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만국의 romusha여, 복수하라. <산야, 당하면 복수하라>(1985)

- 꾸냥 (달팽이공방&수유너머 N)

지난겨울, 일본 전체에서 빈민가이기로 유명한 오사카의 가마가사키에 다녀왔다. 네 번째로 다녀온 일본여행 이었는데, 앞선 여행들과는 다른 일본을 경험한 기분이었다. 다른 여행의 기억들과 겹치는 것은 LAWSON, SEVEN ELEVEN 같은 편의점뿐이었다. 가마가사키 내에 있는 휑한 아케이드들과 나이 든 노동자들의 모습은 관광지가 된 인적 뜸한 세트장 같은 인상을 주었다. <산야, 당하면 복수하라>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사마가사키는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까, 라는 것이었다.

산야는 가마가사키와 같이 빈민촌으로 유명한 곳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이러한 곳들을 ‘요세바’ 라 부른다. 산야는 도쿄의 번화가인 아사쿠사에서 2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요세바다. <산야, 당하면 복수하라>는 80년대 산야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기록영화다. 당시의 상황은 노동자와 사측의 관계 뿐 아니라, 야쿠자와 이들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경찰까지 합세해,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노동자들의 연대 또한 강했다. 노동자들이 몰려가 사장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고 호통 치자, 꼼짝 못하고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하는 사장의 모습은 요즘은 볼 수 없는, 관객들을 웃게 한 몇 안 되는 장면이었다.

감독은 영화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쿠자의 칼에 살해당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또한 이 사건은 감독과 함께 작업하고 있던 동료들 에게도 기록을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감독이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 산야에서 열린 추모식과 이를 기억하며 싸워 나갈 것을 다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해주신 이케우치상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처럼 카메라가 흔하지 않은 시절, 자신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찍는다는 것이 감독에게도 노동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이는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산야 지역의 사람들과 충분한 신뢰를 통해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투쟁했음을 알게 해준다. 사활을 걸고 또한 윤리적인 고민을 감당하며 진행된 산야에서의 기록 작업은 한 명의 목숨으로도 부족했던지 결국 영화를 완성시킨 다른 한 명의 감독마저 야쿠자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맞는다. 그러나 영화는 비탄에 젖어있지 않다. 추모식에서 감독의 영정 사진 앞에서 흐느끼는 누군가를 비추던 카메라는 이로부터 점점 멀어지며 다시금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산야, 요세바의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 일제 강점기 대만, 한국, 중국 등지로부터 강제징용당해 탄광에서 일했던 사람의 인터뷰를 담고, 이름이 새겨진 비석 대신 돌덩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들의 묘지를 찾아간다. 멀지 않은 과거에도 80년대의 요세바에서처럼 비참을 일상으로 살다 간 사람들이 있어왔고, 이는 요세바를 거쳐(지금도 요세바는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의 문제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는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의 교과서에 적혀 있는 romusha, ‘노무자’라는 단어를 인장처럼 보여주며 끝이 난다. 노무자는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그 의미는 노동자를 낮추어 부르는 말로 일회용 노동, 노동력을 일컫는다. 어떻게 해서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서 노무자라는 찾아 영화에 넣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마지막 장면이 80년대의 산야를 넘어 과거와 현재, 국경을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는 헐벗은 이들의 삶을 담고 있고, 이들이 연대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마가사키의 아케이드에서 느낀 을씨년스러움이 이 영화를 통해 조금 해명되었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산야의 이 기록들은 80년대의 가마가사키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지금의 가마가사키는, 지금의 우리는 그 시간들을 기억할까, 라는 씁쓸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두 사람의 희생을 거치고 완성된 이 영화다. 망각 되거나 희미해진 기억을 되새길 수 있고, 기억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새로 기억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이 노동자라고 밝힌 한 분이 지금 일본의 노동운동의 현실이 어떠한지를, 쉽사리 연대가 되지 않는 한국의 이야기를 덧붙여 질문했다. 일본 역시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당시 산야의 모습을 보았고, 그것은 우리 기억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공통된 기억들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어느 날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그 기억들이 동력이 되어 봇물처럼 쏟아지는 날이 있을 것이다. 다시금 복수의 기도를 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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