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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반시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마당. -마당, 텐트를 만나다 <들불> 공연-

- 신지영

* “(하늘을 올려다 보며) 모두의 소리, 들려요 들려요!”

그들과 만나는 시간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치씨에게 받은 꽃, 여기 저기 고친 대본 번역과 노래 악보, 몸짓과 대사와 노랫소리의 잔영, 이것이 지금 내게 있는 전부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암흑 속에서 수많은 손들이 한없이 갈라지고 만나는 텐트-마당이 보이고 또 보인다. 내가 위로받았고 배꼽부터 기뻤던 어떤 시간들이 살아난다. 4월 6~7일 광주에 11~12일 서울 광화문에 나타날 그것은, 이렇게 이미 가슴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태어난 텐트-마당극 <들불>은 아직 형태가 없는 응축된 에너지로 가득차, 오직 당신, 당신들이 찾아와 주길 기다리고 있다. <들불>이 환상이 될지 현실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들불 포스터

들불 포스터

내가 아는 건 도쿄에서 진행된 준비과정, 그것도 대본 번역을 위주로 한 극히 일부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하며 그들이 실어다 준 몸짓과 이야기들 속에서 익히 알던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무명의 존재들을 마치 친구처럼 느끼게 되었다. 끊임없이 번역을 고치도록 했던 이 에너지를 조금이나마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히토츠바 역을 맡은 모리씨는 연극은 “자신을 거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반복한다. <바람의 여단>에서 20년 이상 연기해 온 그녀의 말은 세다. 그러나 이 강함은 부드러우면서도 단순한 삶의 존엄과 연결된다. 알아채지 못했을 뿐, 늘 우리와 함께 해 왔던 것들 말이다. <들불>을 쓴 이케우치 씨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의 ‘자신’이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던 ‘타’인과 함께 있다는 감각을 끌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연습을 지켜보는 이케우치씨

연습을 지켜보는 이케우치씨

텐트와 마당이 만나 무엇이 될까? 조선인이 쓰는 일본어와 일본인이 쓰는 조선어가 만나 무엇이 될까? 말고 몸과 음악이 만나 무엇이 될까? 80년 광주에서 끝까지 싸웠던 무명의 투사들과 원전 노동자들이 만나 무엇이 될까? 60년 전에 죽은 자들과 지금의 우리들이 만나 무엇이 될까?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조선인들과 안중근의 테러를 찬양했던 일본문인이 만나 무엇이 될까?… 아직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그 무엇인가를 열망한다는 이 간절한 에너지, 이질적인 서로를 만나고 있다는 이 감흥만은 선명하다. 만남은 화학작용이다. 이질적인 서로를 변신시켜 저 멀리로 데려다 놓는다. 사랑이 그렇고 혁명이 그러하듯이. 모리식으로 말하면 ‘자신’을 걸고.

* “(마당과 텐트가 동시에) 으악! —도깨비다.”

광주에서 마당극과 탈춤을 해온 <신명>이, 동아시아의 하류를 전전하며 텐트 연극을 해온 <바람의 여단>이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를 보고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으악! 도깨비다. 그런데 너 맘에 든다. 어쩐지 너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쭉 함께였던 것 같아.” 이케우치씨는 이렇게 말한다. 마당극은 관객과의 대화가 기본이고 흥에 겨워 마음껏 퍼져나가요. 소리를 낼 때도 위로 끌어올려서 내고 해학과 익살과 풍자가 주를 이루지요. 장식이나 소도구들을 보면, 그 안에 하층민의 리얼리티가 있으면서도 대놓고 변장이란 걸 드러냅니다. 알레고리적이죠. 반면 텐트는 모노로그가 기본이예요. 소리는 저 밑에서부터 웅장하고 장엄하게 냅니다. 소도구나 장식은 마당극과 마찬가지로 꾸민 것이지만, 리얼리티가 있는 소도구들을 쓰지요. 냄새나는 생선을 정말 그대로 입에 물거나 하는 거죠. 이 두 가지 변장 혹은 이 두가지 리얼리티가 만나면 어떤 것이 될까 궁금합니다. 반대로 보이지만 실상은 통해 있어요. 마당극은 대화 속에 독백이 있다면, 텐트연극은 독백 속에 대화가 있는 식이지요. 완전한 역상인 듯 하지만 실은 완전히 겹쳐져 있어요. 역상인 줄 알았던 텐트와 마당극은 이렇게 수없이 많은 길들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서로 만나서 서로를 변화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당신은 4월 광주에서 혹은 광화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낮고 장엄한 소리와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소리가, 완전한 환상이 완전한 리얼리티와, 대화와 독백이, 두 도깨비가 만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체 연습 장면

전체 연습 장면

<신명>과 <바람의 여단>의 인연은 2005년부터다. 광주항쟁 25주년을 기념하여 <신명>이 <바람의 여단>을 초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 <바람의 여단>은 공식적 초청작품으로 조선땅에 오는 것을 보류한다. 일본이 식민지화했던 조선땅에 더구나 65년 한일 협약을 맺은 지 40년이 되는 해에, 공적 자금을 받아 참여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케우치씨는 말한다. 대신 그들은 비초대 작품으로 <신명>의 공연 옆에 <새로운 천사-달에 가장 가까운 언덕에서> 라는 텐트를 펼친다. ‘달에 가장 가까운 언덕’이란 망월동 묘지를 의미한다. 이후 <바람의 여단>은 2007년에 <신명>을 일본에 초대해 1개월간 마당극 투어를 했고, 그 다음은 함께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겉보기엔 너무 다른 그들을 만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텐트도 마당도 거리에서 태어난 하층의 코뮨이다. 일본에서 텐트란 저항과 노래와 음식이 함께 하는 거리의 코뮨이다. 노숙자 텐트마을이 그렇고, 원전 반대 텐트가 그렇다. 텐트들은 권력의 틈바구니에 새어들어 그 공통의 공간을 활짝 열어 젖힌다. 개성강한 각각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텐트 마을이 되어 이곳과 저곳을 연결시키며 떠돈다. <바람의 여단>도 거리의 빈공간에 텐트를 치듯이 살아가는 장소에 일시적으로 텐트를 만든다. 타이완의 선주민 마을, 중국의 일용노동자 마을, 일본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죽은 이시노마키 등.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거리로 뚜벅뚜벅 걸어가 그곳에 텐트를 치고 강력한 힘으로 그곳의 감각에 링크한 뒤 다시 강력한 힘으로 텐트를 철거하고 이동한다. 회의에서 사쿠라이씨는 텐트연극을 통한 정치와 노동에 대한 개입을 “올해의 신체를 만든다”는 말로 표현했다. <바람의 여단> 속에는 <야전의 달>과 <독화성>이 각각 특이성을 지닌 형태로 함께 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모두 텐트의 일원이면서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극본의 내용을 바꾼다.

마당도 저항과 노래와 음식이 함께하는 저간 거리에서 오랜 시간 향유되어 왔다. 마당도 텐트도 거리에서 펼쳐지는 밥상이자 놀이판이자 정치적 순간이자 접속의 순간이다. 정해진 형태 없이 하층으로 하층으로 내려가 만나, 저 멀리까지 나아가는 강렬한 에너지이다. 특히 <신명>은 1978년 광주 전남대의 탈춤반과 연극반이 합쳐져 만들어졌고, 80년 광주 항쟁 때 문화패로 활동하면서 80년대 문화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늘 열심인 류씨

늘 열심인 류씨

2012년 4월, 츠나미 지진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시노마키시의 슬픔과 후쿠시마 원전 노동자들의 분노를 담고 텐트 연극이 마당극을 만난다. 이케우치씨는 원전 사고라는 인류사적인 범죄행위를 1980년 광주 봉기와 겹쳐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비극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으로서”. 2012년 4월, 나는 이들의 만남, 그리고 이들과의 만남에 부푼 기대를 안고 있다. 1980년의 광주 봉기 때 자신의 몸을 던져 자신이 처음으로 획득한 존엄을 지키고 싶어했던 가난했고 젊었던 이미 죽은 자들이, 피해지의 죽은 것들의 잔해와 후쿠시마의 방사능으로 인한 고통과 만나, 밀양 송전탑에 대항해 분신한 할아버지를 다시 살리고, 그곳을 지키는 할머니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어 탈원전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광주봉기가 ‘한국적 사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2011년 3월 11일의 재난이 ‘일본적 사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의미있는 사건이 되는 것은, 이렇게 하층 깊이 풀 속 깊이 지하 깊이 나 있는 길로 서로 연결될 때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당극과 텐트 연극, 두 도깨비는 이미 만나왔고, 앞으로 만나갈 것이다.

* 이제 나는 “(배를 감싸쥐며) 빼곳파아~”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 해보는 대본 번역이기도 했지만,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구어체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 속어나 광범위하게 등장하는 문학작품들을 번역하는 건 오히려 쉬운 편이었다. 예민해지곤 했던 것은 대본의 내용이 내 속의 조선어 감각을 뒤흔들어 놓을 때였다. 배역은 <신명>과 <바람의 여단>이 함께 맡았는데, 배역 이름이 일본어이면서도 한국어 늬앙스를 갖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름으로서의 ‘우리’와 지시대명사 ‘우리’가 일부러 뒤섞여 표현되어 있곤 했다. 이는 조선어 ‘우리’가 지닌 전체주의적인 늬앙스를 파괴했다. 동시에 “우리”라는 단어가 없어서 “나(私)”에 “복수형 たち”를 붙여 우리(私たち)를 표현하는 일본어에 집단을 사고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한편 일본어와 조선어를 섬세하게 뒤섞어 부르는 방법을 달리 한 부분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길경’은 도라지의 한자어인데, 일본인들이 부를 때는 ‘길경’으로, 조선인이 부를 때에는 ‘도라지’로 씌어져 있었다. 가타가나로 조선어 음이 표시되어 일본 배우에게 발화하도록 하는 경우, 정확한 조선어로 번역해야 할지 조선어가 어색한 일본인의 조선어 말투를 흉내내야 할지 고민이 되곤 했다. 이처럼 <들불> 속에는 조선어도 일본어도 서울말도 광주말도 아닌 듣도 보도 못한 언어들이 마구 나타났다.

밤의 여왕 코꾸와 꿈의 장삿꾼 케무리

밤의 여왕 코꾸와 꿈의 장삿꾼 케무리

번역을 얼추 끝내고 연극 연습에 참여해 배우들의 몸짓과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비로소 어떻게 번역을 해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겨우 감이 잡힌 뒤부터는 멤버들이 연기에 ‘자신을 거는 힘’이 대본을 바꾸곤 했기 때문에 끝없는 수정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케우치씨도 배우들의 신체로 충분히 표현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삭제하곤 했다. 배우들의 연기를 통한 대본 수정 과정은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대본을 신체로 번역해 내면서 대본에 쳐들어 와 내용을 변화시켰고 동시에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만들었다. 그때마다 번역을 고쳐야 했다.

여러번 수정한 연극대본

여러번 수정한 연극대본

<들불> 속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동문서답을 하는 장면들이 나오곤 하지만, 실제 <신명>과 연기를 할 때에도 조선어 부분은 신명 사람들이 조선어로 하고, 일본어 부분은 텐트 사람들이 일본어로 하기 때문에 서로 결코 통할 수 없는 대화로 연극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들이 서로 교감하고 있는 것은 말이나 내용이 아니라 각각이 발화할 때의 에너지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는 내 조선어가 점차 변화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번역한 조선어를 배우들이 발음하면, 그들의 몸짓과 발성과 에너지의 강렬함 때문에 나는 일반적인 조선어 늬앙스를 잊어버릴 듯한 기분이 되곤 했다. 아니, 원래 내가 알던 말보다 그들의 몸과 입을 통해 동시에 발화된 그 말이 더 맘에 쏙 들어온다고 할까? 나는 이제 배가 고플 때마다 “배고파”라는 말 대신 모리씨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배를 감싸쥐고 얼굴을 한껏 찌푸리며 “빼곳파아~”라고 말하는 모리씨를.

열연하는 히토츠바역의 모리씨

열연하는 히토츠바역의 모리씨

번역을 수정하게 한 것은 배우들의 몸짓과 발성만이 아니었다. 대본 속에 나오는 두 개의 노래를 일본인들이 조선어로 부른다는 대담한 방침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노래를 만들어 준 분은 오오쿠마 와타루(大熊ワタル, 클라리넷 연주 등, 작곡)였다. 그도 거리의 음악가였다.

오오쿠마씨의 연주사진

오오쿠마씨의 연주사진

그는 1994년 동료들과 <CICALA-MVTA/시카라무타(홈페이지: http://www.cicala-mvta.com>를 결성해
거리에서 다채로운 활동(서울 공연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FhrVckwP90s)을 펼쳐 왔다. 2011년 4월 10일 코엔지 가난뱅이들의 반란이 주최한 데모에서 빅토르 하라의 <평화에 대한 권리(http://www.youtube.com/watch?v=WMoRygHvSWA>를 연주하여 탈원전 시위에 모인 사람들을 흘러 넘치게 했던 분이다. 그 밴드가 집회 때마다 연주하는 <불굴의 백성http://www.youtube.com/watch?v=jAHJTqz8pjc>은 집회의 소음이나 잡음과 멋지게 어울어져 피를 끓게 하고 우리를 아주 멀리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는 『산야 당하면 갚아줘라(山谷<ヤマ>やられたらやりかえせ)』등의 영화음악을 비롯, <바람의 여단>의 음악을 30년 넘게 담당해 왔다고 했다.

오오쿠마씨의 작업실 풍경

오오쿠마씨의 작업실 풍경

문제는 조선어 음에 적합한 노래를 만드는 것이었다. 오오쿠마씨는 자신이 작곡한 곡이 조선어 음에 맞는지를 와서 확인해 주고, 다른 분들이 연습할 수 있도록 녹음을 하자고 했다. 나는 그저 슬쩍 확인만 해주면 다 함께 노래해서 녹음하는 줄로만 생각하고 별 생각없이 오오쿠마씨의 작업실로 갔다. 그러나 나의 널널한 예상은 빚나갔다. 우선 조선어에 적절하게 음의 개수를 맞추는 일이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내가 한 번역은 음악과 부딪쳐 다시 조정되어야 했고 동시에 조선어에 부딪쳐 음들이 조정되어야 했다. 어떤 부분은 일본어 음절수가 많고 어떤 곳은 조선어 음절수가 많았다. 음절수가 맞더라도 단어가 가진 느낌이나 늬앙스, 인터네이션이 조선어와 일본어가 달라서 음표를 바꾸지 않고서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조선어와 일본어, 그리고 음악과 언어의 관계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음이 언어로 끼어들고 언어가 음에 끼어들어 서로 번역하고 변화시키는 과정을.

더 큰 문제는 내가 이곡을 빠르게 배워 그 자리에서 노래하고 녹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노래 앞에서 두 번 울어본 적이 있다. 한번은 고등학교 음악시험 때 또 한번은 처음으로 간 노래방에서. 너무 부끄럼을 타서 맨 정신으로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줄에 걸려 전문가용 핸드폰을 망가뜨렸다. 더구나 그날엔 음악 소프트 웨어로 녹음과 편집을 해주실 분이 함께 계셨는데 작업실을 비롯 그분들의 사진을 찍는 것도 완전히 잊고 말았다. 그러나 노래했다. 놀랍게도! 여러 사람들을 생각해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해보니까 기쁘고 즐겁고 가슴이 시원해졌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가 누군가를 움직이는 것이구나. 아, 연기를 하는 사람들의 어깨는 참으로 무겁지만, 바로 그 에너지가 연기를 통해 발산될 때 사람들을 강력하게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모리씨의 말이 떠올랐다. “집회에 나갈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연극으로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겨우 텐트 연극의 마음을, 그들이 올해의 신체를 만드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녹음한 노래를 들으며 모두 함께 조선어로 노래하는 연습을 했다. 오오쿠마씨가 수정해 온 악보에 조선어 발음을 일본어로 토를 다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녹음된 내 목소리를 따라 연습했다. 아아,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지만 참았다. 배우들이 연기할 때 그렇게 그들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일 테니까. 치씨는 내 목소리로 들으니까 원전 노동자들의 노래가 마치 프렌치 팝 같이 들린다고 아주 좋아했다. 무시무시한 원전 사고 이야기를 원전 노동자들(남자만)이 부르는 장면인데 프렌치 팝을 만들어 놓았으니… 원전 노동자로 화할 그들이 프렌치 팝을 통해 조금이라도 밝아진다면 좋겠다.

조선어로 노래 연습하는 날의 사쿠리이씨와 오오쿠마씨

조선어로 노래 연습하는 날의 사쿠리이씨와 오오쿠마씨

이처럼 <들불> 대본은 배우들의 몸짓, 육성, 노래, 언어의 차이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질적인 서로를 침투하면서 변화했다. 이질성이 서로의 몸을 침투하고 기존의 언어체계를 교란하고 망가뜨릴 때마다 그 어떤 말도 아닌 말,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말, 허물을 벗고 벗고 벗어 뼈다귀만 남은 말들이 드러났다. 무명의 말들, 조선어도 일본어도 아닌 것들, 음도 말도 아닌 것들, 오직 힘으로서만 존재하는 것들이. 그것은 모리씨의 ‘빼곳파아~’이자, 음에 따라 바뀌었던 조선어의 인터네이션이자, 조선어에 따라 바뀌었던 일본의 리듬과 음표이자, 이주노동자의 한국어이자, ‘고햐구엔’을 ‘코햐구엔’이라고 발음하면 죽임을 당했던 관동 대지진 때의 재일조선인들의 비명이자, 지금도 하층에서 하층으로 끊임없이 흘러들며 중첩되어가는 무명의 존재들이 내지르는 비명이다. 이 불협화음이 서로를 변화시키면서, 당신/당신들의 소리가 자신들에게 찾아와 주길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 그 다음을 “곱다”라고 이을지, “슬프다”라고 이을지?

기대나 소감을 묻자, 게무리역의 오카메씨는 천천히 눈을 반짝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갔다와야 알 것 같아요.” 오카메씨는 텐트 연극을 하지 않을 때에는 연로한 노인분을 돌보는 일을 한다. 그녀는 재조 일본인이었던 할머니가 어린 시절 조선에서 살면서 마당에 묻어두고 꺼내먹던 김치에 낀 살얼음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 준 적이 있다. 재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과 완전히 분리된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김치 만드는 법은 공유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식민자로서 그 시절에 향수를 갖고 기억하는 것의 문제점과 동시에 재조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 있었을지 모르는 어떤 관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케무리의 열연

케무리의 열연

<들불>의 내용은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들불>의 구조 자체가 그러한 정리나 전체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들불> 누구와 만나 연기되고 또 누구에게 보여지는가에 따라 다른 해석과 다른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개의 길과 목소리를 지닌 텍스트다. 더구나 일본, 조선, 서양의 수많은 문학 텍스트와 야사를 포함한 역사, 전설과 신화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마치 그 할머니의 기억처럼, 파편적이다. 이미 100년 전에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야말로 형태 없이 변화하는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모르는 것을 열망하고 있다. 그 열망의 파편들 중에서 몇 가지 단어들만 건져 올려 본다. 당신이 이 숨결과 목소리와 지도들을 다시 주워가길 바라면서.
숨결, 말들, 목소리들. <서장>에서 ‘하나’는 지도를 소년에게 줘 버리고 코꾸우와 계약을 맺는다. 하나가 버려진 목소리들과 갈갈이 찢겨진 말들, 기억과 숨결, 이팝나문 꽃잎을 주워담는다면 그 대신 길을 알려 주겠다는 계약이다. <들불>은 오직 이러한 파편적인 숨결, 말들, 목소리를 따라가며 그 기억들을 지도에 쌓아갈 뿐이다.

의상과 연기를 함께 하는 리에짱

의상과 연기를 함께 하는 리에짱

우리 역을 맡은  瓜啓史

우리 역을 맡은 瓜啓史

쓰레기. 온갖 등장인물들은 쓰레기 더미나 잔해 더미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툭툭 등장한다. 이 세상의 모든 프레카리아트들과 역사 속 무명의 영웅들이 그들이다. 700미터 지하에 갇혀 자치 생활을 해냈던 칠레 광산 광부들, 평화 광장의 전태일, 이주노동자, 재개발의 희생자, 김밥천국 알바, 원전 노동자, 80년 5월 광주에서 끝까지 투쟁하다 죽어간 사람들, 들불 야학, 일용 노동자, 북한 국화인 모란, 일제 말기 인도네시아에 동원 되었지만 인도네시아의 게릴라 독립전쟁에 참여했던 일본인으로 알려졌던 양칠성,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을 칭송했던 이시카와, 무당, 등…. 그들은 강탈당한 꿈에 쉽게 빠져 버리는 ‘루저 호랑이’ ‘루저 영웅들’이다. 그들이 여기저기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모습을 드러내면서 끊임없이 서로 조우하고 우리들과 조우한다. 이것이 하층이 하층과 연결되고 네트워크를 맺어가는 법이다.

잠자리 날개. 손금처럼 펼쳐진 얇은 망 속으로 문 저편이 보인다. 단테가 말했듯이 저쪽 편의 ‘슬픔의 나라로 들어가려면 모든 희망을 버려야 한다/’ 따라서 희망은 그 슬픔의 문 앞에 우수수 떨어져 있다. 하층의 꿈은 강탈당하거나 속임을 당하거나 빼앗기거나 실현되지 못한다. 희망이 늘 절망과 함께 였다는 것을, 하층의 존재들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마치 잠자리 날개의 뒷면이 아스라이 비치듯이 그 절망이 늘 희망과 함께라는 것도 안다.

밤의 여왕 코꾸와 꿈의 장삿꾼 케무리

밤의 여왕 코꾸와 꿈의 장삿꾼 케무리

방사능 저편은 어쩐지 현해탄과 맞닿아 있다. 원전 노동자 청년들은 과거의 야학과 자주 관리 방식을 배우게 되면서 방사능 대처 방법을 익혀간다. 멜트다운을 맞이했던 스리마일 원전 사고 6년 후, 원전의 봉인을 뜯자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수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처럼. 애써 마당에 모인 그 모든 하층의 존재들은 헬리콥터 소리에 다시금 흩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마당을 접지 않겠다고. 자신은 자신의 그림자의 저 반대편으로 달려갈 분이라고. 당신들의 숨결과 목소리가 “들려요, 들려요. 저는 여기에 있어요”라고. 그 뒤로 불빛들이 흔들리면서 끝없이 한없이 펼쳐진다.

이 모든 파편적인 장면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늘 빼앗겨 버리거나 속고 마는 하층의 꿈. 그러나 그 뒤를 ‘곱다’라고 이을지 ‘슬프다’라고 이을지,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 “그림자 끝에 반드시 불이 있다”

<들불>은 아직 모순된 무정형의 에너지로서 존재한다. 목소리와 숨결과 기억은 바뀌었지만 에너지만으로 지속되어 온 하층의 꿈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이 수많은 슬픔과 고통의 기억들은 미래에 대한 수많은 약속과 희망들과 함께이다. 그 희망을 선택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이케우치는 <당신의 마당>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 다음 이야기가 있다면, 먼저 내일 쓰러질 자가 오늘 일어서며, 오늘 약속된 것이 30년 전에 지켜진다는, 세계를 통째로 뒤집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꿈이 연극이라면, 아직 아무도 본 적도 없는, 넓이를 전혀 갖지 않는 ‘마당’에서 연기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연극이 끝난 후, 누구나 모일 수 있는 넓디넓은 ‘마당’이 끝없이 펼쳐지리라고 믿으며.” 내일 쓰러질 자가 오늘 일어설 수 있을까? 절망할 것을 알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오늘 약속된 것이 30년 전에 지켜질 수 있을까? 약속의 기획을 오늘 만들어감으로써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질적인 우리들을 서로 불러 모으는 히토츠바의 꽃잎,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목소리, 꿈을 빼앗겨도 아랑곳 않고 꿈을 점유하는 힘들이다. 이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쳐서 만들어내는 예측할 수 없는 화학 반응이다. 텐트 연극은 이질적인 시공간 이질적인 언어 이질적인 존재들이 웅성거리면서 서로 관계를 맺어 서로를 증폭시키는 에너지 발전소이다. 이것이 만나고 있었지만 만날 수 없을듯 보였던 그들 사이의 길을 내고 지도를 만든다.

전체 연습장면

전체 연습장면

만약 그 마주침의 공간이 광화문이라면 광화문의 촛불은 새로운 것이 될 것이다. 광주라면 광주봉기가 새로운 존재들과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 마당-텐트에 참여한 당신은,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삶은 미래를 향해 그만큼 전진하고 과거는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며 현재는 닫혔던 봉인을 뜯을 것이다. 이케우치는 “端과 端이 공진하는 그런 감각’이라고 말한다. 단(端)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끝이자 시작이다. 그림자 끝에 불이 있음을 믿는 것, 절망과 함께 희망을 갖는 것, 그곳에서 방사능을 180도 회전시켜 사라지게 할 강력 울트라 감성 과학 에너지가 있다. 새로운 에너지란 과학자가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마주친 우리들 가슴 속 화학작용을 통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형태가 없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신비한 불꽃축제에, 아따, 어여, 오시랑께~!

응답 5개

  1. 여이루말하길

    한 두장 써주신다더니.. 역시!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 낙타말하길

      홍보글 하긴 좀 길지? 언급해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ㅎㅎ
      텐트 만드는 것이나 꽃 만드는 것이나, 홍보하랴 숙소 만들랴 모두 고생이 많지?
      사람들이 많이 와 주길, 멋진 시간이 되길!

  2. 달팽이달팽이말하길

    캬~ 도쿄의 연습상황이 눈 앞에 생생하네요! 다들 너무 고생하고 계시다-_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기대기대!

    • 낙타말하길

      유선 맞지?
      여러가지로 바쁘겠지만, 무엇보다 건강하고,
      그리고 모두 즐겁게 준비했으면 좋겠어!!

      멋진 마당이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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