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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배우 시리즈 3 – 코바야시 사토미

- AA


보통 사람들은 영화를 말할 때 감독을 먼저 언급한다. 하지만 TV는 연기자가 중심이다. 요즘은 드라마 분야에도 스타 PD나 작가가 생기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TV 영상물에 관심이 있는 일부고 김수현 작가 정도 되지 않는 이상은 어떠한 드라마를 언급할 때는 배우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국내도 그럴 진데 해외 드라마는 스크롤에 글자로 다가오는 감독이나 작가의 이름보다는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가 먼저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TV드라마 속에서 꾸준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지키고 있는 배우 4인을 차례로 소개하기로 한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연기하는 코바야시 사토미

코바야시 사토미는 영화 <카모메 식당>으로 국내에서 인지도가 살짝 있는 일본배우다. 1965년 생으로 중학교 2학년 때인 1979년, 일본의 <호랑이 선생님> 같은 드라마 <3학년 B반 긴파치 선생>으로 데뷔를 한 그녀는 1982년 <전학생>이라는 영화로 일본 아카데미 신인상을 탄 후 쭉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단아하고 깔끔한 외모는 화려한 여느 여배우들에 비해 평범하다는 인상을 줄지도 모른다. 그것을 증명하듯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큰 부침 없이 잔잔하다. 격정의 시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짐작되는 그녀 특유의 분위기는 그래서 <카모메 식당>과 같이 ‘슬로우 무비’ 혹은 ‘힐링 무비’라 분류되는 작품에 잘 어울린다. 일본영화가 간간히 국내에서 상영되긴 하므로 그녀의 영화는 각종 매체에서 소개글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녀가 출연한 드라마 두 편을 소개하기로 한다.

먼저 소개할 드라마는 니혼TV에서 2003년 방영되었던 <수박>이다. 그녀가 데뷔 25년 만에 처음 TV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각본을 비롯해 작품 자체로 호평을 받았다. 그녀가 연기하는 하야카와 모모코는 35세의 평범한 여성이다. 부모가 깔아준 레일 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걸어온 덕에 서민의 자제(!)로는 꽤 안정적인 직장인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그녀의 인생은 말 그대로 무난하다. 어릴 적 시험 성적이 엉망이여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의 앞에 쌍둥이 자매가 나타나 지구가 곧 멸망할 거니까 다 사라질 거라는 말을 듣고 멍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지만 35세가 된 오늘도 여전히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결국 내일도, 모레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을 것 같고 일상은 반복될 것 같은 하루의 연속이다. 그런데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고 아무런 기대가 되지 않는 내일을 맞이하는 매일을 반복하던 하야카와의 인생에 큰 사건이 일어난다. 직장과 인생에서 가장 친했던, 그리고 유일했던 친구인 직장 동기 바바 마리코가 은행돈 3억 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30억 원이 넘는다)을 횡령하여 도주한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울리기 힘든 20대 여직원들과 떨어져 하야카와와 단 둘이 오붓하게 도시락을 먹고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대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수배 용의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모든 뉴스를 장식한다. 이 드라마가 특별해 지는 것은 바로 여기부터다. 그녀는 배신감에 차 대성통곡을 하지도, 사람 하나 잘못 사귀어 이런 꼴을 당한다고 속상해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평소처럼 엄마와 과자를 먹으며 뉴스를 보다가 화면에 나온 친구의 사진을 ‘오…’하고 바라본다. 어제와 똑같이 출근하고 사람들에게 갖가지 질문을 들어도 별달리 할 말도, 해야 할 말도 없다. 그녀의 오늘은 어제와 똑같다. 평범한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다만 그녀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을 미세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은 가장 친한 친구가 지명수배자가 되었다는 사건이 아니라, 늘 함께였던 그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는 일상적인 존재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누가 정해준 대로, 정해진 대로 살아온 그녀는 달리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방법을 모른다. 그런 하야카와의 앞에 나타난 것이 근방에 있는 하숙집 ‘해피니스 산차’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피니스 산차의 하숙생이 된 그녀에게 새로운 인간 관계가 속속 생겨난다. 하숙집 주인딸인 유카, 27살의 에로만화가 카메야마 키즈나, 대학 교수 사키타니 나츠코 등등. 집과 직장 외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만나고자 했던 의지도 없던 하야카와의 삶은 이들과 같은 집에서 조,석식을 함께 먹으며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바뀐다고 해도 탁! 짠~! 하고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게 아니다. 35년간 살아온 인생을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그리 쉬운 일이 아니므로. 부모와 떨어져 하숙집에서 밥 먹고, 자고, 출근하는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 ‘밥 먹고, 자고, 출근 준비를 하는’ 일상을 지금까지의 인생과 전혀 상관없었던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며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부모와 함께 살며 부모가 하라는 대로 행동했던 때는 알 수 없었던, 알 필요도 없었던 진짜 자기 자신을.

안정된 듯 보이지만 인생을 흔들 사랑도 해본 적 없고, 딱히 해보고 싶은 일도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고 스스로 변하고 싶다는 마음을 조금씩 키우는 하야카와가 일상’에’ 길들여져 일생을 사는 평범한 사람에서 일상’을’ 받아들이며 인생을 채우는 사람으로 서서히 변하는 모습은 담담하고 느릿하지만 슬그머니 마음을 움직인다. 극의 후반, 하야카와는 모두가 그 존재를 잊고 있어 썩어가던 수박을 가져와 해피니스 산차의 앞마당에 묻는다. ‘수박의 무덤’이라는 팻말을 꽂아놓은 그 땅에서는 새싹이 돋는다. 모두에게 잊혀져 썩어가던 수박이 새로운 땅에 묻혀 작은 새싹으로 변해 올라오는 것처럼 하야카와는 부모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고, 누군가에 의해 스펙타클하게 바뀌는 인생보다 보잘 것 없어도 자신의 의지로 일상을 택한다. 이러한 하야카와의 느릿느릿하지만 귀엽고, 웃기지만 공감되는 모습을 코바야시 사토미는 마치 자신의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근 30년간 습관에 의해 모으기만 했던 동전을 쓰기로 결심하지만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하루 종일 저금통을 끌고 다니는 하루. 취해서 직장 유니폼을 버린 후 당황하여 감기에 걸려서 쉬겠다고 직장에 전화를 하면서도 혹시 실수할까 대사를 적어놓고 몇 번이고 연습하는 소심함. 처음 꾀병으로 휴일이 생겼는데 딱히 할 일이 없어 방구석에서 손톱 발톱을 깎고, 2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전혀 지금과 다를 바 없을 거라며 술에 취한 모습은 연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예쁘게 보이려 노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굳이 망가지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게 바로 나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처럼 소소한 행동 하나에도 평범한 사람의 그것이 탑재되어 있다. 그래서 역으로 코바야시 사토미가 연기하는 평범한 사람의 드라마는 감정의 홍수로 일렁이는 다른 티비 드라마들과 다르게 특별해진다.

이 드라마는 매 회 하숙집 주인딸 유카가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평범한 단어로 채우는 담담한 편지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덕에 오늘을 사는 것이 가능한 인생을 이야기하며 보는 사람을 위로한다. 어릴 적 기대했던 지구 멸망 같은 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젊은 날 꿈꾸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이 다르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면 괜찮은 거라고. 외로워하지 말라고. 우리 모두가 그러하니까.
3억엔을 횡령하고 전국을 방랑하며 도망자의 생활을 하던 친구 바바와 하야카와가 드디어 해후를 하게 되었을 때, 바바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또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고 말하자 하야카와는 이렇게 대답한다.

“바바쨩, 언제나 같은 하루이긴 해도 전혀 다른 하루야.”

그러니까, 수박의 무덤에서 돋아난 새싹이 이듬해 커다란 수박 열매를 주렁주렁 탄생시킬지, 아니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언제 지구가 멸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처럼. 다만 중요한 것은 쓰레기통으로 직진할 운명이었던 썩은 수박을 땅에 묻었다는 작은 행동의 변화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를 만들고 품고 키워가는 것은 어제와 같지만 전혀 다른 오늘의 일상이다.

두 번째 소개할 드라마는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을 제목으로 한 이 드라마는 오이시 에이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2006년 니혼TV에서 방송되었으며 필자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일드 베스트 10안에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코바야시 사토미가 맡은 주인공 마유즈미 야스코는 항공사에 근무하는 (또!) 평범한 38세의 여성이다. (또!) 어제와 같은 오늘의 일상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차근히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오늘은 사실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0년 전 오늘,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그녀의 연인과 그녀의 친구, 그리고 승객들을 태운 여객기 동양항공 402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작은 잔해 하나 발견되지 않아 당시 기체가 추락하여 바다로 떨어졌다고 처리된 이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녀는 사고담당이 되어 유족들과 회사의 다리 역할을 했다. 그 후 빠르게, 혹은 느리게 시간이 지나 어느덧 10년째가 되는 오늘 갑자기 그녀의 눈앞에 그 여객기가 멀쩡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그 안에 있던 승무원과 승객들도 멀쩡하다. 다만 그들은 10년 전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이 사고에 대해 유일하게 10년 동안 과학적인 증명을 하려 애썼던 괴짜 교수 카토에 따르면 여객기 자체가 시간의 틈, 마이크로 블랙홀로 우연히 쏙 들어갔다가 10년 뒤 튕겨 나온 것이란다. 10년간 어떻게든 빈 자리에 함몰되지 않으려 살아왔던 유족들도, 그저 비행기 한 번 탔다가 내린 것뿐인데 10년이란 시간이 지나있는 미래에 내린 승무원과 승객들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그런데 카토 교수에 이론에 따르면 더 황망한 것은 딱 10일이 지난 다음엔 다시 그 여객기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다시 마이크로 블랙홀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10년 만의 재회와 10일 후의 예정된 헤어짐. SF를 차용한 이 설정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것은 이런 황당한 일을 맞닥뜨린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공백을 사이에 두고 재회한 사람들은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다. 피아니스트였던 딸의 기념사업회를 운영하던 어머니, 아들의 죽음으로 이혼하고 홈리스가 된 아버지, 부모를 잃고 이제는 자신이 부모가 된 딸, 10년 동안 유족회를 맡았던 형, 개그콤비의 꿈을 포기하고 평범한 주부가 된 친구 등. 주인공 마유즈미 역시 다른 유족들과 마찬가지로 10년 만에 연인과 친구를 만나지만 매순간이 혼란스럽다. 10년 전 자신에게 프로포즈했던 남자친구는 자신보다 팽팽한 피부를 가진 연하남이 되었다. 단짝 친구 역시 마찬가지. 10년 전과 다름없는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그녀 역시 10년 전처럼 대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짧지 않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그들이 없는 인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살았으므로. 결혼을 약속했던 10년 전의 사랑은 이미 추억이고 무엇이든 함께 했던 우정의 빈 자리는 저축, 보험 등으로 채워 넣었다. 그런데 10년의 부재에 대한 혼란을 차근차근 다스리기에 남겨진 시간은 달랑 열흘뿐이다. 열흘 후에는 다시 헤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드라마는 주인공 마유즈미를 비롯해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 각각의 사연을 하나씩 풀어가며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정으로 끌어온 이유를 슬그머니 내보인다. 각각의 회마다 부제가 붙어 있는데 그 부제들은 다음과 같다.

10년 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10년 전 소중했던 친구는 지금도 곁에 있습니까?
10년 전의 꿈을 지금도 꾸고 있습니까?

드라마 속 마유즈미는 생각한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다시 나타난 동양항공 402편이 다시 10년 전의 세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간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걸까.”

드라마 속 인물들이 10년 전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후회하고 슬퍼했던 것의 부차적 원인은, 이별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내일도, 모레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기에 전해야 했던 마음을 미루거나, 사과를 미루거나, 약속을 미루었고 그들과 헤어진 후 그것을 후회하고 슬퍼했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의 우리가 그러하듯. 그래서 극 중 인물들은 현실의 우리에게 묻는다. 예고 없이 헤어진 후 10년이 지나서 만나게 되었고 이번엔 예고의 10일이 주어진 이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가장 소중한 존재의 부재를 일상으로 메우며 버텨온 마유즈미에게 10년 만에 기적처럼 나타난 이들이 다시는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을 일깨워준다. 그녀가 포기했던 사랑, 설레임, 행복, 기적 같은 다양한 단어로 발현되는 희망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인물들은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오히려, 미래를 약속한다. 다시 만나면 이렇게 하겠다고, 다시 만날 땐 이런 모습으로 맞이하겠다고 다짐을 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기적처럼 재회한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예고된 이별의 마지막 순간, 특별한 이별 거행식은 없다. 평범하게 드라이브를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산보를 하며 보내는 시간, 어떤 거짓도 없이 솔직한 모습으로 함께 웃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산한 바람이 잠시 불었다 그치면 그 자리에 그들은 없다. 마치 열흘 동안 그들이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 흔적은 사라진다. 하지만 드라마 속 인물들과, 드라마를 보는 이는 안다.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증거가 아니라 함께 있었던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임을. 과학적 이론에 의해 정확히 10일 후 여객기와 승무원, 승객들은 사라졌지만 남은 사람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전해야할 마음도, 해야 할 일도 미루지 않고 다시 눈앞에 주어진 하루를 자신답게 살아간다. 어딘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 모르는 그들과의 재회를 포기하지 않고 말이다. 기적 같은 열흘이 지난 후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마유즈미를 보여주며 드라마는 조용히 우리의 일상에 속삭인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10년 후에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후회하는 것을 조금 줄이는 것은 지금 당장, 가능하다고.

주인공 마유즈미는 어차피 다시 헤어질 것인데 다시 만나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절망하는 한 유족에게 말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이 아니니까 모든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저는 마지막까지, 적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흔히 드라마에서 ‘난 특별히 가진 것도 없이 구질구질한 인생을 살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아!’ 라고 부르짖는 캔디형 여주인공들의 외모가 심하게 예쁘고, 전혀 삶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서 거짓 같을 때가 있다. 어떠한 자각도, 각성도 없이 무작정 희망이기는 쉽지 않고 격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티비 속 드라마와 인생은 다르니까 말이다. 길가다 부딪히는 사람이 알고 보니 백마 탄 왕자여서 구질구질한 현실에서 나를 구해줄 가능성도 없고, 몇 십년간 몰랐던 특출난 재능이 뿅!하고 생겨나 인생이 확! 바뀌는 경우도 없다. 늘 먹던 밥을 먹고, 언제나 가던 곳에 가며, 항상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쳇바퀴 돌리듯 같은 일을 하여 돈을 번다. 번듯하다거나,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휘황찬란한 인생이 아니어도, 그저 내가 ‘나’로 살아가는 하루가 우리 모두의 인생임을 스스로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평범한 소시민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것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격정적인 연기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모든 평범한 사람의 인생도 그 나름에게는 소중하고 빛나는 대하 드라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 한 치의 모자람이나 넘침 없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연기하는 코바야시 사토시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다. 진짜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 동서고금의 현자들은 말했지만 사실 요즘 세상에서도 그 이론이 적용되는가 의문을 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안도감을 느끼고 위로받는다. 그녀에게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하루가 행복하다고 진심으로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가 조각미녀들보다 몇 배로 풍성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니까.

오늘 소개한 두 드라마에는 코바야시 사토미 외에도 모타이 마사코, 이치카와 자매 등 같은 배우가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얼굴들은 <카모메 식당>이나 <안경>, 등 그녀의 ‘슬로우 무비’에서도 곧잘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면서 자신의 취향을 가지고, 그 취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이 평범한 사람의 행복임을 그녀 스스로 증명하듯, 그녀는 다양한 곳에서 자신과 닮은 취향을 가진 친구들과 만나 그 친구들과 영화를 찍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연기 외에도 그녀는 꾸준히 에세이집을 발표하고 있으며 최근 대학에 입학해 만학도가 되었다. 우리 나이로 올해 마흔 둘. 정말 영화 속에서 연기한 캐릭터처럼 그녀는 실제의 삶에서도 슬로우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는 듯 하다.

덧붙여, 두 드라마에 동시에 등장하는 토모사카 리에라는 여배우가 있다. 예쁘지만 턱이 약간 비뚤어졌다. 92년에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그 얼굴 그대로다. 여자 연예인은 물론이고 이젠 남자 연예인까지 치아미용술을 받아 매 화면마다 새하얗고 고른 치열을 보이는 국내에서 그녀가 데뷔했다면 분명히 오래전에 성형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여 아름다워지는 것을 사회적으로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차단하고 억압하는 것은 확실히 어딘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토모사카 리에를 보면 얼마 전 억척스러운 인상 때문에 캐릭터 확장이 안 되어서 양악수술을 받았다는 모 여배우가 자동적으로 떠올라 안타깝다. 과연 그 여배우는 그래서, 공장에서 찍혀 나온 인형 같은 턱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을까.

응답 2개

  1. 조르바말하길

    코바야시 사토미만큼이나 글쓴 분의 어조도 담담하면서도 아름답네요^^

  2. […] | AA의 일드보기 | 일본 배우 시리즈 3 – 코바야시 사토미_A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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