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지가 쓰는 편지

학교에서 누가 널 괴롭힌다면

- 윤석원(전 전교조교사)

그런데 아까부터 혹시나 주변에서 누가 널 괴롭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구나. 누가 너를 찍어놓고 괴롭히려 든다거나 다른 아이가 그렇게 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너는 어찌할 거냐고 묻고 싶다. 이글을 쓰고 있는 2012년은 학교 폭력과 학생 자살이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던 때란다. 그러니 네 때도 그런 일이 없으란 법이 있겠니.

가축이나 동물을 밀집 사육하면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거야. 생물은 일정한 안전거리를 지키려하나 안전거리 안쪽으로 다가오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공격성 즉 폭력성을 띠게 된다는 거야. 감방에 죄수를 밀집시켜 놓으면 폭력이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만드는데 이는 공격적인 위치에 놓인 불안을 제거하려는 거래. 학교나 학원이라는 그 좁은 우리에 그 많은 아이들을 가둬놓았으니 거기에 이러한 자연 현상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지.

거기다가 인간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가치관과 태도가 학교폭력을 더하게 만드는구나. 아이들마저도 나중에 사회에 나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점수나 등수에만 관심을 가지게 돼. 사회에서 어른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 많이 하려하듯이 학교에서도 점수나 등수를 올리려 애쓸 뿐 옆자리 친구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이 없는 거야. 거래하는 사람의 돈이나 옆자리 친구의 성적은 보여도 그 사람은 안 보인다니 이게 제대로 된 세상이겠니. 돈만 보이고 사람이 안 보이니 어른 들이 거래 상대를 골탕 먹이거나 아이들이 반 친구에게 삥을 뜯을 수 있는고 괴롭힐 수도 있다는 거야. 잇속 다투다보니 공감능력이 사라져 버린 거야.

폭력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누구나 쓰고 싶지 않은 거지. 상대가 반항하면 가해자도 위험해질 수 있고, 또 상대가 피해로 괴로워하는 것이 유쾌한 장면도 아니야. 또 사회적 지탄과 제제를 받을 수도 있고. 그런데도 폭력 사용하는 것은 얻으려는 것의 가치가 폭력 사용에 따른 위험이나 불쾌, 수고, 지탄, 제제라는 대가를 치르고도 남는 것이어야 해. 대체 그게 뭘까. 인간이 왜 침략 전쟁을 벌이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어. 전리품 때문이야. 모든 침략전쟁은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그 대가를 넘어서는 전리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야. 그 전리품은 점령지의 모든 생산물과 재화와 영토와 주민이다. 주민은 끌어다가 얼마든지 노예로 부릴 수가 있고 여성들은 노리개로 쓸 수도 있었어. 이것이 고대에서부터 식민지 쟁탈 전쟁까지 변함없는 침략전쟁의 이유지. 오늘날은 노예가 필요해서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전리품이 석유였듯이 무언가 빼앗을 것이 있으니까 전쟁이 일어나.

그렇다면 조직 폭력배들은 무엇을 얻는가. 조직 폭력집단들끼리 폭력 경쟁으로 장악한 지역이나 영역에서 영업권과 조세권과 지배권과 존경 따위를 전리품으로 챙길 수 있지.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마디로 돈이야. 만약에 경쟁에서 승리한 모든 폭력의 전리품이 결국 돈이라면 학교나 반의 폭력에서 경쟁의 승리자의 전리품은 무엇인가. 그것도 돈이란다. 결국에는 삥을 뜯을 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게 돼. 성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폭력으로 인정받고 존재감을 느끼려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힐 수 있어. 그 애들 말대로 장난으로 시작됐을 수는 있다. 그러나 폭력이 명예욕이나 지배욕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쉽게 불로소득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점점 더 많은 삥을 뜯기 위해 더 많은 폭력을 사용하게 될 거야. 그리하여 학교 폭력도 상대를 억눌러 그의 몸이나 소유물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려는 폭력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향하게 돼.

그렇다면 만약에 네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이 너를 괴롭히고 삥까지 요구하면 넌 어떻게 할 거냐. 만약에 그런 일이 생겼다면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하버지가 조언해야겠지. 그러나 지금은 몇 가지 행동의 원칙만을 밝힐 테니 상황에 맞게 이 원칙들을 네가 잘 응용해야 한다.

첫째로, 폭력에 결코 단 한번이라도 굴복하지 말아라. 폭력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복종의 표시로 무릎을 꿇으라든지 눈을 내리 깔라든지 비굴한 짓을 시킨다든지 심부름이나 숙제를 시킨다든지 돈을 달라든지 어떤 요구라도 들어주면 그 한 번의 굴복 다음에 더 비굴한 굴복을 불러들인다. 그 첫 대면에서 아무리 괴롭혀도 굴복하지 않으면 다음에 그들이 폭력으로 얻을 게 없다는 걸 알고 헛수고 하지 않을 거다. 폭력이 이어지면 점점 더 큰 폭력을 감당해야 되므로 폭력의 연결고리로 이어질 것을 맨처음에 끊어야 된다.

둘째로, 대응 폭력을 사용하지 말아라. 폭력을 쓰는 아이들은 대개 폭력 경험이 많고 실제로 격투기 도장에 다니는 아이도 있을 게다. 게다가 폭력을 쓰는 아이는 혼자가 아니라 폭력을 쓰는 다른 아이나 집단과 연결되어 있어 너 혼자의 힘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가 없을 거다. 또 하나 네가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어야지 싸우다가 다친 것은 상대에게 보상 책임을 다 물을 수 없다는 이유도 있다.

셋째로, 눈싸움에서 승리해라. 대응 폭력은 쓰지 말고 인상도 쓰지 말고 눈을 똑바로 떠서 폭력 사용자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말해라. 처음에는 “네가 뭔데 내게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니.” 하다가 “ 내가 네게 이러면 너는 좋겠니.” 하고 “내가 네 죄 값을 반드시 치르게 하겠다.” 얻어맞으면서도 똑바로 보고 말해라. 잘못한 그가 네 눈을 외면하도록 만들어라.

넷째로, 증거를 만들어 보존해라. 폭력을 당했으면 육하원칙에 따라 서술하되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된다. 오래되면 잊어버리니 곧바로 증거를 서술하여 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친구에게 보이지 않게 녹음시키거나 사진을 찍게 하거나 동영상을 찍게 부탁해 두면 더 할 나위 없이 확실한 증거이다. 그리고 상처 난 자리나 부어오른 자리를 즉시 휴대폰 사진으로 남기고 가라앉기 전에 외과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폭행당한 자리라고 밝히고 진단서를 떼어 달래라.

다섯째, 일러바치면 가만 안 둔다고 위협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너는 ‘담임과 교장과 교육청에 그리고 경찰과 검찰에 나의 억울함을 고발하여 반드시 풀겠다’고 대답해라 그래도 안 되면 신문사에 제보하겠다고 경고해라. ‘내 억울함이 풀어질 때까지 나는 나와 너와 싸우겠다. 이는 위협이 아니라 경고이다.’라고 경고해라. 미리 경고해 두면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자기의 잘못도 인정해야 하므로 그의 보복심이 줄어들 것이다. 햇빛과 바람을 쬐면 신선해지지만 덮어놓으면 부패하는 것처럼 악이나 폭력은 덮어놓은 어둠 속에서 더 활개를 친다. 할 수만 있다면 공개된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야하며, 큰소리로 널리 알려야 하며, 으슥한 곳에서 폭력을 당할 때도 위험해질 수 있지만 큰 소리로 “도와줘요!”하고 외쳐야 한다. 위협에 굴복하면 점점 더 큰 폭력에 빠지게 된다.

여섯째로, 그리고 아빠·엄마와 상의해서 고발 범위를 정하고 증거를 가지고 고발을 해라. 고발장을 곧바로 교육청으로 가져가면 학교에서 반발할 수도 있으므로 학교에서 담임과 생활 지도담당과 교장에게 동시에 고발장을 갖다 드려라. 고발장 내용에 언제까지 진상을 밝히고 처벌을 하지 않으면 교육청에 고발하겠다고 경고해두는 것이 좋다. 교육청에 고발장을 접수시킬 때도 처리시한을 정해두고 다음 수순이 검찰 고발과 언론 기사화를 경고해두어야 한다.

일곱째로 네 반에서 다른 누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면 너는 그 아이와 같이 맞거나 피해를 당하더라도 도와주어라. 네 첫마디는 “얘들아 이러지 말자.”로 시작하고 “얘 잘못이 뭐니?”를 거쳐 “그게 맞을 짓이니?”, “맞을 짓이라도 한 번 용서해 주자.” 이렇게 피해자와 한 편이 되어라. 그게 연대하는 삶이다. 이제 폭행이 너를 향할 거다. 그럼 위에서 말한 대로 첫째에서 여섯째가지의 원칙으로 대응하면 된다. 너는 외톨이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피해자, 없는 자, 약한 자, 소수자들의 공감을 불러내 그들과 연대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은 가져야 할 것들을 빼앗겨서 고생하고 있는 모든 자들이다.

홍아야, 이번에도 너무 길어 미안하다. 너의 고등학교 생활이 행복해지길 바라다보니 할말이 많아져 길어진 것을 이해해 주겠니. 내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내 손녀의 고등학교의 생활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