분야에 뛰어나다고 믿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비장애인이라 해서 딱히 세상이 만만하지는 않다. 가령 ‘연애’라든가, ‘엄마를 이해하기’나. ‘자립’이라든가. ‘혁명’ 이라든가, ‘자기가 한일 후회 안하기’ 나, 특히 ‘맞춤법’ 같은거. 누구에게나. 인생은 아마추어다

어쨋거나, 매일매일 아담과 꼬박꼬박 8시간씩 만나면서 애-증이 차곡차곡 쌓였다. 조금 쉬운 말로 쓰자면 미운정이 들었다. 딱 한 대만 쥐어박았으면 좋겟다 싶다가도 내가 없을땐 밥은 잘먹는지, 옷은 잘 갈아입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그의 장애를 영영 이해 못하듯이 그도 나의 노동을 이해 못할 것이다. 나는 아직 장애를 격지 못햇고, 아담은 임금노동이 어렵다. 아담은 북유럽의 복지국가처럼 활동보조가 24시간씩 지원되면 좋을테고, 나는 북유럽의 복지국가처럼 하루 8시간 노동에 안정적인 임금이 보장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동상이몽이다. 아담은 활동보조시간이 대폭 늘어났으면 좋겟고, 나는 활동보조임금이 매년 10프로씩만 상승하면 좋겟다. 희망사항이다. 아담은 내가 주말에도 일했으면 좋겟고 나는 아담이 제발 일정공유를 잘해줘서 당일 일정을 오전에 아는 일이 없었으면 좋겟다. 대략난감이다. 나는 아마 당분간은 이 이상한 밥벌이를 지속할 작정이다. 아니다, 이번달까지만 열심히 하고 다음달엔 확 그만둬야지! 라고 생각만한다. 방금 이번달 월급이 입금됐다는 문자가 왔다. 한 열흘정도는 아담을 업고 다닐수도 있을 것 같다. 취소!!! 한 일주일정도는 가능할 것도 같다.

응답 2개

  1. 말하길

    활보노동자와 장애인이용자의 묘한 관계를 실감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오래동안 활보노동자로서 활보일기 써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 활보일기 | 얼렁뚱땅 월급특집_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No Comments » Click here to canc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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