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아담의 고상한 스쿨라이프

-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아담의 일상은 대략 이러하다. 수, 목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종로에 있는 장애인 야학에 다닌다. 장애인야학에서는 수요일에는 인문학 강좌를 하고 목요일에는 특별활동이 있는데, 작년에는 인문학강좌와 특별활동도 하던것 같더니 작년말부터는 별 흥미가 없는지 그만두었다. 아담을 처음 만났을때, 그가 노신의 책이라든가, 맑스의 자본론등을 인문학강좌에서 세미나를 통해 같이 읽었다길래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의 게으름을 자책도 햇었다. 나는 아담이 인문학강좌를 들을때마다 옆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간식같은걸 먹여준다든가 하는일이 전부였는데, 아담은 작은눈을 껌벅껌벅하다가 이내 잠들곤 햇다. 나는 그가 말이 어눌하든 말든 대화나 토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좋겟다 싶었지만, 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며 잠자코 있었다. 인문학강좌는 계속 진행되고 나는 마치 민방위훈련을 받으러 온 예비역처럼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꾸준히 인문학강좌에 참석햇는데,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무엇을 하는게 더 효율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아니겟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담은 눈을 꿈벅거리며 느리고 진중한 톤으로 어떤 의리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약속한것이고 무엇이든 경험을 가지고 배우는게 좋은것 아니겟냐고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렷다.

야학에서는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읽고 쓰기나 간단한 셈부터, 국영수과 같은 과목의 기초적인 수업을 진행한다. 물론 전문적인 강사가 아닌 자원봉사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수업이다. 야학에서는 장애인들이 검정고시를 통해 학력인정을 받는 과정도 돕고 있기 때문에 꽤 밀도있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담을 처음 만났을때는 고졸검정고시를 얼마 앞둔 때였다. 그는 시험을 앞두고 기출문제들을 풀어보고 있었는데, 꽤 열심이었다. 그는 종종 내가 이 시험에 합격해서 무슨 도움이 되겟어? 라고 말하고는 이내 바보처럼 웃었는데 그 말을 듣는건 어쩐지 기운빠지는 경험이었다. 아무튼, 그는 고졸검정고시 기출문제들의 답을 외우고 있었다. 왜 단순히 답만 암기하냐고 되물었더니 시험이 얼마 안남았는데 일단 답이라도 외워서 1점이라도 올리려는 전략이라고 답했다. 아담은 영어와 수학이 싫다고 했다. 이유는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담의 전략은 영어와 수학을 제외한 과목에서 점수를 많이 올려1 합격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렷다.

야학에서는 국어,영어,수학,과학,국사,사회 등의 과목을 가르쳤는데 단순히 해당지식을 전수하는게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가 한 사회의 주체로써 서는데 부족함이 없는데 중점을 두는듯 햇다. 특히 사회시간에는 성평등수업을 진행했는데, 아담은 이미 다 아는 내용이고 딱히 재미가 없다고 말햇다. 그렇지만 그는 종종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것과 아는대로 산다는것이 얼마나 큰 괴리감이 있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성평등 수업은 대단히 흥미로웠는데, 장애인 대부분이 삼십대 이상의 성인이었고, 그들은 무엇을 안다는 근거로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다는 표현을 썻다. 여성 장애인의 경우 성담론 자체를 거부하는 경향이 많았고 남성 장애인의 경우는 진보적인 마초와 그렇지 않은 마초로 나뉘었다. 그들은 장애때문에 이성을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불균등하기 때문에 성매매를 통해 자신의 성에 대한 권리를 충족해도 된다는 논리를 폇다. 나는 다만 아담이 양 팔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 자신의 욕망을 해결할까 궁금햇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담은 수업에는 충실히 참석하는 편이었다. 물론 수업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햇냐고 물어본다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야학에 가면 꼭은 아니더라도 종종 간식거리가 있었고 집에서 무료를 견디는것보다는 나앗으리라고 짐작만 한다. 나는 아담이 야학을 소비하는 지점에 대해 추측만 할뿐 한번도 제대로 물어본적이 없다. 아담은 담배는 전혀 안즐겻고, 도수가 약한 술은 종종 즐겻다. 술을 즐긴다기보다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는 꼭 끼고 싶어햇는데, 나는 딱히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었고, 그는 그것이 어떤 대인관계의 유지나 의리를 지키는 행위로 생각하는듯 햇다. 장애인야학 주변에서 동건씨와 동건씨의 활보인 아비와 어울려 같이 술을 마셧는데 동건씨는 술을 좋아햇고, 시설에서 나와 술을 마신다는 사실 자체에 매우 만족하는듯 햇다. 아비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술을 혼자서 마시는걸 좋아햇으므로 술자리 자체가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동건씨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를 자신의 자유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는듯 햇다. 아담은 술자리에서 맛난 안주를 먹는다는것에 만족감을 얻는듯 햇다. 나는 동건씨의 욕망을 자극해 아담의 욕망을 채워주곤 햇다. 공공연히 어리숙한 동건씨에게 술을 얻어먹었다. 동건씨는 외로운 사람이었고 아담은 배고픈 사람이엇고, 이래저래 고생하는건 동건씨의 활보인 아비엿다. 그는 술자리를 정리하고 만취한 동건씨의 휠체어를 힘겹게 밀며 전철역으로 향하곤 햇는데, 나는 그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거나 간단한 주전부리를 챙겨주곤 햇다.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 술자리는 민방위교육같은 느낌이엇다.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술잔을 채워주거나 비워주거나 안주를 아담의 입에 밀어주는 일만 반복될뿐, 아름다운 이야기도, 아름다운 사람도, 한병에 7000원 미만의 훌륭한 칠레산 와인도 없는 시간이었다. 다만 동종업게 종사자인 아비와 마주앉아 있을수 있어서 좋았다. 공히 우리 둘에게는 노동의 시간이긴 햇으나, 아쉬운대로 직장동료와 그나마 편하게 대화할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 동건씨는 태희씨와 연애중이었는데, 동건씨는 연애 자체에 대해 나와 아비 그리고 아담에게 자랑하고 싶은 눈치였고,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것만으로 술을 얻어마실수 있었다. 나는 동건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만 끄덕이며 딴 생각을 햇고, 아담은 듣지도 않았으며, 아비는 무슨 생각을 햇는지 모를일이다. 맞다. 이것은 동건씨를 착취한 것이다. 그 이후로 동건씨의 실연과 몇가지 일로 술자리는 종종 있었다.

아담은 야학수업이 없는 날은 인권단체의 모임에 간다거나 자신이 속한 정당의 술자리에 참석하거나 영화를 보곤 햇다. 아담은 자막을 읽는데 서툴러서 대부분 한국영화를 선호했는데, 집에서는 토렌트 같은걸로 외국영화도 보는듯햇다. 마이너한 취향의 독립영화를 챙겨보거나 남들이 추천해준 외국영화는 꼭 챙겨보곤 햇다. 이런저런 이벤트가 없는 날에는 내가 이벤트를 만들곤 햇다. 가령 집회에 참석한다거나 선전전에 참여하는 그런 일정이었다. 영화를 보든 사회활동을 하든 아담은 밥은 꼭 먹으려고 노력햇고, 식사를 못하면 매우 섭섭해 햇다. 가령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햇는데, 그에게 그런 자리에 참석한다는 으미는 삶의 허기와 위의 허기를 함께 채우는 시간인듯 햇다. 아담은 그런 모임에 낄수있다는 사실과 무엇인가를 같이 먹을수 있다는것에 어떤 의미를 두는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할뿐 그에게 관심을 두거나 일상을 물어보는 이는 딱히 없었다. 나는 늘 그에게 맛난걸 먹여주거나 입을 닦아주거나 하는 단조로운 일들을 하고 있었다. 아담은 구성원으로써는 함께 햇지만 주체로써는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느낌이엇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내 역할은 그를 대신하는게 아니라 그를 돕는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있는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헛헛함이 내게도 느껴지는것 같아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곤 햇다. 아담은 삶의 허기를 식탐으로 승화시키는듯 햇다. 뇌병변 장애인들은 대부분 걸음이 불편한데, 아담의 경우는 손이 불편하고 이동하는데는 비교적 수월해서 다른 장애인들이 격는 불편함은 못 느끼는 편이다. 다른 장애인들이 화장실가는게 번거로워서 식사를 꺼려하는 경향이 많고 체중이 증가하면 활동보조인이나 주변에 미안해서 잘 안챙겨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경제적인 이유나 활동보조의 어려움등 복합적인 이유로 장애인의 밥상은 우여곡절이 많다. 그런면에서 아담의 식탐은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욕망에 충실한 장애인 주체라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아담은 식탐만큼이나 호기심도 많고 자신의 욕망에도 충실한 편이다. 다음 시간에는 아담의 욕망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까 한다.

  1. 고졸 검정고시는 평균 70점이 넘으면 합격이다. []

응답 2개

  1. tibayo85말하길

    외로운 장애인과 배고픈 장애인, 그리고 동종 활보노동자 둘, 이 넷의 술자리 풍경이 뭐랄까 인생의 축소판 같아여. ㅎㅎ

  2. […] 활보일기 | 아담의 고상한 스쿨라이프 _ 라훌라(장애인활동보조인) No Comments » Click here to canc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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