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보일기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 아비(장애인활동보조인)

나는 활동보조인연대(준)(http://cafe.daum.net/paspower)(이하 활보연대)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활동보조에 대한 정보도 얻고, 가능하면 연대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이 모임에 나가고 있다.

처음에 ‘활동보조인 권리찾기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이 모임은, 비록 지금은 작은 모임이지만 전국 단위로 활동보조인들이 연대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1차적으로 100명 정도의 회원을 모아 상근자를 두는 것이 목표이다. 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이루어지는 회의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노동법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센터와 장애인들 사이에서 장애에 대한 이야기와 활동보조인의 직업윤리 따위를 주로 듣다가, 활동보조인들만 모인 모임에서 우리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진담인지 농담인지도 모를 장애인들에 대한 험담에서부터, 자신들이 활동보조를 하면서 겪는 여러 고초에 대한 토로들이 있었다. 더불어 중개센터들이 활동보조 노동자들에게 부당하게 대하는 사례들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잘 아는 분야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보통의 인식을 갖게 마련이다. 장애인이나 중개센터도 마찬가지여서 성 문제나–활동보조인 종사자는 여성이 많은 편이다.–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일반의 인식을 갖기가 쉬운 것 같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다.

활보연대는 420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에 연대단위로 참석했다. 활보연대는 장애인활동보조인제도가 공공부문이라는 점에서 중개센터, 장애인 이용자, 활동보조인이 정부를 상대로 연대투쟁하여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활동보조인제도는 장애인 이용자가 각각 한달에 얼마간의 바우처를 지급받은 후, 활동보조인에게 급부를 제공받은 시간만큼의 바우처를 결제하며, 중개센터는 사이에서 바우처의 25%까지의 비용을 지불받고, 나머지 금액을 활동보조인이 가져가는 형식이다. 보건복지부가 지급하는 총 재원은 보통 시간당 8300원에 해당하며, 그 총 재원을 장애인 이용자와, 중개센터, 활동보조인이 나누어 이용하고 있다. 시간당 8300원이라는 기준은 노동법과는 별개로 책정된 사안이며, 이 재원 안에서 중개센터는 센터운영 제반에 드는 비용과 노동법에서 말하고 있는 주휴수당, 야간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초과근무수당, 퇴직금 등을 해결해야 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몇 몇 중개기관은 안줘도 되는 줄 알고 무관심하다가 노동부 진정 등의 과정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지급하거나,–지급하고는 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중개기관은 활동보조인의 노동자성을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노동법을 의식한 일부 중개기관에서는 그러한 법의 기준을 잘 알고 애초부터 법정 최저임금으로 계약서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보건복지부가 장애인활동보조에 대한 재원을 한정하고 그 한도 내에서 당사자들끼리 나눠가지라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어 놓으니 대립이 조장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당사자들끼리의 거의 소소한 분쟁이야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보건복지부의 책임이다. 활동보조인은 노동자이기에 그들의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며, 장애인 이용자들은 그들이 이 사회에 살아가기 위한 당연한 권리로써 보장되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개별 장애인의 다양함만큼이나 그들이 보장받아야 할 구체적 권리는 다양하며, 그들이 보장받는 것과는 별개로 노동자들이 보장받아야 할 것도 또 다른 기준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활동보조인들의 요구에 노동문제는 자신들의 관할이 아니라는 공무원 마인드로, 중개센터에 가서 이야기하라며 중개센터를 방패로 사용하기가 일쑤였다.

활동보조인들이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조건은 장애인들이 바우처를 많이 받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노동시간은 그들의 생계에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이런 차원에서의 동일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에 모두 요구할 것이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투쟁과 활동보조인들의 투쟁은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반면, 현행 활동보조인 제도는 민간 중개기관에 위탁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서비스가 시장화 되는 정부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활보연대는 활동보조인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지자체와 복지부가 코디네이터와 활동보조인을 직접고용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아마도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 겠지만–중개기관의 필요성은 사라지며, 중개기관도 일종의 사업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반발이 있을 여지가 있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연대가능성과 반목가능성의 배경 속에서 활보연대는 정기모임에서 420공투단에 연대하기로 결의가 된 상태였고, 3월 말부터 진행된 점거농성 등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4월 20일 금요일 낮에 특별한 일이 없었던 나로서는 조금의 게으름과 잡다한 집안일을 위해 오전시간을 보낸 후, 오후 2시부터 있을 보신각 앞에서의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집회 참석 준비를 하던 중 문득 어이없게도, 장애인 이용자가 그 현장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활동보조인이 장애인들의 투쟁에 연대한다는 것은 조금은 미묘한 일이다. 그것은 활동보조인의 노동에 대한 경계가 애초부터 모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동이 이미 연대활동의 효과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활동보조인들의 노동은 노동으로 취급되지 않으며, 자원봉사로 여겨지고 있는 부분이 있어 노동조건에서 어떤 불이익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지점이 있다. 활동보조인이 연대의 의미로 문화제에 참여한다 하여도, 사람들에게 그것은 ‘노동’의 연장으로 보여, “이용자는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가 일쑤이며, 정말로 연대로 참석한다면 연대의 효과적 측면에서는 이용자와 함께 투쟁현장에 있는 것이 더욱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활동보조가 되어 ‘노동’이 되어버린다. 순전히 고생스러운 활동으로서의 노동으로 느낄 때 자원봉사자 같은 선의를 나에게 바라는 주변 시선이 곤혹스럽거나, 연대의 의미로까지 확장된 활동을 하는데 ‘노동’으로만 평가–그게 뭐 꼭 평가받으려고 하는 일은 아니겠지만–되는 나의 활동에 아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신각으로 이동했다. 휴대폰을 보며 이동하는데, ‘장애극복상’이라는 장애를 부정하는 이상한 상이 수여되고 있다는 소식이 보인다. 트위터에서는 시청광장에서 이루어지는 관제행사에 대한 언급과 그 옆 대한문에서 이루어지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조문식에 420공투단이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보였다. 장애인의 날이라고 관제행사에는 경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쌍용자동차 조문식에서는 장애인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극명한 대비상황이 바로 옆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무언가를 폭로하는 느낌이었다.

보신각에 도착하니 전국에서 장애인들이 모여 있었다. 활보연대 회원들이 보였고, 이용자도 보인다. 곳곳의 연대단위들이 연대발언을 하고, 활동보조인연대(준)의 회원들이 단상에 올라가 조직국장이 대표로 연대발언을 했다. 간략한 퍼포먼스 였는데, 300원과 1000원을 던져버리는 퍼포먼스였다. 4년 가까이 시급 6000원으로 유지되던 활동보조인의 임금이 제도가 바뀌면서 인상된 것이 겨우 300원이라는 것을 분노하는 의미에서 300원을 던졌으며, 초과 근무수당이라고 주는 것이 하루에 겨우 4시간 까지만 1000원을 더 주는 것을 분노하는 퍼포먼스였다. 그것도 장애인의 바우처 지갑에서 빼가야만 하는 초과수당이다.

문화제가 끝나고, 보건복지부까지 행진을 하기로 집회신고가 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이용자의 또 다른 활동보조인으로부터 이용자를 인도 받는다. 이때부터 나의 활동은 연대활동과 활동보조노동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한다. 활보연대 피켓을 들고 이용자의 휠체어를 밀면서 행진을 시작한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행진이 진행되지 않는 듯하다.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앞서간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기어서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이 이동할 수 있는 속도로 기어서 행진을 시작하니, 경찰 측에서는 ‘시민’들에게 피해가 된다며, 신고된 범위 내의 집회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경찰에서 규정하는 신고된 범위라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비장애인의 속도로 규정된 집회가 아닐까? 경찰측의 말은 장애인의 속도로 이루어지는 행진은 어떤 방식으로도 합법적일 수 없음을 폭로하는 발언은 아닌가?

아무래도 내가 활동보조인이다 보니, 다른 활동보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활동보조인은 행진에 참석하지 않고 인도를 걷고 있었는데, 그의 이용자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행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개센터의 코디가 그 활동보조인더러 이용자의 곁을 지키라고 말하였고, 그 활동보조인은 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비록 나 또한 행진에 참여하고 있으나, 그것을 순전히 나의 노동으로 여기기에는 뭔가 찝찝함이 있었다. 나는 나대로 이용자의 휠체어를 밀면서 피켓을 들고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노동으로 여기기보다는 그것대로 나의 싸움이라 여기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활동보조인이 행진에 참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활동보조노동자 또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집회활동을 거부할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이용자가 필요할 때, 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으면 족하며, 이용자의 행동을 도울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나중에는 경찰들과의 마찰 속에서 경찰은 3차 경고를 내보낸 후, 해산명령을 내렸다. 이러한 해산명령의 정당함 여부를 떠나, 행진에 대한 참여는 ‘불법행위’가 될 소지가 있다. 그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그들의 노동이 보호받을 수 있을까? 그러한 활동마저 정당하게 요구될 수 있다면 활동보조 노동자에게 가혹한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면 활동보조 노동자는 정치적 자유, 사상의 자유마저 부정되는 노동자가 아닌가?

행진은 순조로운 듯 순조롭지 않은 듯 보건복지부 앞까지 진행되었다. 중간 중간에는 약간의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보건복지부 앞에서는 정리 집회를 하고자 하는 420공투단과 경찰이 대치하였다. 보건복지부 옆 사거리에는 소위 닭장차라 불리는 전경버스가 420공투단의 행진을 막아서고 있었는데, 전경버스가 도로를 점거함으로 행진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고, 평화행진보장을 요구하는 행진자들과 전경버스로 도로를 점거한 경찰간의 대치가 장시간 이루어졌다. 경찰은 보건복지부 바로 옆 사거리를 참가자들이 진입하기 훨씬 이전부터 전경버스로 막아서고 있었다. 경찰은 참가자들이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이 이야기 하였지만, 도로상의 교통정체가 행진으로 인해 야기되었다가 보다는 전경버스가 길을 막아선 탓이 더 큰 것 같아보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경찰은 전경버스를 도로에서 치웠고, 보건복지부 바로 옆으로 접근한다. 경찰은 계속해서 막아섰고, 참가자들과 물리적 충돌이 인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경찰이 비어 있는 곳으로 이용자의 휠체어를 밀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덮친다. 아마도 미쳐 경찰들이 의식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빈 공간이었나 보다. 내 앞에서 움직일 수 없는 이용자는 경찰 방패에 눌린다. 휠체어가 뒤집히려 하는데도 경찰은 무지막지하다. 휠체어 넘어진다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계속해서 밀어댄다. 소리를 쳐도 들어먹지 않는 경찰을 보니 화가 난다. 오기로 버티기 시작한다. 그런데 마침 옆에 한 참석자가, 내 바로 앞에서 사복채증을 하는 경찰에게 채증하지 말라 요구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 채증한다. 나는 들고 있던 피켓으로 그 카메라를 쳐버린다. 옆에 있던 경찰은 나를 가리키며 채증 하라 소리친다. 나는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며 뒤쪽으로 도망친다. 혹시라도 벌금은 무서우니까.

점차 공간은 확보되고 물리적 대치도 사라진다. 정리집회가 계속되는 연대발언으로 진행된다.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나,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경찰서로 이미 이송되었다고 한다. 집회는 끝나고 시간은 오후 9시를 조금 넘긴 시간. 활보연대회원들은 뒷풀이를 한다고 하지만 이용자를 집에 대려다 줘야 하기에 참석하지는 못한다. 이제 나는 못 먹은 저녁을 이용자와 함께 먹고 지하철을 타고 이용자의 집까지 간다. 도착하니 11시. 퇴근하여 집에 가니 12시다.

응답 1개

  1. 박카스말하길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활동보조인의 역할로 시위에 함께 나갈경우 자발성에 의문을 매기게 되지만, 또 의도한바는 아니지만 같이 지내다보니 서로의 활동들을 함께 할 수 있게되는 점 또한 활동보조인이 찾을 수 있는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활보연대모임이 계속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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