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나쁜 프레카리아트 선언

- 쿠다

“기계를 멈춰, 열어라 역사를!”
파업, 정치적 총파업은 우리들의 오랜 꿈이자 오래된 습관이다.
습관이 우리의 의도하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계획이 아닌 것처럼, 습관은 우리가 자각하기 전에 우리를 물들게 해버리는 것들이다. ‘습관을 들이다’는 내가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숨쉬는 것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파업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파업은 일사분란하고 치밀한 계획과 신념속에서 조직되는 것의 너머를 응시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1848년 6월, 엥겔스는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이렇게 적었다. “파리 시민들의 삶이 강렬하게 순환하던 그 대로(大路)에서 최초의 회합이 열렸다.” 이후 68혁명을 체험한 프랑스의 좌파지식인 폴 비릴리오는 엥겔스가 포착한 그 점의 의미를 간파했다. “혁명의 분견대는 [공장이라는] 생산의 장소가 아니라 거리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취한다. 인위적인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잠시 멈춘 채 스스로 일종의 동력기(공격기계), 즉 속도의 발생장치가 되는 때에.”
우리의 오래된 습관적인 파업은 ‘아흔아홉번 패배할 지라도 단 한번의 승리’를 위해 버려지는(혹은 벼려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설령 ‘축적’과 ‘훈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미래에 있을 승리를 위해 현재의 파업이 배치된다면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버려진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파업을 행한 것이 아니다. 목적의식적으로 파업을 하고 나서 습관적으로 거리로 나왔던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기계를 멈추고 자본에 타격을 가하는 것에 있었지만, 우리는 매 순간에 숨쉬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듯이, 부랑아들처럼 거리를 배회하지 않았던가.
사실 “청와대로! 여의도로!”하는 목표는 경찰들과 충돌하기 위한 임시방편의 방향에 불과하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우리들이 무리로 존재하기 위한, 거리가 되기 위한 부차적인 슬로건이었다.

“1월 23일의 원산은 바람도 몹시 불거니와 일기도 매우 쌀쌀한데 시가의 골목골목에서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파업노동자 떼와 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순사 떼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자못 험악한 분위기 속에 빠져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돌발할는지 모른다. (동아일보, 1929년 1월 26일자.)

1929년 1월, 이 땅에서 ‘무리’로서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형상화된 원산총파업 역시도 공장 파업너머에 거리를 점유하는 습관이 나타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또 어떠한가. 울산의 조선소에서 군대처럼 두발을 바리깡으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내던 자본가들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했던 것은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잠시 멈춘 채 스스로 거리의 속도를 발생하는 기계”가 된 것이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자본이 뚫어놓은 고속도로를 따라 그들은 그 흐름을 역류했을 뿐이지 서울이 목표는 아니었다. 아니, 그 어떤 급진적 슬로건이 대중의 흐름의 의미를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오래된 습관처럼 행해진 파업의 진정한 습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단순한 반복에 따른 피곤함이 아니라 원초적 감성이 매순간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생동하는 습관, 공장의 파업이 응시하는 것은 바로 ‘거리’이다. 이 거리로서의 파업은 ‘근로대중’이 공장안에서 불안정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을 때,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붙잡아두고 안정적으로 훈육하는 것마저 포기했을 때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비정규직들의 파업은 거리의 파업이다. 그들의 작업장은 텐트이며, 그들이 주장하는 파업의 정당성은 행인의 무리들에게 알려진다. 오래된 꿈으로서 공장점거는 그들에게 공장 정문밖이나 공장굴뚝의 높은 난간만을 내어주며 실현될 뿐이다.
한편 오늘날 불안정한 노동자들, 아니 늘상 불안정한 삶을 지속하는 프레카리아트들의 작업장은 거리이다. 그들의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을 때, 밤새 물대포를 맞고 대낮에 서울광장에서 널부러져 젖은 몸을 말릴 때 그들은 ‘잠시’ 불안정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들은 틈만나면 거리에 나서는 습관을 들였던 것일까? 아니, 그러한 습관이 처음, 단 한번 행해졌고 잠시 불안정하지 않다는 충만함을 느꼈을 때 ‘거리적 삶’이 이미 이전부터 물들었던 습관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는지도 모른다. 한참 일할 나이에, 한참 바쁠 한낮에 서울의 한복판에 널부러져 있는 한 무리들이 TV를 통해 보도되었을 때, 우리 동네 건물주 아저씨들의 공포와 경악의 한탄이야말로 그들이 지금 무엇을 생산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리고 또 다른 거리가 생산된다.
지난 4월 20일은 32번째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날 장애인들이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종로 보신각에 모여들었다. 하루 중 가장 분주한 오후 2시였다. 이들은 행진을 시작하면서 전동휠체어에서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도로 위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신속하게 가르는 자동차들의 속도에 비한다면 차라리 도로에 엉겨붙어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32번째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지 않겠다는 ‘중단’을 선언하며 거리의 속도를 틀어버렸다. 스스로 ‘속도의 발생장치‘가 되어 무릎으로, 팔꿈치로, 배로, 온 몸으로 거리를 점유하며 기만적인 기념의 중단만이 차별과 배제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고자 할 때는 습관적으로 거리로 나선다. 지금에서 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은 스스로 거리의 계급이 되어 우리를 거리로 호출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1984년 어느날, 지체장애 1급인 김순석씨는 서울시장에게 서류를 제출한다. 자신의 유서이기도 했던 그 서류에서 그는 거리에 턱을 낮추어 달라고 했다.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그에게 생의 열망만큼이나 넘을 수 없는 절망을 가져다주었다. 그 후도로 한참이 지난 후 장애인이 스스로 거리의 턱을 낮추는 행동을 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지하철4호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역 안에 설치된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다가 리프트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애인들은 문턱을 넘어서 거리로 이동했고, 지하철의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선로를 점거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어느 날 분주한 출근시간이었다. 그들은 선로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동여맨 채 선로위의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서울시민 여러분, 바쁜 출근시간에 저희가 불편(방해)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생동안 이동의 불편함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얼굴 있는 존재로, 스스로의 신체에 맞는 교통의 흐름을 도시안에 기입해 넣었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신체들과의 공생 혹은 대립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서울시는 2013년까지 저상버스를 50%로 교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결과 이전에 장애인들이 자신의 신체성을 도시적 신체에 기입하는가 여부가 결정적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50%라는 임의적인 숫자는 얼마든지 변경가능하다.
따라서 32번째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들에 의해 거부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보호라는 이름의 배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적극적인 행동선언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거북이들이다. 우리는 두발로 뛰지 않는다. 온 몸으로 기어가는 속도이다. 사회가 그들을 격리하며 던진- ‘우리의 속도를 견뎌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되돌려 주기 위한.

우리가 거리이다! 우리는 아스팔트 위의 나쁜 프레카리아트들이다!
미국의 자전거 대행진, ‘크리티컬 매스’는 약속된 날짜와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점유하는 일종의 공동행동이다. ‘반자동차’ ‘반석유’가 이 운동의 표면적인 슬로건이지만 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이 행동 자체에 있다. “우리는 교통방해가 아니다. 우리가 바로 교통이다!’” We aren’t blocking traffic; we are traffic!
우리는 이제 불편을 드려서 죄송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안정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해 부모님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도시의 미관을 해쳐서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경쟁력있는 상품을 생산하지 못해 국가경쟁력을 약화시켜 국민의 짐덩이가 될 필요도 없다.
착한 시민은 반성하지만, 나쁜 프레카리아트는 자신에 대한 주제넘은 믿음으로 거리를 활보한다.
오늘날 도시의 멈출 줄 모르는 속도는 사건을 발명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는 연쇄충돌이라는 사건을, 토지의 사적 소유와 개발의 속도는 불타는 용산을, 소비되기도 전에 더 빨리 생산되는 상품은 만성적인 경제위기를, 하루가 다르게 세련되어지는 서울은 노숙자들의 밤을 발명해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그 사건의 한가운데서 생성되자마자 방출당한 자신의 존재를 재기입해야한다. ‘당신의 속도가 만들어낸 우리라는 사건을 견뎌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되돌려주며.
도시의 개발은 도시의 철거가 예외가 아니라 일상임을, 따라서 도시적인 삶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 도시민들은 잠재적 철거민들이다. 우리는 말한다; 우리가 도시이다!
생산의 공장은 생산한만큼 늘 산업폐기물이 함께 생산된다. 그리하여 산업폐기물 또한 자본주의의 생산물이다. 산업재해 노동자는 자기 신체의 병듦을 통해 생산을 방해하면서 자신의 신체를 회복-생산한다; 우리가 생산이다!
거리가 깨끗해질 수록 더러운 것들은 소거되는 것이 아니라 감춰진다. 쥐들은 고양이를 피해 지하 하수구로 몰려들지 않는가. 노숙자들은 정착할 줄 모르는 도시민들의 한 특성을 보여준다. 노숙과 노점은 거리의 상근직이다.
파업. 중단하고 방해하는 것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속도를 변화시키고 바꾸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여기에서 기계를 멈추는 파업, 그 너머의 거리를 주목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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