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반시대

랑쩬, 메이데이 총파업에 동참하며

- 수영(랑쩬 활동가)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것만 같았다. ‘티베트 연대단체’ 랑쩬이 왜 ‘총파업’ 행동에 함께하지? 티베트, 그리고 총파업. 내가 봐도 두 단어가 이질적으로 보이긴 한다. 그 사연을 고백하자면 다음과 같다.

‘랑쩬’은 티베트어로 ‘자유’라는 뜻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해 3월, 티베트에서 큰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티베트를 여행했던 사람들,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 그리고 한국에 사는 티베트인들이 광화문에 모여 티베트를 지지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1년 후 그 중 몇몇이 남아 ‘랑쩬’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티베트와 연대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나 반전평화의 여러 이슈에 힘닿는 대로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여기서 조금 다르게 말하면 랑쩬은 사실 한 줌 프레카리아트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랑쩬의 활동가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을 쪼개 랑쩬 활동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특히 불안정 노동의 대표주자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랑쩬과 또 다른 활동들도 한다. 어떤 달은 활동비로, 어떤 달은 아르바이트비로, 어떤 달은 빚으로 생활한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지만 나름 즐거운 순간들도 많다. 사실 운동을 하면서 활동가 자신, 즉 나의 삶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처음 조병훈에게 총파업 행동에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쉽게 동의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이건 그동안 미뤄뒀던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활동가들, 친구들의 상황도 대체로 나와 비슷하다. 다들 세상의 많고 많은 일들을 전전하며 산다. 너무나 즐겁고 보람되어 돈과 상관없이 열심히 하게 되는 일도 있고,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도 있고, 그 중간도 있다. 대체로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이 더 신 나는 일인 건 사실이다. 어느 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고용 상황과 이렇게 다양한 삶이 있는데 한 번 다 같이 만나서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무엇이 가장 문제인지, 무엇이 제일 필요한지 드러내 봤으면 좋겠다.’ 이것이 또 총파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티베트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랑쩬 활동을 하면서 지난 4년 동안 계속 고민해야 했던 문제는 “우리는 왜 티베트와 연대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고민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단순히 그들이 불쌍해서나 돕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야만적인 점령과 탄압에 그저 침묵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한편으론 인권, 자유, 평화와 같은 가치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싶은 운동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티베트의 문제가 비단 티베트의 문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무언가에 밀려 쫓겨나는 세상이다. ‘공산당’의 이름을 건 중국의 요상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티베트인들은 하루하루 설 자리를 잃고 쫓겨나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는 파괴되고, 유목민들은 개발에 밀려 도시의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티베트에서 티베트인들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긴 채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끊임없이 부정해야 하는 소외된 계급이다. 이 땅에서도 그런 일들은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티베트와 팔레스타인, 티베트와 두리반, 티베트와 콜트콜텍, 티베트와 강정마을, 티베트와 나의 삶은 다르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서, 가게에서, 일터에서, 마을에서,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우리는 모두 쫓겨나고만 있다. 권력과 자본의 과도한 욕망으로, 쫓겨나서는 안 될 곳에서 우리는 점점 밀려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쳐버린 이 시스템을 같이 멈춰보자는 제안에 그래서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5월 1일, 메이데이 총파업이 한국 사회가 그리고 전 세계가 지금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는지 보여주는 경고의 행동이 되기를 바라본다. 그날 하루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자리에서 잠깐 비켜서서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총파업에 동참하는 이들의 다양한 의제, 다양한 목소리가 만나 앞으로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해본다. 이러한 마음으로 랑쩬은 그날 거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도 하고 티베트의 이야기도 하면서, 열심히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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