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이용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1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활동보조를 하면서 이용자와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에 대한 물음은 아마도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갖게 되는 물음일 것 같다. 나 또한 활동보조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드는 의문이다.

활동보조를 하면서, 가장 격하게 느껴졌던 것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선폭력이었다. 비장애인들이 바라보는 얼굴의 표정들은 다양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표정이든 무관하게 폭력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휠체어를 미는 동안에는 그 폭력을 수이 느낄 수 없었으나, 그의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을 때 특별히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승객들과 휠체어에 앉은 이용자의 시선 높이가 비슷하여, 눈이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호기심 어린 눈빛부터 안쓰러운 눈빛까지 이용자에게 미치는 시선은 그 시선이 어떤 종류이든 노골적인 기색을 가지고 있었고, 이용자는 그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였다. 그럴 때는 나는 활동보조인이 아닌 비장애인 남성이 되어 그들에게 똑같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시선을 거두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이용자와 함께 지하철을 탈 때면 꽤나 구린 표정이거나 험악한 표정을 유지했다. 만약 그러한 시선이 일회적이었다면 나의 그 어떤 격렬한 반응은 차라리 신경증이라고 해야 할 것일지도 모른다.

장애인 이용자들은 휠체어 리프트를 사용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휠체어 리프트에서 나오는 노래 자체에 대한 반감부터 해서(종종 장애인들은 ‘즐거운 나의 집’에 있으라는 의미로 그 노래를 받아들인다), 그 리프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시선집중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리프트가 도착할 때 까지 미리 리프트 도착지에 가서 기다리곤 한다. 어떤 휠체어 리프트는 에스컬레이터가 양쪽으로 지나가고 그 가운데를 지나가도록 설치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이용자의 장애인 리프트를 향해 일제히 쏠리게 된다. 리프트 도착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로서는 이 장관을 혼자 구경하는 호사를 누리곤 한다.

언제는 이용자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이용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그 남성에게 “아저씨 뭘 봐요? 신기해요?”라며 시비 투로 물었다. 그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신기해서 보는데, 왜요?”라고 대답 한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일상적 폭력이 가장 극대화되어 느껴지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엘리베이터가 아닌가 한다. 하루는 이용자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한 노인 분께서 이용자에게 “어이구 불쌍해, 저렇게 살아서 뭐해?”라는 말을 한다. 죽으라는 말처럼 들리는 말도, 장애인을 동정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시각에서는 가능한 말들이다. “그럼 죽으라는 말인가요? 할아버지는 기력도 쇠하셔서 지팡이 쓰면서, 그렇게 살아서 뭐하세요?” 이용자와 함께 다니면 나는 종종 노인공경을 모르는 싸가지 없는 남성 젊은이가 되어 광포한 언어폭력을 휘두른다.

장애인들에게는 유사 종교영업직 종사자들과 한방의학을 좀 아신다는 분들이 접근하기도 한다. 그들의 접근이야 어차피 비장애인들도 자주 접하는 영업활동의 일환이겠지만, 그 접근은 대게 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이용자는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데, 그마저도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부담스러워 하였다. 어떤 장애인은 친절한 비장애인 여성이 이것저것 도와주며 지하철 타는 엘리베이터에까지 따라와서 엘리베이터에서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큰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하여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은 바 있었다고 들었다. 꼭 그런 극단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영업 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대화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통상적인 폭력적 시선을 띄기가 일쑤였고, 그것을 기독교 신자인 이용자마저 부담스러워 하고 있었다.

한방의학을 하신다는 분들의 접근은 이와는 또 다르다. 그들의 활동은 불쾌한 신체접촉으로 곧바로 이어졌다. 그들은 이용자의 장애를 잘 주물러주면 낫는 질병으로 보았고, 이용자의 동의 없이도 무작정 이용자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이용자는 낯선 손길에 놀라 근육경직을 보이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근육경직이 오면 오히려 의사소통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고 그는 무방비로 폭력에 노출된다.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 이용자는 어떤 관계이며 어떤 태도로 활동보조에 임해야 할까?

이제 내가 활동보조를 하면서 만난 활동보조인들의 태도를 한번 보았으면 한다. 우선 동건씨 주변부터 보기로 하자. 동건씨가 살고 있는 체험홈에는 활동보조인이 세 명 이었다. 나이를 직접적으로 물어 본 적은 없으나, 대략 50대로 추정되는 A씨와 40대로 추정되는 B씨 그리고 내가 활동보조를 하고 있었다.

A씨는 활동보조를 하기 전에는 병원에서 사무를 보았다고 했다. 퇴직하고 활동보조를 시작한 듯 했다. 그는 종종 이전에 해주었던 이용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가 있었다. 그 이용자는 홀로 외출이 가능했기에 집으로 술을 사오곤 했다고 한다. 술을 많이 먹고 술에 취해 방에 똥을 싸고 벽에 똥을 바르는 등의 난장을 부리는 것이 주사였다고 했다. 그 주사가 거의 매일 이루어져 A씨는 고생을 했다고 했다. A씨는 이용자의 바우처1가 다 떨어져도 자원봉사 식으로 활동보조를 해주기도 했다고 하였다. 이용자의 바우처가 다 떨어져 가는 월말이 되면, 그는 이용자에게 바우처가 다 떨어져 간다고 말하였고, 이용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우처가 다 되면 오지 않을거냐는 질문을 하곤 했단다. 그러면 A씨는 안쓰러운 마음에 바우처가 다 떨어져도 활동보조를 해주겠다 약속했다고 한다.

A씨의 이용자는 결국 알콜중독으로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힘든 활동보조를 잘 해주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또한 그의 활동보조 태도를 보면서 그의 이야기는 진실에 가까우리라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이용자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들어 주었다. 그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이용자와 동건씨와 함께 나들이를 하곤 했었다고 한다. 활동보조인 1인이 두 명의 이용자와 함께 외출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특히나 어떤 목적 없이 나들이 한다는 것은 더욱더 귀찮은 일이다.

그런 그가 허리를 다쳤다.

  1. 현행 활동보조인 제도는 ‘바우처’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나 관할 시·군·구청에서 장애인에게 얼마만큼의 ‘바우처’를 매달 지불한다. 이 바우처는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만, 활동보조인력을 제공받을 때에만 쓸 수 있다. 해당 월에 쓰지 못한 바우처는 자동 소멸된다. 활동보조인은 결제 단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일한 시간 만큼을 이용자의 카드로 결제 한다. 보통 8300원의 바우처가 결제되며, 이 중 최대 25%까지 중개기관이 가져간다. 중개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중개기관이 25%를 다 가져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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