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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나는 왜 풀을 닮지 못할까!

- 김융희

식사나 하자며 친구들이 만났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의 무난한 꺼리로 ‘식사나 하자’란 행사는 우리들 사이에 심심찮게 있는 일이다. 이젠 일자리를 물러나 특별히 챙길 꺼리가 없는, 별 볼일 없이 지내는 화백(화려한 백수)들이 세상사와 일상의 잡담을 하면서 함께 ‘식사나 하는’ 것이다. 그동안 무료를 달래며 지낸 늙은이들의 화제와 입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특히 선거를 앞둔 요즘이라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야깃꺼리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풍성했다.

전혀 엉뚱한 이슈의 돌연 등장으로 화제는 수시로 바뀌면서, 잡담은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주제도 없이 늘어놓은 잡담이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진 것이다. 오늘도 정치 이야기를 비롯한 일상사의 평범한 화제가 신나게 이어지고 있던 중, 엉뚱하게도 돌연 문단의 화제로 바뀌어 비화한다. 문인들의 수상과 등단에 대한 여러 가십들이다. 흥미 본위인 뜬소문의 행태는 본질도 근거도 애매한 그야말로 듣는 입소문이 진실처럼 실감나게 계속된다.

가십이란 것이 내용을 보면, 거의가 칭찬과 같은 긍정적인 화제 보다는, 그야말로 근거가 애매한 ‘카더라’라는 소문의 부정적 비하나 비꼬는 이야기들이 특징이다. 예술인, 문인에 대한 수상이나 등단에 대한 시비는 사회적 화제로 잊을만 하면 불쑥 나타나곤 하는 우리 사회의 최고의 가십꺼리요, 이는 어제 오늘이 아닌 진즉부터의 오랜 고질임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주 당연한 관행처럼 여기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세인의 많은 관심으로 회자되면서, 메스컴을 오르내리며, 때로는 법적 시비로 번지는 후유증도 많이 보아왔다.

그러나 가십은 가십일 뿐이요, 극히 일부의 잘못된 비리일 뿐이다. 이처럼 이런 옳지 않는 가십꺼리를 거론하며 별로 내키지 않는 치부를 들치려니 찜찜하지만, 가십 꺼리가 없는 밝은 사회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나는 거의 30여 년의 오랜동안을 미술계에서 보낸 화랑 경영인이요 말 많은 화단의 현장인이었다. 이런 나도 오늘 초문의 여러 가십들을 흥미있게 듣게 되었다. 예술계의 비리와 시비가 정치 이야기보다 더 활기찬 오늘의 화제요 이슈임을 보면서 새삼 놀랍다. 마치 비리의 온상으로 이해되는 꼴이다.

계속 부정적 열띈 화제가 돌연 엉뚱한 발언으로 나에게 돌아온다. 친구 왈, “나더러 등단을 시도해 보란 권유였다. 나는 머리를 바위가 내려치는 충격이었다. 분명 얼굴이 사색이었을 것이다. 경황중 나를 추수려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행이다. 한참 지난 일로 마음을 정리했음에도 지금도 이 대목에서는 감당 안된 언왕설래의 감정을 보인다. 그 모멸감이나 충격은 쉽게 나에게 추스려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친구의 무심결에 흘린 악의없는 말임을 안다. 그러기에 나를 다독여 지금까지 무난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생을 잘나가는 경영학 교수였고, 소심하고 심중한 성격에 평소 조신의 대인 관리로 남에게 존경 받는 인품의 소유자이다. 그가 나에게 이런 엄청난 충격에 마음 고생을 준 것이다.

개구리에게는 생사에 관계된 짖인줄 모르고 돌맹이질하는 어린이의 개구리놀이도 생각했다. 행동도 심중해야지만, 말은 더욱 조심해야 함을 실감했다. 바람에 먼저 눕고 먼저 일어서는 가장 낮은 자세로 자기를 묵묵히 지키는 풀을 나는 왜 닮지 못할까 안타까워도 했다.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에 겪고 있는 나의 심적 고통을 친구는 아직도 모를 것이다. 그가 모르는 일이요, 나를 말고는 아무도 피해자는 없다. 나역시 생각을 바꾸면 아무러치도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문제로 이렇게 고통하며 지내야하는 것일까? 자존심만 버리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닐 일이다. 나의 자신없는 열등감에서 나온 자존심인 것이다. 개도 외면할 그 자존심 말이다.

내 자존심 때문임을 생각하며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아픈 상처를 감당하면서도, 그동안 나를 지켜준 것은 나의 자존심이었다. 정말 버리거나 갖더라도 깊이 숨겨두고 사용을 자제하면 좋을 자존심을, 함부로 남용해서 결국은 내가 파죽음이 되기도했던 자존심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자존심을 존경한다. 지금까지의 내 자존심은 삶의 험한 고비 고비를 줄곧 나와 함께 했다. 함께 아파하며, 다둑이며,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온 것이 그동안의 내 자존심이 아니었던가!

옛적 한 때는 나도 문단 데뷔를 생각도 했다. 내 능력을 알기에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 길이 있었으면 비리도 불사했을 것이다. 떳떳한 등단은 능력이 안된다는 생각에 외면했고, 가십에서처럼 편의적인 방법엔 힘이 없었음이 정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런 입장은 아니다. 오히려 떳떳하며 자유스러운 지금이 좋아 감사하며 지낸다. 물론 많은 예능계의 유능한 에술인들에게 무한의 존경을 하며 부러워한다. 다만 가십의 많은 화제꺼리처럼 자격 없는 많은 엉터리 사이비들이나, 벼룩의 알보다 작은 재주를 내세우며 거들먹거리는, 그 패거리를 면했다는 안도감에서의 감사함인 것이다.

요즘 주위에 금물로 명함을 새겨 뿌리며 설치는 이들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불행하게도 그런 속물에 한패거리였으면 내가 뭣이 되겠는가. 누구 못 잖는 속물 근성이 넘친 나임을 알기에 더욱 지금의 나를 감사하며 지낸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나의 아픈곳을 내리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 자존심이 함께 하기에 친구도 포용하면서 이렇게 자유를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내 자존심은 내 지킴이요 수호신이다. 그래서 누가 뭐라며 나를 무시해도 나는 너끈히 버틸 수 있다.

내가 좋와하는 권정생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강아지 똥”과 같이
주옥같은 창작동화를 발표하여 아동 문학상을 받았을 때의 선생님 이야기이다.
상을 받으면 기뻐야 할 텐데 벌을 받는 것만큼 괴로웠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문학상이 결정되어 안동까지 먼 길을 여든다섯의 노령으로 상패를 갖고 윤석중 선생님이 찾아오셨을 때 권선생이 하신 말씀이다.
윤석중 선생님께는 죄송스럽지만 기쁘지도 고맙지도 않으니 거절했다는 예기였다.
버릇없는 무례한 짖이라며 윤선생님을 모시고 동행했던 일행들이 화를 많이 냈던 모양이다. 그들이 화를 낸 것도 무리가 아니다. 내 편에서 화가 나 있는데 상대방이 화를 안낼 수 있겠는가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먼길을 일부러 내려오신 노선배님께는 죄송했지만 안 그럴 수 없는 심정을 자세히 설명드렸다고 했다. 그때 했던 이야기이다.

[“아랫마을 살았던 영천댁은 열아홉살 때 혼례를 치루고 첫날밤도 자보지 못한 채 신랑이 죽어버려 처녀과부로 시집살이를 했다. 홀시어머니와 나이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를 자식처럼 키우며 평생을 고통과 눈물속에 살았다. 시동생이 자라 장가보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 하나를 죽은 남편 앞으로 양자를 들여 이제 맏며누리의 임무를 다하게 되었다.
내가 한번은 아랫마을 만주댁에 볼일이 있어 갔더니, 그날 마침 영천댁은 만주댁 뒷방에 숨어서 울고 있었다. 울면서 하는 말이 ”나는 상받을락고 이적제 고상하며 산 게 아니시더. 뱃제 가만 있는 사람 찔벅거려 마음상케 하니껴. 나는 상 긑은 거 안받을라니더“ 하는 것이었다. 동장님과 반장님이 번갈아가며 군청으로 나오라고 독촉을 했지만 끝까지 영천댁은 시상식에 나가지 않았다. 정말이지 영천댁이 살아온 칠십 평생은 그 어떤 상으로도 위로받지 못 할 것이며 오히려 잊고 살았던 지난날의 고통만을 새삼 일깨워준 셈이 된 것이다.
혼례는 친정집에서 치르는데 영천댁의 남편이 그 혼례를 치르고 나서 거기서 죽었으니 신부에게는 그토록 가혹한 운명이 또 어디 있겠는가. 죄인 아닌 죄인으로 형벌처럼 살아온 평생을 열녀상 한 장으로 무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영천댁 할머니에겐 그 상이 도리어 또하나의 형벌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윤석중 선생님께 덧붙여 말씀 드렸다.
우리 아동문학이 과연 어린이를 위해 무었을 했기에 이런 상을 주고 받는가. 차라리
우리 아동문학만이라도 상을 없에자고 했다.“]

지금까지의 [ ]부분은 권정생 산문집 “우리들의 하나님”에 실린 권선생의 직접 쓰신 글이기에 그데로 옮긴 것이다.
영천댁 할머니께서도 별난 분이시었지만, 이런 하나님같은 할머니를 알아보시며, 더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명예와 상금 앞에서 할머니를 멘토삼아 소신과 지조를 지키신 선생님은 정말 위대한 분이시다. 권선생께서 글로 남기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영 자취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로 길이 기어되어야 할 일이다.
어쩔 수 없어 어정쩡 받아 보관해둔 상과 상패가 영천댁의 열녀상만큼이나 형벌이여서
결국 닷새 뒤에 우편으로 되돌려 주고서야 한짐 졌던 짐을 덜어놓은 기분이였다고 했다.

권정생님은 “강아지 똥” “몽실 어니”와 같은 아름다운 많은 창작동화, 소설 “한티재” 시집“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이원수 선생의 전기 “내가 살던 고향은”등, 여러 종류의 많은 저작을 남기셨다. 세상을 가장 올곧게 사신 선생님께서 공적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못미친 하찮고 당연한 표창마저도 결코 아니라며 본심을 지킨 선생님을 생각하면 세상이 자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새삼 정신 차려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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