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최선을 선택하려는 의지

- 백납(수유너머R)

선거가 다가왔습니다. 여기저기서 선거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러 명사들은 투표율이 얼마를 넘으면 뭘 하겠다는 식으로 약속을 합니다. 현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투표로 심판하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살고 있는 지역구에는 후보가 셋이 있습니다. 그들을 알려는 저의 의지 또한 일천했겠지만, 후보들 중 그 누구도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몇 년 전에도 들었던 이야기지만, 또 누군가는 어느 정당에 투표하면 사표가 된다고 합니다. 그럼 결국에는 어쩌라는 말일까요? 우리는 힘 있는 자들을 선택하거나, 그에 대항하는 힘 있는 차악을 선택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니, 투표를 하라는 말 이후에 침묵되어지는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질문에, 대부분의 대답들은 최선을 선택할 수 없으니 차악을 선택하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운동판의 활동가들도 바빠집니다. 그것은 그들이 선거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이 그들의 표심을 잡으려 그들의 운동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거에 비교적 무관심한 활동가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활동하는 주제에 관심을 갖는 정당이 전무하기에 자신의 정치적 의사는 선거로 표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지키고 있는 운동현장이 더더욱 중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의정치 일반을 논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대의정치는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네 현실은 언제나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도록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러한 차악 속에서도 최선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선거로부터 내쳐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투표독려를 위한 ‘개념찬 콘서트’의 주최측에 의해, 서울점령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텐트를 무단철거 당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선거에만 집중하는 언론으로부터 내쳐짐을 당하는 수많은 이슈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쳐지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데 선거보다 못한 것들일까요? 결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운동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중에는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거나, 자칭 아나키스트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정부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아나키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선거를 어떻게 볼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선거 참여 유무는 논쟁거리조차 안 되는 것처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도 합니다. 강정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약골은 투표도 하면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아나키스트는 국가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내 삶은 국가기관 없이도 가능할까 상상해 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은 내 능력의 문제보다 오히려 국가 없이 살아가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선거일을 지나서도 계속되는 삶이 있습니다. 선거일을 지나서도 계속되는 운동들이 있습니다. 정당정치에서 차악을 선택하는 것에 힘을 쏟기보다, 운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최선으로 가꾸는 것에 힘을 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언제나 최선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이렇게 최선을 택하는 사람들 중에서 정치인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을 선택하면서 최선을 선택했다는 만족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투표 독려가 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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