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마당텐트연극 <들불> 공연을 앞두고..

- 박카스(수유너머R)

기억.

2년전 여름, 중국 북경의 피촌에서 텐트연극을 체험하고 왔다. 북경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 재개발이 진행되었고 주민들이 집에서 쫓겨났다. 그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당신들이 처한 문제와 세계 곳곳에서 쫓겨나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텐트라는 장 안에서 연극을 통해 나누었다. 중국, 대만, 일본 등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였다.

체게바라가 새겨진 옷을 입고 조용조용 재봉질을 하던 여배우 오까메상, 공연이 끝나고 술을 마시며 맑스, 벤야민의 이야기를 꺼내며 아이고, 내가 너무 무겁지요? 라고 하며 춤을추던 타마키상, 우리 극단은 너무 남성중심적이라며 말을 꺼내던 젊은 배우. 고등학생 딸과 함께 공연을 함께 준비를 하며, 연극에 대해, 중국의 피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부녀의 모습. ‘지금 이곳은 너무 섞여있어! 몸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구!’ 라고 말하던 청년. 그동안 자신의 일본에서의 정치적 활동을 이야기해주던 친구. 중국 거리에 버려져 있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가방에 담던 규리라는 청년.. 이런 기억들이 내 머리 속에 남아있다.

공연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 투성이었다. 중국어, 일본어를 모르는 나에겐 공연에 대한 내용조차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말과 중국말이 섞인 말을 하는 배우들, 일본의 과거의상을 입고 있던 배우가 목만 나온 중국의 한 병사와 옷을 바꿔입고 춤을 추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다.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는 잘 몰랐지만 나는 ‘이상한 것들이 섞이려고, 섞이고 있다.’ 라는 느낌을 받고왔다.

마당과 텐트 연합연극, 물론 내가 보고 온 텐트연극과 이번 연극의 연출자는 다르지만 이번에는 함께 연극무대를 준비하는 친구로, 또 분석가로 연극을 좀 더 잘 들어보고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당,텐트연합연극 들불공연의 대본을 몇 차례 읽어보았다. 대본을 읽어보고 난 뒤, 연극의 몇몇 장면들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상상으로도 기대되는 장면들이 생겨났다.

기억의 재구성.

‘들불’의 도입부분에는 한 배우가 (자신이 갇혀있다고 말하는) 다른 배우더러 너는 지금 ‘기억의 낙반사고’가 일어났다고 말을 전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려온 지도 속으로 들어가게한다. 그렇게 기억의 낙반사고가 일어난 배우는 스스로 버려져 있는 기억들,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을 불러내게 한다. 배우는 이를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고 표현한다. 배우는 버려진 기억들을 줍고, 줍는다. 들리지 않았던 것을 들어보는 시간.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 노래, 아픔들을 듣고 다른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꺼내고 또 꺼내게 한다. 30년, 60년, 100년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 거꾸로 버려진 기억들을 인간의 목소리로 주워내는 시간. 그 기억들을 꺼낸 채로 다시 지금으로 모이는 배우들. 이 배우들의 모습, 만들어내는 무대는 나에게 무엇을 전해주게 될까? 또 인간의 목소리로 듣는 기억들의 재구성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무엇을 남길까?

언어의 섞임.

공연의 시작 한 배우가 주문을 외우듯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읖는다. 츠치는 흙, 카제는 바람, 미즈는 물, ….(생략) 그리고 이러한 주문은 연극의 중요한 전환을 가져오는 부분 곳곳에 등장한다. 공연에는 조선어사용자배우, 일본어사용자 배우들이 함께 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자신이 평소 사용하던 언어가 아닌 언어를 종종 사용한다.

일본어사용자는 조선어로, 조선어 사용자는 일본어로.. 또 극 중 특정한 부분에서는 일본어사용자배우가 일본말을 하다가 갑자기 조선말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본어사용자배우가 한국말을 하며, 한국어사용자배우가 일본말을 주문을 외우듯 되풀이 하게될때 우리는 묻게 되지않을까? 그가 원래 누구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누구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 말이다. 츠치는 흙, 카제는 바람.. 이렇게 시작되는 주문은 그 순간, 나에게 이상한 불쾌감을 전해주지 않을까? 물론 단순히 배우가 말을 입에 옮겨 말하게 될 때 그 장면은 흥미를 전해주는 장면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극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은 나에게 어떤 호응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한편, 들불 공연에서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시적언어, 개념어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평소에 잘하지 않았던 말들. 내면의 언어들이 배우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다. 무당, 음뿍, 불룩, 우리, 입자 등.. 너무나 우스쾅스럽고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을 배우들의 목소리로 꺼내져나오는 들어보지 못했던 말들은 어떻게 다가와 어떤 효과를 남길까. 나의 기억에는 어떤 언어들이 남게 될지 기대해본다.

연극인가? 거리의 사건인가?

광화문광장에 이틀간 텐트가 세워지고 해체할 것이다. 그 안에서 배우들은 몸과 입으로, 마음 속에서 떠내보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흘려보낼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 말들은 공연을 본 사람에게 옮겨붙을 것이다. 그 버려진 기억들이 하나하나 광장의 텐트에서 배우들의 몸과 입을 통해 떠오른다. 이어 텐트는 마당으로 전환되며 굿이 펼쳐지기도 할 것이다. 넓혀진 마당에서 또 마당극의 배우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무엇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 안에서 언어와 기억이 춤과 함께 뒤섞이는 사건이 일어난다. 연극인가? 습격인가? 흩뿌려지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작가의 의도처럼 연극은 기억의 낙반사고를 일으켜 유령들을 불러낼 수 있을까. 대본은 대본이고, 연극은 연극일 것이다. 또 사건은 사건일 것이다.
4.11/12 이 날에 나는 기억을 모으고 흩뿌리는 일과 함께 하고자한다. 보고 들으려는 마음을 열고 하나의 또 하나의 사건을 맞이하러 텐트에 들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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