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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강만필

이런 경우, 여러분이라면…

- 김융희

봄기운이 완연해야 할 절기가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벌써 청명도 지나 곡우인데도 마치 번갈라 드나드는 싸우나의 냉온탕처럼 반짝 봄기운이 곧 겨울 날씨로 변화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벌써 농사준비로 장포정리를 서둘 때인데, 아직도 땅은 꽁꽁 얼어있습니다. 날씨 따라 새싹들도 머뭇거리며 주춤거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곳 봄소식을 아직은 미뤄야겠습니다. 날씨 탓인지, 어쩐지 마음도 편칠 않습니다.

마음을 비워 흐르는 강물처럼 일상을 다독거리며 살겠다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외부와의 관계의 중요성 또한 많이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나는 향우회를 비롯한 고향과 관계된 모임이 꽤 많습니다. 별로 관심도 없는 어쩌면 귀찮케 느껴진 불필요한 모임들이 대부분이지만, 불필요하다며 그냥 외면을 할 수 없는 것이 고향인 것 같슴니다. 얽히고 설킨 인연이나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음이 그리 만듭니다.

변덕의 날씨 탓, 과욕과 단절의 생활 탓이, 드디어 외면할 수 없는 고향의 탓까지 끌여드리는, 넉살이 좀 지나치다는 감도 듭니다. 과욕을 버릴려는 나의 마음 관리와, 이웃과의 사귐인 사회생활에 일상을 맞춰 살려는 아주 당연한 생활의 이런 저런 일상들이 노력한 만큼 그렇게 삶의 현장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 속상한 일이 많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고향 후배들이 산행모임을 만들었다며 매월 산행이 있는 날엔 빠짐없이 동행을 권합니다. 한번쯤 동행해야지 하면서도 그냥 지내온 것이 일년도 넘습니다. 매 번 일있는 주일이면 연락이 오곤 합니다. 꼭 변명처럼 그랬습니다. 어느 날, 서울시내 인왕산을 등산하는 날이었습니다. 오전에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점심을 음식점에서 할 예정이라 했습니다. 일행들과 점심은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침 기회가 온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리 당부해 둔 전화는 오후 두 시가 지났는데도 전혀 무소식이었습니다.

거의 세 시가 가까워서야 목소리 대신 문자가 떳습니다. ‘산에서 각자 준비한 것을 식사로 때우고 산행을 마쳐 지금 집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황당했습니다. 부푼 산행길에 전화를 놓칠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그러나 기대리는 나를 생각했으면 좀 읽찍 사정을 알릴 수 있는 일. 그는 한참 후배요 집안 동생이었습니다. 이래 저래 참 버릇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도 이 일은 내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다시 등산을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매 월 한 차례씩 교우들끼리의 제법 년륜도 있는 등산 모임입니다. 대게 하루 일정이지만 제법 먼 거리도 다니며, 산행을 마치면 뒷풀이도 꼭 있습니다. 우리 집 주변엔 등산을 할수 있는 산이 많습니다. 소요산, 고대산, 왕방산, 마차산, 국사봉,.. 그날도 산행 다음의 뒷풀이가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회원들 앞에서 ‘다음 산행은 우리집 부근으로 정해서 뒷풀이를 우리집에서 하자’는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그러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음 산행이 전혀 달랐습니다. 이후 몇 차례의 산행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때의 이야기는 아직도 반응이 없습니다. 물론 이후 나는 산행에 나가지 않습니다. 일언반구가 없음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톨아진 것이죠. 내 뜻을 꼭 따르란 것이 아님니다. 나의 제의에 대한 반응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쩜 그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싶었던 것입니다. 꼭 왕따인가 싶어 불쾌했슴니다. 물론 지금도 모두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의 뒤틀린 마음도 여전 변하질 않습니다.

이번엔 친구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오랜 동안을 가까이 지내온 교우요 석교의 친구입니다. 만나는 기회가 뜸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잡담중 ‘우리 교회가 싫어져 가까운 동네의 다른 교회를 기웃거렸다’는 이야기를 친구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얼떨결 ‘생각을 접으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곧 이어 매우 화난 표정으로 ‘남의 일에 합부로 참견 말라’는 그의 반응이 너무 충격이었고, 무안스러워 나는 얼른 자리를 피했습니다. 평소 이해심과 도량이 있는 친구의 돌연 반응이 매우 섭섭했습니다.

사소한 잡사일 망정,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마음 수용이 여간 힘듭니다. 좁쌀의 소갈 머리도 있겠지만, 그 소갈 딱지가 젊은 때는 아니었을 것도, 차차 나이가 들면서 점점 못되가는 것이 속상합니다. 나이가 들면 성숙된 경험과 요량으로 더 이해하고 포용할 능력이 커져야지, 오히려 참새 소가지요, 본능의 노리개가 되어가고 있음은 서글픈 일입니다.
후배의 버릇없음은 디지털시대의 젊은이 문화의 몰이해요, 등산팀 동료들은 무반응이 아닌 실행하지 못한 체면의 망설임일 것, 친구의 화는 엉뚱한 심기의 실수였음은 이후 의도적 말걸기와 접근에서 느껴진 것이었음을 나는 충분히 압니다. 그런데도 알면서도 못 따른 쇠약해진 의지가 나를 서글프게 합니다. 젊음의 패기가 부러운 이유입니다.

응답 1개

  1. 말하길

    타인에게 진실을 말하기, 나 자신에게 진실하기, 우정어린 진실을 말하기,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젊음의 패기보다 노년의 성숙이 그런 용기를 갖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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