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자기배려의 유령들과 만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앎과 향연의 두 필자, 최진호-강민혁 인터뷰

- 정정훈(수유너머N)

앎의 쾌락, 삶을 바꾸다

정정훈 좀 의례적이기는 하지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최진호 저는 최진호라고 합니다. 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유너머는 12년째 하고 있어요. 수유+너머 초창기부터 참여했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20대 후반부터 수유너머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죠.

강민혁 저는 은행에서 주로 ‘활동’ 하구요…..(웃음) 자본시장 업무부서에서 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수유너머에 처음 접속하게 된 건 2002년도 였어요. 그 당시 하이데거 무료강좌가 있다길래 한번 들어볼까 하고 갔었죠. 3일 연속강좌였던가? 그런데 첫날 가고 다음 날은 술 약속이 있어서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결국 딱 한 번만 강의를 들었죠. 언젠가 다시 공부하러 가야지 했는데 술마시고 놀고 그러다 보니 결국 6년간 못갔었죠. 그러나 2008년 초에 인터넷을 보다가 수유너머에서 권용선 선생님이 벤야민 강좌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현듯 가서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강의가 수유너머에서 공부하게 된 계기였죠.

그때 강좌가 한 10주정도 진행된 거 같았는데, 저는 그 강좌만 듣고 다시 제 주 활동무대(?)인 은행으로 되돌아가려고 했죠.(웃음) 그런데 그 강좌를 듣는 중에 수유너머에서 장편읽기 세미나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저는 그때까지 책을 제대로 읽어 본적이 없었거든요. 대학교 때 운동권 분위기 속에서 사회과학책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좀 읽어 본 정도가 고작이었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정말 제대로 읽어 본적은 없었어요. 일종의 동경은 있었지만 저 한테 어려울 것 같아서 접근을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장편 읽기 세미나에서 읽는 <일리어드>, <오딧세이> 같은 책들은 그나마 저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 세미나에 갔었죠. 그게 잘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장편 세미나의 반장이 박성관 선생님이었는데 초심자를 잘 끌고 가주더군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까 거기서 4,5년을 보냈죠. 지금은 감이당에서 한의학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결국은 공부는 문이랑 감이당 두 군데서 하고 있어요.

최진호 저는 연구실에 되게 쉽게 왔어요. 정선태 선생님의 동아시아 강좌를 들으려고 처음 수유너머에 왔고, 강좌를 듣고 있는데 세미나하자고 누가 그래서 세미나했고, 수유너머 공부방에서 공부하라는 말을 듣고는 ‘그럴까요’ 그러고 앉아서 공부했죠. 수유너머 사람들 보면서 ‘아…저렇게 공부하면서 평생을 살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여기 생활을 시작했죠. 저는 강민혁 선생님과는 전혀 반대네요. 전 사회생활이라는 걸 전혀 해 본적 없이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 삶을 시작한 거죠.

정정훈 강민혁 선생님은 수유너머에 접속한 이후 5년이 흘렀다고 하셨는데 어떤 공부를 해오셨고 지금은 어떤 공부를 하고 계시나요?

강민혁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편읽기는 그리스 고전들, <일리어드>, <오디세이> 이런 거 읽었죠. 그 다음에 불교세미나를 했어요. 원래는 서양철학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좀 어려워 보였어요. 그래서 나름 쉬워 보이는 장편 읽기와 불교 세미나를 했던 거죠. 그리고는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세미나에 들어갔어요. 정말 어려웠죠. 그래도 다 읽기는 했는데……하여간 너무 어려웠어요. 그 이후로는 서양철학 공부를 했죠. 수유너머에서 개최되었던 맑스 원전읽기 강좌들으면서 때 맑스의 주요 원전들을 거의 읽었고 그 후에는 정치경제학 세미나하면서 <자본>이나 관련 책들을 읽었어요.

그리고 니체 전작 읽기 세미나를 최진호 선생과 했어요. 그런데 그 세미나가 저에게 철학공부하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었어요. 철학적 개념들을 붙들고 고투하는 법을 배웠어요. 정말 이해가 안되어서 괴로웠는데도 문장하나 가지고 고민 고민하면서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공부하는 법을 배웠다고 할까요….그리고 나서 들뢰즈를 다시 읽었죠. 그런데 저는 니체를 읽고 보니까 들뢰즈가 조금 이해되더군요. 그리고 니체와 관련된 사람들, 푸코, 데리다 등을 읽어왔어요.

근대 동아시아에서는 루신과 나츠메 소세키를 샅샅이 읽었어요. 수유너머 강학원에서 이들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 이 사람들 정말 좋아해요. 제 생각에는 이들이 오히려 푸코 보다 주체와 앎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던 거 같아요. 주체와 앎의 일치가 당연하던 세계가 찢기던 시기를 살던 시대에 그 문제를 발본적으로 다시 고민하는 힘을 느꼈죠.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면서 연암이나 18세기 동시대 철학자들의 책들도 꽤 읽어온 것 같구요. 작년부터 한의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한의학을 보면서 엄밀한 의미에서 과학은 아니지만 이 지식이 신체에 효과를 발휘하는 어떤 차원을 보게 해준 거 같아요. 그 차원에 대한 공부를 한 20년간은 해보고 싶네요.

최근에는 감이당에서 받은 미션이 어떤 사상가의 평전을 쓰는 건데, 전 레닌을 선택했어요. 그래서 레닌 평전들, 레닌 저작들을 거의다 읽었죠. 레닌 무척 재미있더군요. 그리고 그리스 로마 철학자 세미나 하구 있구요, 곧 수유너머 ‘문’에서 일본어 세미나도 시작할 예정이예요….

정정훈 직장 다니면서 그런 공부를 하는 것이 가능하던가요?

강민혁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죠. 못 따라 가겠더라구요. 그래도 그때는 수유너머에서 공부하는게 너무 좋았어요. 마침이 건강이 안 좋은데다가 공부도 해야 해서 술, 담배도 끊었어요. 원래 제가 수유너머 오기 전까지는 술과 담배를 무척 좋아했어요. 담배는 하루 세 갑을 피웠고, 술은 거의 매일 밤마다 마셨죠.

제가 원래 아침잠이 많은데 책보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났아요. 출퇴근시간을 활용하게 되었죠. 예전에는 술에 쩔어 있으니까 아침에 출근 할 때는 거의 자고 저녁에는 술 마시고 해서 시간이 없었는데, 술 끊고 나니까 아침시간이랑 퇴근 이후 시간에 공부할 수가 있더라구요.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책을 볼 수 있었죠. 예전에는 자기 바빴는데….그런 시간들이 확보하니까 책 볼 시간이 꽤 돼요.

그런데 대신 회사에서 인간관계는 많이 끊기더라구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아쉽지는 않아요. 어느 게 더 중요한지 재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그렇다고 제가 뭐 성인의 경지에 도달했다거나 전혀 인간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예요.(웃음) 왠지 인간관계 잘하고 성과내고 뭐 그래야 된다는 생각이 많이 없어지더군요. 그런 걸로 인한 스트레스는 좀 없어졌어요. 그래서 좀 동료들과 다른 세계에 있는 거 같아요.

서양 고대인들의 자기배려 – 푸코의 눈으로, 또는 푸코 보다 멀리

정정훈 자..이제 위클리 수유너머에 연재하게 되는 <앎과 향연> 코너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최진호 처음에는 우리 제목이 앎과 향연이 아니라 자기배려의 유령들이었어요. 원래 이 연재는 강민혁 선생님과 제가 함께 하고 있는 ‘그리스 로마 사유를 읽는다’ 세미나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어요. 처음에 그리스, 로마 철학을 공부하려니까 너무나도 방대한 거예요. 그래서 ‘일단 푸코의 관점으로 그리스-로마 철학을 한번 보자’하고 시작한 거였죠. <성의 역사> 2,3권이나 <주체의 해석학> 혹은 다른 강의록들 읽으면서 시작했고 거기서 언급되는 원전들을 찾아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배려라는 문제가 들어왔던 거죠.

그런데 그리스 로마 사람들에게는 자기배려가 그 들에게 주어진 사유와 생활의 조건 같더라구요. 푸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고전주의 시대의 사람들에게 표상의 에피스테메가 그랬던 것처럼 로마 사람들에게는 자기배려가 일종의 에피스테메와 같은 거 아니었나 싶은 거죠.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은 누구나 다 자기배려를 염두에 두고 사유를 하고 글을 쓰는 거 같아요. 그런데 이들의 글들을 읽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자기배려의 극단에 갔을 때 자기 배려의 문제를 비틀어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모습들이 우리에게 보였어요. 일종의 유령들이 우리에겐 보인 거죠.

정정훈 가령 그 자기배려의 극단에서 비틀기 내지는 유령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건가?

최진호 가령 <알키비아데스> 같은 경우에는 결국 자기배려의 문제로 나아가는 텍스트인데 끝에 가면 자기 배려의 논의가 저 높은 곳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들, 그래서 존재에 대한 관념이 확 바뀌어버리게 되는 지점들이 보여요. 단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우리도 잘 모르겠지만 이런 지점들을 그리스-로마 철학자들의 글에서 좀 더 면밀하게 탐색하고 그 의미를 포착하는 실험들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이 연재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 들이 보여주는 자기배려의 극단을 따라가면 새로운 어떤 것이 보이지 않을까…..이런 점을 우리가 이번 기획에서 글을 쓰면서 좀 더 체계화해보자는 것이죠.

강민혁 푸코의 자기배려 문제에 대해서 푸코를 읽던 사람들의 독해 방식은 세 가지 정도로 갈리는 것 같아요. 하나는 자기수양론이죠. 그 아무런 주저 없이, 반성 없이 바로 동양의 수양관의 관점에서 자기배려의 문제를 읽어버리는 태도가 하나가 있어요. 또 하나는 맑스주의 입장에서 자기배려를 읽는 거죠. 권력론이나 통치론의 맥락에서 보자면 전통적 좌파의 입장과 접목이 안 될 뿐더라 자기배려라는 문제틀에서 푸코의 자유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는 거지요. 마지막으로 자기배려라는 문제의식에서 삶의 대안이나 정치적 돌파구를 찾으려는 입장도 있는 것 같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읽고 싶지는 않아요. 푸코의 작업을 이끄는 문제의식이 무엇일까라는 질문 속에서 우선은 자기배려라는 주제를 다루고 싶어요. 그래서 푸코를 읽는 것도 좋지만 그리스 로마의 원전들을 읽으면서 푸코의 시선을 생각해 보자는 거죠. 저는 자기배려가 어떤 사유의 대륙과 같아 보여요. 묘한 영원회귀처럼 고대인들이 어떤 일을 하거나 사유를 하거나 행위를 할 때 항상 되돌아가는 지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 거예요.

그리고 이 대륙이 단지 그리스-로마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죠. <주체의 해석>에 보면, 자기배려가 기독교 이후에 잠복되어 있다가 19세기 고전철학에 와서 자기도 모르게 칸트, 헤겔, 맑스의 철학에서 프로이트와 하이데거로까지 이어지진다는 푸코의 논의가 나와요. 그들에 의해서 자기배려의 지반이 다시 살짝 들어났다는 거예요. 저는 정말 그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결국은 자기 배려라는 어떤 대륙이 그리스-로마의 종말과 더불어 사라진 것이 아니죠. 푸코는 자기배려라고 표현했겠지만, 저는 그런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사유의 밑에 지층처럼 계속 존재하는 어떤 것이 있는 것 같다 싶어요. 그걸 밝혀보고 싶구요.

최진호 푸코도 자신의 시대를 벗어날 수 없는 거고 우리도 우리 시대를 벗어날 수 없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시대적 제약 속에서도 최대한 끝까지 가서 그의 사유와 부딪혀 보는 것이 겠죠. 그러니까 푸코가 그리스-로마 사유로부터 발견한 것을 우리가 끌어오기 위해서는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배려를 했는지, 그들이 어떤 한도 속에서 자기배려를 했는지, 그들이 어떤 한계를 대면하고 있었는지, 그러할 때 나타났던 효과들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면 푸코가 왜 권력에 대한 분석 다음에 주체의 문제로 가서 이런 주제들에 천착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우리도 그의 글을 보다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지점을 얻지 않을까 싶구요. 이번 <앎과 향연> 코너에서 그런 지반을 살펴보고 여기서 무엇인가를 발굴해보자 뭐 이런 문제의식이라고 할까요?

강민혁 이 연재의 모태가 되는 ‘그리스-로마의 사유를 읽는다’ 세미나의 시즌3이 곧 시작돼요. 이 연재가 세미나 시즌3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면, 그 즈음 우리의 문제의식이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얼마나 우리의 사고가 정리되고 깊어졌는지를 글쓰기를 통해 점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의 문제의식이 잘못된 것일 수 도 있을 거고, 혹은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적절한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이 글쓰기가 생각을 더 진전시키는 계기들이나 우리 공부들를 정리해주는 마디들을 만들어줄 거라고 기대해요. 그러니까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문제의식의 타당성이나 적합성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겠죠.

최진호 점검이라는 말이 정확한 거 같아요. 자기배려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서 기존에 익숙해져 있던 정치나 철학에 대한 접근도 좀 다르게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강민혁 그래서 원래는 8회 연재계획이지만 쓸 수 있는데 까지 쓰고 싶어요. 우리 문제의식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을때 까지…(웃음)

정정훈 그러니까 ‘자기배려가 우리 삶의 대안이다’ 이렇게 주장할 생각은 없다는 거죠?

강민혁, 최진호 그렇죠.

최진호 우리가 그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하게 말하기가 어려워요. 다만. 우리는 자기배려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우리의 맥락에서 탐구해보고 싶어요. 즉 자기를 형성하고 변형하는 장치들을 발견해보고 싶은 거죠. 그런 장치들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면 푸코가 말하는 자기배려의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나 해요.

‘자기배려의 유령’에서 유령이라는 개념은 데리다에게서 따 온 건데…..우리에게 결론이나 답이 아직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쓰기 작업을 통해서 자기배려라는 유령들을 만나보고 싶었던 거죠. 세미나 할 때도 그렇지만 세미나 할 때 아이디어들이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글쓰기는 또 다르겠죠. 글쓰기를 통해서 새로운 문제나 질문들과 마주치게 되길 바래요. 글쓰기를 통해서 그리스-로마 시대의 자기배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건 불가능하겠죠, 재구성해가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배울 수 있는 게 자기배려의 유령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타이틀로 글을 쓰려면 자기배려도 먼저 규명해야 하고 유령개념도 설명을 해야 하고 이 개념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도 해명해야 하기 때문에 편집자가 좀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급조한 제목이 ‘앎과 향연’이예요. 그런데 또 생각해보니까 이 제목도 우리의 문제의식을 잘 표현해 주더라구요. 우리가 그리스를 읽으면서 보았던 심포지엄(향연)의 모습, 토론도 하고 술도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하는 것을 이 코너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수유너머 문 – 현실의 조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전제 없는 코뮨?

정정훈 마지막으로 수유너머 문 이야기를 해보죠. 문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엇을 지향하나요?

최진호 몇 해전 수유+너머가 분할되었죠. 수유+너머가 커지면서 조직적 체계가 만들어졌어요. 처음 우리가 시작할 때 가지고 있었던 자율적 측면들이 많이 경화가 되었죠. 수유+너머가 분란에 처했을 때, 그리고 그러한 분란을 수습하던 때에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가 않았어요. 그 이후 저는 10년이 넘는 수유너머의 경험들을 좀 되돌아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내가 익숙해있었던 수유너머적 활동방식을 다시 되돌아 보고 재조립해서 활동해야 겠다는 생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수유너무 문은 수유+너머가 해왔던 방식과는 동일하게 운영되지 않을 거 같아요. 문에 오는 사람들도 수유+너머에 오던 사람들과는 좀 다른 사람들이 오는 거 같구요. 수유너머 문이라는 공간이 열리면 이 공간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또 찾아 오겠죠. 그런 만남을 기대하면서 이 공간을 한번 열어 본 거에요. 저도 이 장에서 실험을 해보고 싶은 거죠.

정정훈 수유너머는 어쨌던 코뮨주의라는 어떤 지향을 가지고 있잖아요. 수유너머 문도 콤뮨으로 만들고 싶은가요?

최진호 저는 ‘전제된 코뮨’이란 없는 거 같아요. 대신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현실의 문제는 있죠. 저는 요즘 실제적으로 이 안에 오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린 다른 수유너머처럼 어떤 테제나 방향을 먼저 걸지는 않아요. 그럴 역량도 없고요. 이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고 밥먹고 공간 운영하다 보면 무엇인가가 만들어지겠죠. 그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이 공간을 책임지는 저도 이전과는 많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처음에 공간 마련할 때는 예전처럼 밥을 지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꼭 그게 작동하지 않았거든요. 수유+너머 시절처럼 주방처럼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여기서는 수유+너머 처럼 밥을 먹지는 않더라구요. 여기에는 여기에 필요한 주방의 방식이 필요하죠. 우리에게 필요한 색깔이 만들어져야죠. 결국 여기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가 중요해요.

또 하나는 수유너머 문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떤 이익을 누려야 해요. N에도 R에도 그런 이익이 있겠죠. 문에도 그런 이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만나고 같이 공부하고 밥 먹고 공간 운영하는 활동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라고 할까요?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겠지만 저는 이 공간에서 그런 관계를 구성해내는 것이 그 어떤 투쟁 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어요. 그래서 우리는 일반회원제도를 당분가 두려고 하지 않아요. 이 공간을 통해서 함께 무엇을 할 사람들이 모여서 차라리 조합을 만들고 그 조합이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것으로 해보려고 해요. 자기 활동들을 여기서 만들고 싶은 이들의 조합 형태로 운영하려는 거지요.

정정훈 네. 잘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두 분, 장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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