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꼼

‘연명치료 중단’ 앞에 선 가족들 <밍크코트> <피터팬의 공식>

- 황진미

1. <밍크코트>가 말하는 기적의 순간

<밍크코트>는 ‘연명치료중단’이라는 까다로운 주제에 종교와 가족의 문제를 녹여낸 문제작으로, 2011년 서울독립영화제 대상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한 독립영화이다. 주연을 맡은 황정민은 <지구를 지켜라!>에서 신하균을 돕는 곡예사 여성의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로, <밍크코트>에서 억척같은 중년여성 현순의 역할을 맡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현순이 우유배달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어지는 가족모임, 노모의 생일에 모인 가족들의 식사와 대화가 한창이다.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언니와 남동생 내외와는 달리, 현순은 행색이 남루하고, 식탐이 많다. 조카들이 아직 어린데 반해, 현순은 일찍 결혼하여 딸 수진은 벌써 임신 중이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같은 교회에 오랫동안 다니는데 비해, 현순은 혼자 작은 개척교회를 다닌다고 말한다. 노모는 넉넉지 못한 둘째 딸 현순에게 마음이 쓰인다.

얼마 후 노모는 쓰러지고, 엄마의 병상을 바로 옆에서 지키는 것은 둘째 딸 현순이다. 노모의 의식불명 상태가 6개월 이상 길어지자, 다른 형제자매들은 연명치료 중지를 위한 서류에 서명 하려한다. 엄마가 빨리 하늘나라 가고 싶어 했다는 표면상의 이유를 들고는 있지만,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현순은 펄쩍 뛰며 반대한다. 어머니는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적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는 방언과 예언을 위주로 하는 특이한 교회이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그 교회가 이단이라며 배척한다. 현순은 일찌감치 집에서 반대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여 결혼한 탓에 아버지의 유산을 받지 못한데다 형제자매들이 번번이 자신을 무시하고 비웃는 것에 맺힌 것이 많다. 현순은 동생과 언니에게 위선적이라며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 힘들다. 기적의 말씀을 받았다며, 가망 없는 연명치료를 우기는 현순이 광신도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인 문제에 현순이 보태는 것도 없이 다른 이들의 결정을 무조건 반대하며, 저주의 말을 쏘아붙이는 것도 섬뜩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엄마를 정성껏 간병하면서 “그깟 돈 때문에, 살아있는 엄마를 죽인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느냐?”는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엔 선뜻 무의미하다고 선을 긋기도 애매해 보인다. 영화는 어떠한 가치판단도 내리지 않고, 대단히 현실적으로 보였던 동생내외와 큰딸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이면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들 역시 올바른 이성의 판단에 의해서만 ‘연명치료 중단’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엔 번듯한 중산층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이면에는 죄와 고통 등 인간의 약한 모습들이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은 현순의 딸 수진을 끌어들여 현순을 따돌리고, 노모의 호흡기를 떼려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실랑이 끝에 만삭인 수진에게 갑자기 진통이 오면서,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간다.

현순의 형제자매들은 현순의 저주 섞인 말이 자신들의 정곡을 찌른 데 대해, 겉으로는 심하게 부인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게 된다. 현순 역시 자신이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형제자매를 미워한 죄 값으로 수진을 데려가려한다는 말씀을 듣는다. 현순은 어느 누구보다도 충실하다고 믿어온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이 독선이요, 원한이었음을 돌아보고 오열한다. 영화는 결국 모든 인간이 흠결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흠결을 바로 보고 그 약함을 고백하는 것을 통해 다른 이와의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메디컬 드라마이자 가족극의 형식을 통해 알려준다. 모두가 자신의 약함을 보고 물러날 때, 기적은 아무렇지도 않게 찾아온다. 수진에게 갑자기 닥친 출혈의 위험은 할머니의 피로 막게 된다. 할머니의 연명치료는 중단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경제적인 필요에 의한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딸과 손녀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숭고한 것이 된다. 또한 할머니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으며 끝까지 죽음을 막은 현순이 그 사랑과 믿음으로 딸의 생명을 구하는 은사를 받게 된 것이다. 인간으로 어쩌지 못하는 응급한 순간에, 가족들은 자신의 흠결을 돌아보고 겸허한 마음으로 극적인 화해에 이른다. 이는 종교적인 기적이라기보다 ‘인간적인 윤리’에 가까운 것이지만, 사실 종교라는 것 역시 이러한 ‘인간적 윤리’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 인간의 윤리를 깨닫고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순간이 바로 기적이 임하는 순간이다. <밍크코트>는 이런 놀라운 가르침을 일상적인 홈드라마의 형식을 통해 알려준다.

제목인 ‘밍크코트’는 영화 속에서 현순이 노모에게서 받은 옷이다. 노모는 잘사는 큰 딸이 사준 밍크코트를 우유배달을 하는 둘째 딸 춥지 말라고 현순에게 준다. 그러나 황정민은 자신이 입지 않고 밍크코트를 팔아서, 딸에게 돈을 보태주었다. 밍크코트는 부의 상징과도 같은 옷이지만, 가족의 회로 속에서는 안쓰러움과 내리 사랑의 기표이다. 영화 속에서 중요한 소재로 쓰인 ‘연명치료 중단’ 역시 대표적인 생명윤리의 딜레마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를 가족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재이자, 죽음을 통해 손녀의 생명으로 부활하고 가족이 화해에 이르는 기재로 활용된다. 영화는 연명치료 중단의 개념을 놓고 옳은지 그른지를 묻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연명치료 중단을 둘러싼 가족들 간의 관계에 주목하며, 가족이 생명이라는 선물을 나누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영화가 중반까지 그리는 경제적 이해관계와 종교적 믿음의 차이에서 야기된 가족 간의 갈등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그러나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고, ‘연명치료 중단’을 중심으로 가족 간의 갈등을 끝까지 밀고나가 마침내 봉합해낸다. 이를 통해 종교적 갈등을 넘어선 보편윤리의 지점을 보여주며, 윤리적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2. 엄마의 연명치료 중단 앞에 선 소년 <피터팬의 공식>

<피터팬의 공식>(2006)은 10대 후반의 청소년이 겪는 가치관의 갈등을 대단히 깊이 있게 그린 성장영화이다. 한수(온주완)은 고등학생 수영선수로 전국체전에서 유망주이지만 갑자기 운동을 그만두어버린다. 어차피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밖에 더 되겠냐면서 (박태환이 나오기 이전이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 채, 엄마와 단 둘이 살던 한수는 학교에서 엄마의 음독 소식을 듣는다. 엄마는 와인 잔에 살충제를 부어서, 들이켰다. “그저 쓸쓸했다”는 쪽지를 남기고. 엄마는 의식불명상태에 빠지고, 한수는 병원의 침상에서 엄마를 간병해야 한다. 졸지에 보호자이자 가장이 된 그에겐 풀어야 할 숙제들이 한 다발이다. 한수는 엄마가 쪽지로 남긴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 남자는 아버지임을 부정한다. 한수는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하여 결과지를 그 앞에 집어던지고 다시는 찾지 않는다. 한수가 모성에 대한 그리움과 성적 호기심을 가지고 훔쳐보는 옆집의 음악선생 인희는 그에게 음식을 싸다 주는 등 친절을 베풀지만, 더 이상의 사랑을 주진 않는다. 한수는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안의 패물을 팔고, 어설픈 복면강도 행각을 벌인다.

영화는 한수가 갑자기 닥친 혼돈스러움과 고통스러운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을 그린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느껴지는 장면은 한수의 엄마와 같은 병실에 누워있는 식물인간 상태의 아주머니를 돌보는 대학생 딸이 지루한 간병에 지쳐 엄마의 산소 호흡기를 중단시키는 것을 본 한수가 느끼는 혼란이다. 누워있는 엄마를 너무도 살갑게 대하던 딸이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의 호흡기를 정지시키는 모습을 숨죽이며 보던 한수. 또한 그는 엄마의 알몸을 목욕시키면서 엄마의 음부를 보고, 엄마가 성적 존재라는 사실에 직면해 어쩔 줄 모른다. 혼돈을 느끼던 한수가 인희의 치마 속에 머리를 처박으며 도로 들어가겠다며 울먹이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할 정도로 몽환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한수 역시 엄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자, 엄마의 영혼이 벌떡 일어나 씻으러 간 것으로 볼 수 있고, 엄마가 혼자 돌아가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한수가 엄마의 침상에 자신의 옷을 벗어놓고,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가는 장면도, 한수가 현실의 암담함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스스로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결말을 어떻게 보든, 한수에게 음독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는 어떤 식으로든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존재이다. 이는 10대 청소년에게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극복하고 끊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암시하는 설정이다.

3.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72%가 찬성, 그러나…

‘연명치료 중단’은 2009년 ‘김할머니 사건’에 의해 사회적 의제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적인 중지가 모아지지 않은 사안이다. 2008년 김할머니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자, 가족들은 할머니가 생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말해온 점을 존중해 법원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었다. 1년이 지난 2009년 5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법원이 김할머니 가족들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혀, 존엄사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논란은 오히려 커졌다. 김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무려 201일을 더 살다가 돌아가셨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 인공호흡기를 떼면 곧 사망하는 환자에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존엄사’라는 개념이 무색해진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201일을 더 살 수 있는 환자를 두고 ‘존엄사’를 결정했다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으며,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생각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2%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개념이 널리 알려지고 사회적인 논의가 충분히 되었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이처럼 높은 찬성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자살률 세계 1위인 대한민국에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서는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건 아닐까. 국민의 대다수가 빚과 생활고와 고용불안과 살인적인 경쟁에 내몰려, 멀쩡한 사람조차 돈 때문에 생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생명에 돈과 정력을 바치는 일을 ‘무의미하다’란 말로 쉽게 단정 짓고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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